<봄밤>과 <이모>를 읽고 끄억끄억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 소설들에서 묘사와 우리말의 운율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토우의 집>은 필사하고 싶은 표현들이 많았다.
‘삼십 분 넘게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원은 멀미에 시달렸다. 목과 가슴 어디쯤에서 수십 개의 개구리 알이 올챙이로 부화하는 느낌이었다.’
일곱 살 여아가 멀미로 토하기 직전 위장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을 이렇게 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내 어릴 적으로 빠르게 되감기를 시키는 문장이었다. 나는 어릴 때 버스를 타면 무조건 토했다. 토하기 직전 배 속이 꿀렁꿀렁거리다가 혀 깊숲한 곳과 목구멍이 만나는 아래쪽에서 샘솟는 노릿한 침을 시작으로 토사가 시작된다. 그 다음 솟구쳐나오기 직전이, 개구리 알의 부화라니! 놀라운 표현이었다.
새댁이 은철더러 집에 손님이 올 때는 놀러오지 말라고 한 말에 은철은 거의 연인에게 배신당한 기분이 되고 마는데, 은철의 내상은 이렇게 표현된다.
‘가슴속 유리 상자에 쫙쫙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달리면 달릴수록 그의 마음은 심하게 베었지만, 파란 호스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로 항상 질척거리는 창자처럼 길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은철은 온통 신발에 진흙을 튕기며 달리고 또 달려 나갔다. 아 시시하다, 시시해. 칫칫!’
가슴 속에 깨지기 쉬운 유리 상자를 가지고 있던 여리디 여린 일곱 살 남아는 조각나버린 유리조각에 심각한 내상을 입는다. 저렇게 맘껏 달리고 달릴 수 있었던 은철이 더 이상 제대로 걸을 수 없게 된다. 형 금철의 무모한 장난으로 무릎뼈가 아작난 것이다.
순분네 우물집에 불행이 겹으로 시작되면서 계주인 순분네에 풀방구리 쥐 드나들 듯 하던 동네 여자들은 발길을 끊었다. 몇 번의 수술을 하고 회복을 비는 굿판을 벌였어도 은철은 다리를 구부리지 못했고, 원의 집에도 무시무시한 불행이 덮쳐왔다. 소풍을 떠나기로 하던 날 김밥을 싸며 즐거워하던 원의 집에 들이닥친 사내들은 아버지 안덕규를 잡아갔고 그는 돌아오지 못한다. 어떤 문서에든 펜대에 펜촉을 끼워 일필휘지로 한자를 써냈고, 늘 단정한 매무새로 정갈한 음식을 만들어 내오던 원의 엄마는 남편의 죽음으로 실성을 하기에 이른다.
소설 중반까지 이어지던 동화 같던 분위기는 삽시간에 우울한 모드로 바뀌고 말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시련이 닥친 은철을 보며 순분네는 자신이 찧고 까불며 뒷담하던 새댁네의 시누이에게 너무나 미안해진다. 피아니스트로 탄탄대로를 걸을 것 같았던 원의 고모는 불의의 사고로 앉은뱅이가 된 후 똥을 못 눠서 어땠다는둥, 목숨을 버리면서 어떻게 했다는 둥 신나게 떠들어댔었다. 아들 은철이 한 방에서 그 모든 말을 듣고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그때는 은철이 다치기 전이었다. 작가는 은철을 스파이 활동 때문에 그 방에 앉혀둔 이유도 있겠지만 순분네의 뒤늦은 후회와 자각을 위한 장치가 아니었을까?
원의 집에 들이닥친 불행은 작가도 언급했지만 인혁당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국가가, 권력의 유지를 위해 저지른 범죄행위였음을 30여 년이 지나서야 인정했지만 저렇게 한 가정을 파탄내버린 책임은 누가 진단 말인가? 당시 희생된 분의 유족 중에 원이 같이 어렸던 자녀가 있었을 것이다. 가장의 부재와 빨갱이라는 굴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우리같은 사람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인혁당 사건 처럼 우리 역사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러나 내 가족이거나 친척이 아니라면 그들의 고통이 어떨지 알기 어렵다. 어떤 고통인지 모르므로 이해는커녕 공감도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