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진
이동은.정이용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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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쓸 때 책의 외양이나 주인공이 예쁘다는 칭찬하게 된다. 뭐든지 좋게 써줘야 한다는 강박이다. 이동은이 쓰고 정이용이 그린 <진,진>이라는 책은 그런 사탕발림은 못한다. 그림의 톤이 밝지 않기 때문에 예쁘다고 하기 힘들다. 만화로 표현된 주인공 진아와 수진의 외모는 연예인 수준이 아니다. 이 책에 실장님이나 재벌 3세는 나오지 않으며, 진아와 수진이 그런 이들과 사랑에 빠지는 일 잘하는 비서일 리가 없다. 그런 이야기는 미디어에서나 볼 수 있는 환타지다. 이 만화도 미디어이지만 환타지가 아닌 현실에 가깝다.

진아와 수진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0대, 40대 여성의 모습이다. 외모도 직업도 환경도 그러하다. 진아는 고시원에서 지내며 닥치는대로 일하는데 동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다. 그런데 무연고로 사망했던 아버지의 사망신고가 되어 있지 않아 동생이 지원하려는 입시 전형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병원에 가서 사망신고서를 떼려고 하니 백만원이 넘는 밀린 병원비라고 한다. 비빌 언덕은커녕 죽은 아버지 조차 도움이 안된다. 그럼에도 진아는 밝고 주위 사람들을 잘 챙기는 성정이다.

수진의 이야기는 갱년기 치료를 받으려고 산부인과에 갔다가 임신 사실을 듣고 당황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는 언니와 같이 하는 식당의 단골 손님과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였다. 6살 연상인 여자친구와 사귀고 있는 아들이 갑자기 결혼을 하겠다고 하는데 알고 보니 임신! 보살피던 길고양이도 만삭! 모든 새 생명이 축복받는 건 아니다. 또한 그 생명이 태어난 이후의 삶도 꽃길은 아니다. 아니, 태어나지 못할 생명도 있다.

이 책에서 진아와 수진이 만나지는 않는다. 나이와 처지가 다른 두 여성이 부딪힐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주위에서 만날 수 있는 얼굴들이다. 내 친구일수도 친구의 엄마일 수도 있다. 부잣집 딸이 등록금 걱정없이 대학을 다니고, 늦둥이가 임신해도 축복받는 이야기는 환타지 드라마에나 나오는 것이고, 진아와 수진 같은 처지는 우리 주위, 어쩌면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아들이 장가갈 나이에 임신을 한 이 상황을 어떻게 할 것인가? 책을 읽는 동안 갑갑함이 밀려왔고,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라서 외면하고 싶었다. 그러나 진아와 수진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꿋꿋이 감당한다.

‘다할 진’과 ‘나아갈 진’

자신이 처한 상황이 아무리 구질구질해도 그들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다 한다. 방금 이 문장을 쓰면서 ‘할 수 있는 한’ 뒤에 최선을 다 한다는 문구가 자동완성처럼 따라왔는데 일부러 쓰지 않았다. 꼭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가? 그냥 하면 안 되나? 최선을 다한다는 말에는 최상의 결과가 따라와야만 할 것 같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되지 않나? 그러면서 멈추지 않는 것! 계속 나아가면 된다. 왜냐하면 삶은 계속 되어야 하니까! 내가 중단시키지 않는 한 삶은 계속 된다.

진아와 수진의 이야기가 밝고 희망차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중단시킬 것 같지는 않았다. 진아에게 아버지 사망신고를 도와주는 누군가가 있고, 수진은 며느리 될 지원에게 책임감 때문에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한다. 아무리 세상이 무심한 것 같아도 손 내밀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고부관계의 감정이 꼭 적대적이어야 하는 게 아니라 연대감이 생길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수진이 붓글씨 교실에서 쓴 진과 진을 보며 두 여성이 걸어갈 길이 부디 컴컴하지 않길 빌어본다. 꽃길까지는 아니어도, 아마 비바람이 몰아칠 때도 있을 것이나, 너무 어둡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따스하고 밝은 해가 그들의 길을 비추어 주길... 가끔 먹구름이 해를 가릴 때가 있어도 해가 영영 사라진 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고 뚜벅뚜벅 걸어가길!!

**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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