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엄마, 히말라야는 왜 가?
백운희 지음 / 책구름 / 2020년 11월
평점 :

책 제목에서
"엄마, 히말라야는 왜 가?"
라고 묻는다.
나는 대답이 궁금했다.
애가 물었을 것이고, 엄마는 답했을 것이다.
이 책을 고른 독자들도 공통적으로 궁금해 하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1. 엄마가 등반가인가?
2. 애를 놔두고 히말라야까지 갔단 말인가?
남녀 불문하고 위 둘과 유사한 의문이 들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두 질문은 결이 다른 듯하지만 유사성을 내포하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름에 한계성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첫 질문에는 여성 등반가는 낯설다는 뜻과 함께 여자는 험한 산을 등반하기 힘들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두 번째는 애를 두고 등반을 떠나는 엄마의 모성애에 대한 의문이다. 즉 '엄마가 아이 옆에 늘 붙어있어야지 혼자 여행을 가다니!'라는 생각이다.
제목에서 단순한 히말라야 여행기가 아닐 것임을 예감했지만, 더 궁금했던 것은 왜 히말라야에 갔는지 였다. 아이가 궁금해 한 것처럼 독자도 궁금하다!
그 이유를 알아보기 전에 저자 소개부터!
저자 백운희씨는 대전일보 기자 출신으로 ‘정치하는 엄마들’의 공동대표를 했던 이력이 있다.
"사회적 돌봄의 중요성을 공감하며 그간 목소리 내지 못했던 엄마들과 함께 서고 싶다. 당사자의 힘으로 바뀌어 가는 세상을 위해, 더디지만 계속 걸으려는 의지와 글쓰기는 그래서 포기할 수 없는 힘이자 욕심이다."

2017년, 백운희씨는 7살 딸과 남편은 두고 혼자 여성포터들과 함께하는 히말라야 트래킹에 신청했다. 남편의 업무가 출장이 잦아서 딸을 지방에 있는 언니에게 맡기기로 했다. 남편은 호기롭게 잘 준비하라고 말했지만, 여행 준비를 하는 동안 아내가 포기하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순서대로 진행했고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저자는 네팔을 ‘눈 맑은 이들이 사는 나라’라고 정의했다. 사람들이, 심지어 길거리 개들까지 맑은 눈을 가진 것 같단다. 그럼에도 역사는 파란만장했고 2006년이 되어서야 오랜 내전이 종식되었다.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는데 네팔은 다민족 국가이다. 현지인들에 따르면, 무려 126개 민족이 공용어 네팔어를 제외한 103개 언어를 사용한단다. 내전이 길 수밖에 없었겠다. 종전이 되었다 해도 갈등들은 산발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2017년 당시 네팔은 여성 대통령, 여성 대법원장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전반적인 네팔 여성들의 삶과 권익보장은 열악한 상황다.
저자가 여성 포터들과 함께 하는 공정무역 여행을 했기 때문에 독자로서 간접 체험을 할 수 있었고, 한국이든 네팔이든 맞벌이 여성이 짊어진 돌봄 노동의 무게감이 내 어깨에도 느껴졌다. 어린 자녀를 보육시설에 맡기고 일을 하고, 퇴근 후에도 이어지는 가사와 돌봄 노동의 과중함을 당연하게, 마치 전투 치르듯 살아냈던 그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자도 그랬다. 어느 추웠던 날, 아침 일찍 아이를 깨우던 날이었다. 만 세 살이 겨우 지난 아이가 하는 “엄마, 조금만 더 자면 안 돼요?” 라는 말에 저자는 이 작고 어린 자식을 잠조차 충분히 재우지 못하게 만드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는 나서서 말하고 글을 썼다.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하고,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된다고 강조하면서 엄마가 아이를 돌볼 수 없게 만드는 이 모순된 상황에 대해서!
아, 이 책이 여행에세이라고 예상했던 사람들에게 이 리뷰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아서 이쯤에서 정리를 해야겠다. 이 책은 저자의 히말라야 트래킹 여행기가 맞다. 트래킹 여정과 고산병, 공정여행이란 허울아래 행해지는 낯부끄런 여행객들의 태도, 일행들의 지나친 배려에 대한 부담스러움, 여행을 통해 얻는 통찰 등. 히말라야 여행기에 해당하는 내용도 있지만 저자 자신이 살아온 인생 전반, 그리고 여성으로 엄마로 살아오면서 느꼈던 불편함, 부당함, 그것들 중 자신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서 행동으로 옮겼던 이야기들까지 더해진다.
그러므로 이 책은 독자에 따라 부각되는 부분이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히말라야 여행기인줄 알고 읽었는데 그 외의 다른 내용의 분량이 많아 당황스러울 수도 있고, 여성의 돌봄 노동에 대한 저자의 상황과 생각에 격하게 공감하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겠다. 책을 읽기 전 이 리뷰를 먼저 읽는 이들을 위해 책 내용 중 몇 부분을 소개하려고 한다.
세계적인 오지 탐험가 텔만은 랑탕을 “세계에서 가장 깊고 아름다운 계곡”이라고 평했다. 나는 자연의 위대함에 순응하는 이에게만 고유의 매력을 보여주는, 자연의 섭리를 체득할 수 있는 곳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사실 트래킹은 ‘침잠’에 적당하지 않다. 지형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 트래커라면 더욱더 그렇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면에 몰입하기보다 당장 눈앞에 놓인 바위부터 무엇을 밟아야 안전할지 빠르게 판단해야 하는 순간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집중을 놓치는 순간 다칠 수도 있다. 오가는 발길에 밟히다 못해 바위처럼 굳어 버린 나무뿌리를 뛰어넘을지, 앞서간 이들의 발걸음처럼 뿌리 위에 발을 내딛을지조차 고민해야 했다. 여러 갈래 길 가운데 어디를 따라야 할지 선택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마주하는 과정. 몸 상태를 기민하게 점검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여행은 짧고 다시 마주한 일상은 길다. 남은 여행 기간 내가 할 일은 일상을 버틸 힘을 찾는 것이다. |
젠더 감수성과 다양성에 취약한 언론 환경은 복잡하고 파편화된 사회와 시대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채 오히려 성차별적이고 여성 혐오적 시각을 담아내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그 안에서 여성들은 커버링의 압력에 놓인다. 사회가 정한 특과 기대에 녹아들며 주류에 동화되기를 강요받는 것이다. 여성이라고 대놓고 차별하진 않더라도 여성의 몸이 가진 특별한 상황, 생리나 임신, 출산 등을 티 내지 말 것을 명시적이고 암묵적으로 요구받는 상황이 대표적이다. 다양한 측면에서 경험이 쌓이면 세상을 바라보는 질감이 달라진다. 그간 깨닫지 못한 영역에서 소외의 대상이 된 이들을 바라보려는 시각이 생겼다. 공감과 상상력이 발휘되는 것이다. 나아가 돌봄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싶었다. 아이들은 일정 기간 돌봄이 필수적이다. 노인과 장애인 등 사회 약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돌봄을 개인적인 문제나 그림자처럼 뒤로 남겨야 하는 일로만 치부해왔다. 돌봄 노동은 하찭게 여겨졌고 그 속에서 발생하는 고충을 사적으로 감당하라고 말했다. 스스로 권리를 확보하기 힘든 이들에게는 철저히 무관심했다. 최소한의 정치적 무기, ‘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서기로 했다. 약하고 소외당하는 존재를 돌보는 것은 ‘모두의 책임’이고 ‘모두가 엄마다’는 마음으로 정책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이다. |
윗 부분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행기로 읽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고, 아랫 부분은 여성과 돌봄에 대한 내용을 더 관심있게 읽을 독자들을 위해 인용했다.
위 인용이 이 책을 사기 전 참고할 읽을 거리로 적당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제목, 백운희씨의 딸의 질문에 대한 답을 써야하는데 나는 고민을 좀 했다.
“책을 직접 읽으면 답이 있습니다!”라고 끝내버리면 리뷰로서 무책임한 것 같고, 저자의 대답을 그대로 옮기면 독자가 직접 읽는 맛을 뺏는 것 같아서 망설여졌다. 나 혼자 타협점을 찾았다. 저자가 히말라야에 두 번이나 다녀온 직접적 이유는 쓰지 않고 아래 문장을 인용한다.
해원, 원통함을 덜어내는 행위라지만 내게는 죄책감을 덜어내는 일이기도 했다.
저자가 히말라야에 갔던 이유와 이 책에서 풀어놓은 우리 사회의 여성 문제들이 직접적 관련성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 엄마로 살아가는 것이 히말라야에 오르는 것 만큼이나 용기를 내야만 하는 일일 거라는 심규혁씨의 말은 의미있는 해석이다. 나도 동의하면서 그렇게 생각하는 남자가 있어서 다행이다.
저자는 걷고 쓰는 일을 멈추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의 발걸음과 글걸음의 흔적을 앞으로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응원한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