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 메릴 - 메릴 스트립의 연기와 삶, 그 전설 같은 이야기
에린 칼슨 지음, 홍정아 옮김 / 현암사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배우 메릴 스트립하면 어떤 영화가 떠오르는가? 40여 년간 60편이 넘는 영화를 찍었으니 메릴 스트립이 출연한 영화를 한편도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근래에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영화는 <맘마미아,2008>일 것이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아웃 오브 아프리카,1985>를 떠올린다면 아마 당신의 나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메릴 스트립은 1978<디어 헌터>에서 조연 린다 역을 시작으로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1979>로 단숨에 아카데미여우조연상을 수상한다. 지금으로부터 41년 전, 서른 살이었다. 그녀는 1949년생으로 울 엄마랑 동갑이다. 나이로는 엄마 같은 대상이지만 스크린 속 그녀는 너무나 매력적이라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대상이다.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던 영화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였다. 그녀에 대해 잘 모를 때, 그러니까 얼굴과 이름을 매칭시킬 정보밖에 없었던 그 당시에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메릴 스트립의 고향이 이탈리아인 줄 알았다. 그러니까 주인공 프란체스카와 배우 메릴 스트립을 동일인이라 착각했던 것이다.

그 착각의 여파는 꽤 오래 가서, 메릴 스트립이 미국 동부 뉴저지 출신이라는 것을 봤을 때 뭔가 잘못된 정보일거라고, 이탈리아 출신일텐데? 라면서 눈 비비며 여러번 재검색 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나같은 영알못이 철썩같이 믿을 정도로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미국 오하이오로 시집온 프란체스카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던 것이다. 그 후로 그녀의 영화가 개봉하면 보려고 노력했지만 보지 못한 영화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이 책 <퀸 메릴>을 읽고 알았다.

 

<퀸 메릴>AP통신 기자 출신의 에린 칼슨이 쓴 메릴 스트립의 전기로 현암사에서 출간되었고 인스타그램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되었다. 당첨되지 않았더라도 사려고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었다.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된 책이 100% 만족스럽진 않다. 가장 힘들 때가 예상과 빗나간 책을 리뷰 써야할 때이다. 재미없거나 실망스러운 책의 리뷰를 좋게 쓰기 힘들다. 상당한 인내심과 포장능력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번 책처럼 아주 만족스러울 경우에는 무료로 책을 받은 게 미안할 정도이고 리뷰를 쓰기에 힘들다. 앞의 힘든 것과 다른 점이 있다. 좋은 책을 좋다고 쓰면 되지 뭐 어려울 게 있냐? 하겠지만 장점을 제대로 부각시키는 게 어렵다는 뜻이다. 한편 내 리뷰가 이 책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나는 영화에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며 그저 메릴 스트립을 좋아하는 팬일 뿐이다. 그러니 이 리뷰는 그저 일반인이자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 책의 이러이러한 게 좋더라~ 정도 밖에 쓸 수 없었다. 먼저 이 책의 저자 에린 칼슨의 자료 수집력에 감탄했다. 그리고 그녀의 편파성에 나도 동조한다. 이 책을 읽어나갈수록 저자가 메릴 스트립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점점 강하게 느껴졌다. 그녀를 사랑하는 광팬이 꼼꼼한 자료를 수집 정리해서 일대기를 펼쳐놓은 거란 생각이 들었다. 첫 부분에서 깜놀한 것이 메릴 스트립의 조상찾기였다. 8대 외증조부가 1620년경 잉글랜드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 , 이런 이야기가 그리 중요한가? 하겠지만 내겐 중요했다. 앞에서도 밝혔듯 나는 그녀가 이탈리아 출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그녀의 모계와 부계의 핏줄을 밝혀주니 이젠 절대 헷갈릴 일 없겠다.

 

조상 얘기부터 시작해서 메릴 스트립의 어린 시절, 학창 시절로 이어지며 자연스레 연기에 발을 딛게 된 내력까지 촘촘히 밝힌다. 버나즈 고등학교 때 홈커밍 퀸으로 뽑힌 이야기부터 예일대에서 연기 전공을 했으며 시고니 위버와는 동창이었다고. 어릴 때부터 그녀는 노래도 잘 불렀고 연기하는데 천부적인 소질을 보였다. 그런데 당시 영화계에서 환영받을 외모는 아니었는지, 영화 <킹콩> 오디션에서 제작자가

진짜 못생겼네. 뭘 이런 걸 데려왔어?”라고 이탈리아어로 불평하자 그녀는 이탈리아어로 이렇게 대답한다.

기대만큼 예쁘지 않아서 죄송한데요, 어쩝니까? 보시는게 다인데.”

 

이처럼 일반인이 알기 힘든 일화들을 대방출하는데 그것을 읽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시간 순으로 서술되기 때문에 메릴 스트립이 출연한 거의 모든 영화가 어떻게 제작되게 되었는지 알려주는데 초점을 맞춘다. 거기에 영화 찍으면서 생긴 비하인드 스토리, 상대 남자배우와의 일화 등은 덤이다. 사실 우리야 완성된 작품으로서 영화를 감상하는 입장이다보니 저런 뒷이야기를 읽을 때 더 재미있다.

 

이 책의 장점은 시간순으로 서술한 것이다. 나처럼 이름만 팬인 사람의 입장에서 이렇게 영화를 촤르륵 정리해주니 못 본 영화를 다시 찾아보아야겠다는 의욕을 불끈하게 만들었다. <엉겅퀴 꽃>이나 <프랑스 중위의 여자>는 메릴 스트립이 주인공이었는지도 몰랐던 초기 작품이다. 이런 영화들의 메이킹 스토리를 알게 되었으니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영화라 할 수 있는 <철의 여인><리키>는 보려고 했다 놓친 거라 이번에 꼭 봐야겠다. ... 이렇게 볼 영화가 많다. 그러니 팬이라기에도 조금 부끄럽다. 나처럼 말로만 팬이라고 하는 사람, 그녀의 전작주의자가 되어보겠다고 맘 먹은 사람, 영화 전공자나 영화부 기자를 꿈꾸는 사람등에게 만족스러운 책이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 책은 메릴 스트립의 영화배우로서의 삶만 조망하는 게 아니다. 그녀의 사생활, 즉 네 명의 자식을 둔 엄마이자 조각가의 아내로 충실한 삶, 정치적 발언도 서슴없이 하는 시민의 삶도 각 영화를 소개하는 내용마다 잘 삽입되어 있다. 마치 시루떡 사이에 팥 고물을 얹히듯, 배추 속 사이사이에 갖은 양념을 끼우듯! , 너무 한국적 비유인가? 그만큼 이 책이 지루할 틈이 없었다는 뜻이다. 영화 제작 이야기가 시작되는가 싶다가 그녀의 가족들 모두 촬영지로 이사했다는 이야기, 주인공에 몰입하여 촬영하는 장면과 그 영화의 줄거리를 읽으며 상상하다 보면 어느새 현실로 돌아오게 만든다. 영화의 흥행 성적과 수상이야기, 비평가들의 혹평과 팬들의 응원(이 팬 중에는 저자도 있다는 거~)으로 이어지는데 술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서술이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다. <거장의 숨결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책처럼 한 영화에 초점을 맞춘 칼럼이나 인터뷰 형식보다 이번 <퀸 메릴>같은 서술방식이 훨씬 가독성이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 있다. 우리는 영화배우를 출연한 영화 속 인물과 너무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나는 더스틴 호프먼을 좋은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출연한 영화가 대부분 선량한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는 너무 오래전에 봐서 더스틴 호프먼이 혼자 아들 키운다고 고생한 내용만 기억하고 있었다. 내 생각에는 그 부분을 너무 부각한 편집이었기에 동정심으로만 남아있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다른 이유라면 당시에 난 문제의식이 없는 관객이었던 게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 밝히는 이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에는 더스틴 호프먼이 메릴 스트립의 뺨을 때리고 아픈 기억을 굳이 들쑤셔 영화에 감정선을 살리려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미국 영화계 미투 운동에서 더스틴 호프먼의 과거 일들이 드러났다고 하더니, 연기는 잘하는지 몰라도 인격은 갖추지 못한 인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에 대해 언급한 인터뷰를 보니 인간으로선 별로인 모양이다.

미쳤어요! 완전히 정신이 나갔어요. (……) 하지만 그는 정말 훌륭한 연기 장인에다 자기 일을 정말 사랑해요.” - <레이디스 홈 저널>197912월호

 

많은 유명 남자배우들과 연기한 메릴 스트립이 우스갯소리로 그들을 평가한 인터뷰도 있다.

"결혼은 레드퍼드와? 괜찮죠. 아니, 아주 좋죠. 섹스는 잭 니컬슨 정도와? 그리고 살인은 더스틴요.(목을 베는 동장을 한다)" - 201289일 토크쇼 워치 왓 해픈스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공화당 지지자의 정체성을 밝히듯 메릴 스트립도 자신의 정치색을 명확하게 드러내어 힐러리 클린턴을 공개 지지했다. 그것이 못마땅했던 트럼프는 트위터로 헐리우드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배우라고 비아냥거렸다. 2016년 뉴욕 셰익스피어 연극 갈라공연에서는 그녀가 트럼프 복장을 하고 나타나 뮤지컬 노래를 불렀다. 이 정도 적극적인 발언과 활동을 했는지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그녀의 변신 복장이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 네이버 연합뉴스 사진

 

이 책에서 아쉬웠던 부분이 바로 사진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물론 인터넷에 들어가보면 사진이야 널렸지만 위 사례처럼 언급하는 내용에 부합하면서 재미있는 사진들을 첨부했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다. 또 초창기에 출연한 영화의 경우 인터넷에 사진자료가 적으니 책에서 소개했다면 그녀의 리즈시절을 보는 맛도 있었을 것이다.

 

책의 장점을 쓰려고 노력했는데 두서가 없는 것 같다. 정리를 하자면, 메릴 스트립의 삶과 영화 인생을 연대기 순으로 서술한 이 책은 그녀의 개인으로서의 삶과 배우로서의 삶을 만나볼 수 있다. 영화계 비하인드 스토리도 재미있다. 나는 이제 또 바빠질 것 같다. 볼 영화가 너무 많다. 먼저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서 그녀의 가출이 입센의 소설 <인형의 집>의 노라의 가출과 어떻게 다른지 당시 미국사회와 여성들에게 왜 반향을 일으켰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 그리고 초기 작품을 찾아보고 싶다. <철의 여인><플로렌스>도 리스트에 올렸다.

 

아카데미에 가장 많이 노미네이트 되었고 세번이나 수상했다는 경력보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배우 메릴 스트립"이라는 이름을 잃지 않고 살아온 그녀에게 박수를 보낸다.

 

어떤 역할을 맡아도 척척 변신하는 배우, 이혼과 약물중독이 일상인 헐리우드에서 자신의 가정을 온존히 지켜낸 여성, 환경, 핵, 정치, 페미니즘 등 사회 문제에 자신의 의사를 확고히 드러내는 시민, 메릴 스트립은 참 아름다운 사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