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로드 - 사라진 소녀들
스티나 약손 지음, 노진선 옮김 / 마음서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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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로드 : 사라진 소녀들>은 스웨덴 출신의 작가 스티나 약손의 데뷔작이다. 이 작품은 2018년 스웨덴 범죄소설상, 2019년 북유럽 최고의 장르 문학에 수여하는 유리열쇠솽을 수상했다. 1983년생인 작가는 스웨덴 북부의 작은 도시 셀레프테오에서 성장했고 20대에 남편을 만나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에 이주했다. 고향을 무대로 하는 소설을 쓰며 향수를 달랬다고 한다.

 

작가가 자신이 살던 곳 스웨덴을 배경으로 삼은 것은 이 소설에 자신의 역량을 풀어놓기에 적합했다고 본다. 북유럽하면 떠오르는 우거진 숲과 백야는 범죄 스릴러 장르의 장점을 살리기 충분했다. 작가의 장점은 장면의 디테일한 서술과 등장인물의 행동으로 심리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딸 리나가 3년 전에 실종되었다.

리나의 아빠 렐레는 혼자서 딸을 찾아 3년 째 실버로드를 헤매고 다니는 중이다. 동네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고 SNS에서 관심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들이나 경찰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렐레는 실종된 사람을 찾으려면 평생이 걸릴지도 모를 실버로드를 눈 감고도 걸을 수 있을 만큼 훤히 꿰게 되었고, 길가의 숲을 샅샅이 훑고, 드문드문 들어서 있는 집에 찾아가 일일이 확인하고 있지만 딸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딸을 찾겠다는 일념이 사그라드는 게 아니다. 날이 갈수록 딸과의 추억은 선연히 떠오르고 간절함도 짙어진다.

 

또 다른 스토리의 한 축은 소녀 메야가 담당한다. 메야는 알콜과 약물 중독인 엄마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떠돌다 이 스웨덴 북부마을 실버로드 근처로 오게 된다. 엄마가 인터넷으로 사귀게 된 남자 토르비요른의 집에서 같이 살기로 한 것이다. 메야는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고 화목한 가정이란 게 어떤 것인지도 모르며 늘 배고프고 불안한 상태로 살아왔다. 엄마 실리에는 메야를 열일곱살에 낳았다. 너무 일찍 엄마가 되어 그 역할에 대해 아무리 모른다쳐도 책임감이라곤 전혀 없는 끔찍한 엄마다. 포르노 사진과 잡지나 끌어다 모으는 늙은 남자 토르비요른이 오히려 메야를 보살피고 걱정해주는, 아빠 비슷한 역할을 한다. 그런 메야에게 칼요한이라는 소년이 다가온다. 메야는 이런 끔찍한 곳에서 사느니 칼요한네 집에서 사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해 칼요한네 집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선 적어도 배는 곯지 않으니까. 그의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은 가정식다웠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설은 렐레와 메야의 이야기가 교차 서술된다. 평행선 같이 진행되던 이야기가 어느 지점에서 접점을 찾을까 궁금했는데 둘은 학교에서 선생님과 학생으로 만나게 된다. 렐레는 한 눈에 메야의 외로움을 간파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찾아와도 좋다고 말한다. 늘 혼자 있는 메야에게서 풍기는 불행의 그림자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메야가 살고 있는 곳이 비르게르(칼요한의 아버지 이름)의 집이라는 것에서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든다. 리나가 사라지고 그 집에도 찾아가봤지만 이상한 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칼요한의 아버지 비르게르와 어머니 아니타는 정상적으로 보였지만 동네사람들은 이상한 집이라고 수군거리는 터였다. 외부와 단절한 채 자급자족하며 살고 아들 셋도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동네사람들과 교류도 없고 휴대폰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미국 팟캐스트는 듣는다. 그것은 국가 음모론에 관한 것이다.

 

렐레는 언제쯤 딸 리나를 찾을 수 있을까? 대체 살아있기나 한 걸까? 3년 내내 찾아다니면서 딸이 죽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렐레의 편에서 제발 리나가 어디에선가 살아있어서 부녀간에 재회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다. 그리고 메야는 언제쯤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살 수 있을까? 칼요한네 집에서 먹을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집안에서 풍기는 음침한 분위기는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이렇게 소설은 독자가 두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들고 그들에게 감정이입하게 했다. 그것은 앞에서도 밝힌 독자의 서술방식 덕분이다.

 

p. 101~102

렐레는 외양간 내부를 터덜터덜 걸었다. 가축은 한 마리도 없고 썩은 건초 냄새가 진동했다. 손전등으로 실내를 비춰보고, 건초더미를 가뤼로 쑤셔서 밑에 아무것도 없는지 확인했다. 벽을 뒤덮은 거미줄과 새똥은 여기에 가축이 살지 않은 지 오래 됐다는 증거였다. 밖으로 나오니 개집이 있었는데 역시 개는 없고 밥그릇에 빗물과 흙이 가득 담겨 있었다. (……)

렐레는 다시 집 쪽을 바라보았다. 집 안을 살펴보고 싶었다. 남자 혼자 살기에는 너무 큰 집이다. 사용하지 않는 방도 많을 것이다. 렐레가 마당을 절반쯤 가로질렀을 때 첫 총성이 울리더니 머리 위 소나무들이 흔들렸다. 렐레는 쪼그리고 앉아 달리기 시작했다. (……)

렐레는 바닥에 몸을 던져 네 발로 기어갔다. 곧 뒤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이내 땅이 흔들렸고, 개의 앞발이 그의 등을 누루자 렐레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개가 컹컹 짖어댔다. 먹이를 잡았다는 뜻이었다. 렐레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누워 있었다. 육중한 발걸음에 풀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쉰 목소리로 개에게 조용히 하라고 명령했다. 렐레는 일어나려고 했지만 남자가 그의 날개뼈 사이를 발로 누루며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위는 렐레가 리나를 찾으려고 남의 집에 무단으로 들어갔다가 당하는 장면이다. 어딘가 딸이 감금되어 탈출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맘에 모든 집을 수색하려는 의지다. 그러다가 저런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현장을 눈에 보이듯이 서술하는 방식은 렐레의 시각으로 독자도 직접 당하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p. 95

토르비요른이 나간 뒤에 메야는 엄마가 자고 있는 침실 문을 빼꼼 열어보았다. 재떨이와 시큼한 레드 와인 냄새가 풍겼다. 엄마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처럼 양팔을 활짝 벌리고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인 채 죽은 듯이 자고 잇었다. 엄마의 젖꼭지는 핏기 없는 살같 위에서 멍 같아 보였고,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가 오르락내리락했다. 메야는 늘 엄마가 숨을 쉬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깼어?”

메야는 침대로 다가가 엄마의 등 밑으로 손을 넣은 다음 한쪽으로 돌려 눕혔다. 엄마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의식이 있다는 신호조차 없었다. 메야는 엄마의 양다리를 끌어당겨 태아처럼 웅크린 자세로 만들고는 엄마의 머리가 침대 가장자리에 닿을 때까지 옆으로 밀었다. 이게 가장 안전한 자세다. 엄마가 혹시라도 자닥가 토할 경우를 대비해서, 메야는 조용히 방을 나가며 도망갈 구실을 찾았다.

 

위 장면에서도 마치 영화의 한 씬같이 서술되는데 있는 그대로의 서술에 적당한 묘사가 첨가되어 관객이 되어 엄마의 방을 보고 있는 듯하다. 딸이 엄마를 챙겨줘야만 하는 상황, 그래도 엄마가 죽지 않길 바라는 메야의 행동이 안타까웠다.

 

렐레와 메야의 과제는 언제쯤 끝나게 될까? 렐레는 딸을 찾지는 못해도 생사여부는 알아야만 하고, 메야는 토르비요른의 집도 칼요한의 집도 아닌 안전하고 평온한 곳에 정착해야만 한다. 어서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은 조급해지는데 범죄자의 면모가 너무 늦게 드러나고 범죄 행위의 사유는 급작스럽게 밝혀진다. 마무리에서 아쉬움이 남는 소설이었다.

 

한 이야기에는 딸을 너무나 사랑해서 집요하게 찾으러 다니는 아빠가 있고, 다른 이야기는 입에 담기조차 아까운 무책임한 엄마가 있다. 스릴러 장르의 맛이 녹아있으면서도 부모의 역할에 대해 묻는 두 이야기가 독자에게는 자칫 혼란스러움을 줄 수 있겠다. 장르물의 재미를 느끼고 싶은데 자꾸 부모 역할에 대한 물음이 떠오르거나, 부성애나 모성애에 대한 생각으로 치우치면 이 소설의 매력을 미처 다 즐기지 못하게 되는, 이도저도 아니게 될 수 있다. 그래도 이 책이 30대 작가의 데뷔작이니 차기작에서는 더 완성도 있는 소설을 만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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