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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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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 딘 쿤츠의 <어둠의 눈>이라는 소설인데, 그냥 재미있다는 말 한마디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재미있다에 내재된 다양한 단어들을 하나씩 떠올린다면 여러 단어가 술술 풀려나올 수 있다. 독자에 따라 어떤 단어에 더 가중치를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 소설이 가진 장르적 재미 또한 짚지 않을 수 없다.
스릴러, 로맨스, SF에 환타지까지?
4일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 안에 다양한 장르적 재미까지 주면서 어색하지 않게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이 대단했다.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어버릴만큼 페이지터너였으니까.
딘 쿤츠라는 작가는 스티븐 킹과 함께 미국 서스펜스 소설의 양대 산맥으로 불린다는데 나는 이번 책으로 처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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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에 발간된 이 소설이 40년이 지나 세계적으로 역주행중인 이유가 코로나 때문이라고 했다. 출판사에서도 그 때문에 대대적으로 광고를 했고 책 속에 등장하는 바이러스 이름이 ‘우한-400’이라고 하니 너무나 궁금했다. 어떻게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예견했다는 말인가 싶어서.
그러나 ‘우한-400’이란 단어는 거의 마지막에 가서야 나온다. 신기하게도 책장을 넘기면서 우한이니 코로나니 하는 말은 언제 나오는 거야?라는 의문은 고개를 들 틈이 없었다. 흡입력 있는 전개가 다른 잡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영상을 보는듯한 서술은 어서 다음 장면은? 하면서 뒷 페이지를 넘기기에 바빴다. 그러면 만족스런 장면이 연출되었다. 450쪽에 달하는 분량이 그야말로 순삭이었다.
라스베거스 쇼 제작자 티나 에번스는 1년 전에 사고로 아들을 잃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준비한 쇼 ‘매직’의 시사회를 앞두고 악몽을 꾼 티나는 자신이 긴장상태라서 그런 것일거라고 넘기려고 했다. 하지만 지난 몇 주 동안 계속 아들이 나타나는 꿈을 꿨고 아들의 방 칠판에 쓰인 글자는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죽지 않았어”
산악캠프에 참가한 아들의 시신을 직접 확인하지 못하고 묻어버린 죄책감은 1년이 지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티나 주위에서 계속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들은 그녀에게 계속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전 남편의 장난으로 생각했지만 아들 방에서, 사무실 프린트에서, 컴퓨터 화면에서, 계속 죽지 않았다는 문자가 뜨고 물건이 움직이는 체험을 하게 되면서 아들이 살아있는 게 아닐까 의심을 하게 된다.
쇼 성공 파티에서 소개 받은 변호사 엘리엇과 만나게 된 티나는 오랜만에 연애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쇼 제작에 성공과 함께 그동안의 힘든 일들을 보상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계속 되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기한 일들은 아들 대니가 살아있을거라는 확신을 하게 되고 엘리엇에게 아들의 무덤을 열어서 시신을 확인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유능한 변호사 엘리엇은 전남편의 방해없이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일을 처리하기 위해 신뢰하고 있던 판사 케네벡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여기서부터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엘리엇의 면모도 드러나게 된다. 잘생기고 요리 잘하는 변호사여도 매력적인 캐릭터인데 알고 보니 전직 비밀요원이었다는 거. 케네벡은 신분을 숨기고 여전히 비밀요원으로 활동중이지만 엘리엇은 그 일에서 손 뗀지 15년이 넘었다. 그러나 케네벡쪽에서 보낸 요원들이 자신과 티나를 죽이려고 하자 예전 실력이 되살아난다.
사랑하게 된 여자를 도와주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 국가적 음모에 휩쓸리게 되고, 아들이 살아있을 거라는 확신에 반신반의하던 그는 숨겨진 사건을 파헤치는 일에 직접 뛰어들게 된다. 경찰의 도움 전혀 없이 자신의 예전 실력을 발휘해서 치밀하게 계산하고 움직이며 뛰어난 사격술로 추적자들을 따돌리는 내용은 소설적 재미를 더욱 배가시켰다.
그에 비하면 전남편 마이클은 찌질남이었고 나중에 비밀요원에 의해 죽게 만드는 설정 역시 만족감을 높였다. 너무 매정? 잔인한가? 그래도 여성 독자입장에서 이런 맛이라도 있어야 소설 읽는 즐거움이 아닐까. ㅎ ㅎ
여자 주인공 티나도 자신의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고 아들을 포기하지 않고 찾아내는 데에 지혜를 발휘하는 모습도 멋졌다. 그런 여성이 예쁘고 매력적인 건 덤이다.
마지막에 드러난 국가의 비밀 사업이 사람을 대상으로 바이러스 실험을 한 것이었고 거기에 사용된 바이러스가 우한-400이다.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 벌이는 일에 연구자는 일본 학자로 나오는데, 그것은 2차대전당시 일본이 731부대에서 인간실험을 연상시켰다. 생화학 무기를 만들어 실험하는 담당자에 일본인을 설정한 것은 작가도 731부대의 실험을 알고 쓴 것 같다.
그런데 40여 년이 지나서야 벌어지게 될 G2시대를 예견했다는 것은 통찰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필 그 바이러스 이름에 우한이 들어간 것은 우연이라 하기에 소름끼칠 정도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역주행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소설가의 상상력은 이렇게 예기치 않은 놀라움을 선사하곤 한다.
지금 유행중인 코로나19가 중국이 의도적으로 개발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에서 시작되어 전세계적 펜데믹 현상을 일으켰다. 중국의 책임론이 화두가 될 수밖에 없는데 며칠 전 독일 최다부수 일간지 "빌트"는 중국 시진핑을 향해 ‘코로나가 당신의 정치적 멸망을 의미한다’며 독설을 퍼부었다. 중국 정부와 과학자들이 코로나가 사람 대 사람으로 전염된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세상에 알리지 않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워싱턴포스트"는 우한연구소가 최고의 안전기준 없이 박쥐의 코로나 바이러스를 실험했다고 보도했다. 의도치 않았지만 바이러스의 온상지가 된 중국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코로나19가 변종이기 때문에 그 활동성에 대한 예측이 어려워 콘트롤이 힘든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에서도 재확진 환자 숫자가 늘어나고 있어 현재 유지중인 사회적 거리두기를 섣불리 해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일상 속 불편함이 길어지고 있지만 고생하는 현장 의료진과 공무원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어서 휴식을 주고 싶은 마음이다.
우한-400이라는 바이러스 실험을 소재로 한 <어둠의 눈>을 읽으면서 작금의 상황을 돌아보았다. 우리가 흔히 고전이라고 부르는 소설은 오래도록 읽히지만 대부분의 소설들은 몇 년 간 읽히는 것조차 힘들고 출간 당시에 반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고 여길만큼 무한대의 상상력을 펼치는 소설의 유효기간을 함부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어둠의 눈>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