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에서 제일 우울한 동네 핀란드가 천국을 만드는 법 - 어느 저널리스트의 ‘핀란드 10년 관찰기’
정경화 지음 / 틈새책방 / 2020년 2월
평점 :

이런 나라가 있다.
1년 중 겨울이 6개월이나 지속되고, 낮에도 영하 20도는 기본이며 몇 날 며칠 동안 해 구경은 하지도 못하고, 월급의 35%는 세금으로 내야하는데 내가 낸 세금이 얼만지 전국민 누구든지 열람해 볼 수 있고,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아파서 병원에 가면 최하 2~3일은 기다려야 진료 받을 수 있는 나라!
이런 나라에서 살고 싶은가?
나는 못 산다!
일단 날씨 때문에 안 되겠다.
햇빛 못 보는 건 견디기 힘들다.
이런 나라도 있다.
무상 교육에 무상 급식, 무상 의료는 기본이고, 국민의 70% 가까이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노인들이 모여서 집을 짓고 같이 살겠다고 하면 도심에 부지를 장기 임대로 내어주고, 정치인과 공무원을 무한 신뢰하듯 서로가 서로를 믿고 사는 나라!
이런 나라라면?
나는 가서 살고 싶다.
교육과 복지가 잘 되고 무엇보다 상호신뢰가 국민성처럼 박혀있다지 않나.
그런데!
위에 언급한 두 나라는 다른 나라가 아니라 같은 나라다.
그러면 나는 가서 살고 싶은가?
내 대답은 아니오!다.
왜냐하면 위의 모든 조건 중 내게 가장 일순위는 날씨이기 때문이다.
어릴 땐 몰랐는데 나이들수록 나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핀란드의 추위는 어찌어찌 참을 수 있겠지만 어둡고 흐린 날이 많다고 하니 그건 견디기 힘들 것 같다. 비오는 날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며칠간 계속 비가 오면 우울해지면서 쨍한 햇님이 보고 싶고 따사로운 햇살을 느끼고 싶어진다. 이젠 봄가을이 많이 짧아졌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의 사계절이 좋다. 한 계절만 있는 곳에 산다는 건 불행한 일이다.
같은 나라인데 정반대일 법한 조건들이 공존하고 있는 나라는 바로 북유럽의 핀란드다.
위 조건의 양면성은 손바닥의 위와 아래처럼 공존할 수 밖에 없다.
책의 제목 <세상에서 제일 우울한 동네 – 핀란드가 천국을 만드는 법>처럼 말이다.
부제에 “어느 저널리스트의 핀란드 10년 관찰기”라고 되어있는데 저자 정경화씨는 핀란드와10여 년 간 이어진 인연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2009년에는 1년간 교환학생으로 핀란드를 다녀왔고, 2016년에는 1년동안 조선일보 단기 특파원으로 머무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취재한 내용을 이번에 책으로 내게 되었다.
이 책은 제목에서 짐작가능하다시피 핀란드는 세상 우울한 곳인데 또 천국이란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저자는 사회 각 분야를 조망하고 한국과 비교도 한다. 기자출신답게 핀란드 미디어나 핀란드와 관련된 외신 기사들을 분석, 인용하고, 일반인들과의 인터뷰도 비중있게 다룬다.
이 책은 핀란드하면 그저 복지가 좋고 학생들의 공부성적이 세계에서 1등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그 이면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핀란드를 단편적인 뉴스 기사로만 접했던 사람들 중 핀란드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이 책을 권유한다. 핀란드의 복지정책이 궁금한 사람들, 노키아가 어쩌다 추락하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추천한다. 핀란드에 대해 아예 무관심했던 사람들도 읽으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핀란드라는 나라에 대한 이야기지만, 현재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어려움, 사회적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가면 좋을지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나라에 바로 적용하지 못하겠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로 정치인들이 읽어보면 좋겠다. 눈앞에 이익이나 국회의원 자리 보전하는 것에만 눈 벌개진 사람들의 눈에 이런 책이 들어올리 만무하겠지만...
책은 총 3 PART로 나누었고 각각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PART Ⅰ는 핀란드의 교육에 대한 내용을,
PART Ⅱ에서는 노키아에 대한 내용을 위주로 핀란드 경제 전반에 대해 다룬다.
PART Ⅲ의 제목에 등장한 대로 핀란드에서 ‘신뢰’는 어떻게 보이지 않게 사회를 작동시키는기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책의 목차 대로 내용을 요약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소개를 읽고 내용이 더 궁금하다면 책을 사보길 권한다.
나는 이 책에서 찾은 키워드 두 개로 리뷰의 후반부를 정리하려고 한다.
두 단어는 ‘자립’과 ‘신뢰’이다.
놀라운 일이다.
며칠 전 읽은 기시미 이치로의 책, <나쁜 기억을 지워드립니다>에서도 두 단어가 가장 와닿았는데 전혀 다른 분야의 책에서 동일한 키워드를 찾아내게 되다니!
인간의 문제는 결국 국가의 문제로 확장되어도 그 근본은 유사할 수밖에 없고 개개인의 관계가 거미줄처럼 네트워킹 되어 국가가 되는 것이니 같은 단어로 수렴되는 것 같다.
먼저 ‘자립’이라는 키워드를 살펴보자. 나는 인간의 기본 조건은 자립이며, 그 자립이 꼭 부모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하고 사람에 걸맞는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일들도 본인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이들도 그렇게 가르쳤다.
저자는 복지강국 핀란드의 기본은 인간의 자립이라고 말한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두운 겨울 아침, 눈 쌓여 발이 푹푹 빠지는 길을 아이 혼자 제 몸통만한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고, 초등학교 입학하는 일곱 살 아들에게 핀란드 부모는 안장이 높은 자전거를 주며 이렇게 말한다. “이 방향으로 5킬로미터 가면 학교가 나온단다.”
또 다른 사례, 핀란드 사람들은 집안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는다. 아무리 바쁘고 돈이 많아도 가정부를 고용하는 일은 드물다. 이처럼 핀란드에서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하는 것은 어릴 때부터 몸에 배어 있고 그것을 타인이 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한다.
일할 능력이 없는 노인들도 무작정 국가에 기대지 않는다. ‘로푸키리’라는 노인 주거 커뮤니티는 요양원이나 양로원이 아니다. 평균 69세의 노인들이 모여 ‘자립하는 노인들의 모임’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자신들이 자립할 수 있는 공간을 스스로 돈 들여 짓겠다고 했고 정부는 헬싱키 시유지를 건물부지로 싼값에 장기임대 해주었다. 공동생활을 하는 그곳에서 노인들은 남의 도움 없이 개인생활과 공동체 생활을 같이 누리고 있다. 이 모델은 인기가 많아져서 세 번째 시설을 짓기 위해 입주 희망자를 모집하고 있으며 시에서 부지를 공급한다.
p. 192
핀란드의 복지철학은 한마디로 ‘시민의 자립’을 돕는 것이다. 자립이란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 앞가림을 하며 살아가는 일이다. 부모도 자식도 남이다. 이렇게 말하면 지나치게 냉정한 개인주의로 비칠지 모르겠다. 사실은 그 반대다. “경제적으로 서로 의존하지 않는 가족들은 서로를 더 아끼고 사랑하게 된다”고 핀란드의 저널리스트 아누 파르타넨은 주장한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핀란드 국민들은 자신을 스스로 돌볼 줄 알고 책임도 진다. 월급의 35% 이상을 세금으로 내면서 복지혜택을 당당하게 누리며, 우리의 사고로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신뢰감을 국가와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 단어, ‘신뢰’!
<나쁜 기억을 지워드립니다>에서 저자는, 자녀의 자립을 위한 기본은 부모의 신뢰라고 했다.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지켜보는 일, 그 아이가 살아있어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아이는 그것으로 부모가 자신을 믿고 있다고 여기게 된다.
국가와 개인을 같은 맥락에 놓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핀란드 사람들이 국가에 가지는 무한 신뢰감의 기본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들은 자신의 민감한 개인 정보인 의료 생체 정보를 국가에 제공하며 이용하도록 한다. 우리가 부모를 믿는다는 것은 그들이 자식에게 나쁜 짓을 하리라고 예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니까 무조건 믿는다는 말의 전제에도 이미 그들은 우리가 잘못되길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핀란드의 진짜 힘은 ‘신뢰’라는 챕터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p.255
핀란드의 미래를 밝게 비추는 근본적인 힘은 핀란드 사회 전반에 깔린 신뢰에서 나온다. 신뢰가 바꾸는 미래라니,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다. 경제발전을 위해 개인의 의료 기록과 유전자 정보를 개방하려는 정부, 이 정보를 활용해 바이오 신기술과 신약을 개발하려는 기업은 전 세계 어디에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기꺼이 신뢰하는 국민은 만나기 힘들다. 핀란드인들은 정부와 기업이 국민의 데이터를 악용하거나 유출하지 않고, 인간의 삶을 더 낫게 만들 기술을 개발하며 산업을 발전시키려는 선의로 활용할 것이라고 믿는다. 국민들이 꼭 알아야 할 정보는 제때 투명하게 제공될 것이라고도 믿는다.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핀란드 사람들이 꼭 지켜야 했던 것은 상호간에 약속이었다. 상대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얼마나 피해를 끼칠지를 잘 알기에 약속은 꼭 지켰고, 이러한 역사적 과정속에서 신뢰는 그들의 국민성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핀란드는 현재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고령화와 복지비용의 증가, 이민자 문제, 악화되는 경제상황과 일자리 문제등등. 그러나 역사적으로 그래왔듯 신뢰를 바탕으로 핀란드 사람들은 그들의 길을 찾아나갈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했다.
우울해도 천국을 만들 수는 있고, 자신의 지금 상황에 만족하고 사는 것을 행복이라 여기는 핀란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지금 우리의 환경, 내가 처한 상황을 한반짝 물러나 바라본다. 전염병때문에 경제가 너무나 힘든 상황이지만 정부의 대처방식과 국민들의 태도가 세계의 모범이 된다고 하니 자부심이 솟아난다. 우리는 이 난관을 잘 이겨낼 것이고 이 정부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