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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파링 파트너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76
박하령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2월
평점 :

박하령 작가의 신작 단편소설집 <나의 스파링 파트너>가 자음과 모음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작가는 장편소설 <의자 뺏기>로 제 5회 살림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했고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로 제 10회 비룡소 블루픽션상을 수상했다. 주로 청소년소설을 쓰고 있는데 이번 책 <나의 스파링 파트너>도 주인공들이 모두 청소년이다.
이 소설집에는 모두 6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어른들 눈엔 청소년들이 뭔 걱정이 있겠나 싶지만 그들도 나름대로 걱정과 고민이 많다. 어른도 분명 청소년이었던 시절이 있었을텐데 지금에 와 돌아보니 그 때의 고민은 별것도 아니었던 것만 같다. 하지만 인간이 어디 그런가? 자기 앞에 닥친 문제가 가장 커 보이는 게 인지상정이고 청소년 시기에 하는 고민은 우주적으로 크게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작가가 소설에서 다루는 문제들은 그들이 집과 학교에서,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겪는 (어른이 보기엔)소소하지만 (그들에겐 몹시도)커다란 것들이다. 그러니 이 책은 청소년들이 읽으면 좋다. 자신과 유사한 고민을 하는 주인공에 감정이입할 수 있을 것이고, 현재 괴로움이 있다면 그 크기가 한결 줄어들 것이며, 막막해 보였던 문제의 물꼬를 틀 힌트도 얻게 될 것이다. 청소년 소설이라 해서 꼭 청소년만 읽어야 하는 건 아니다. 학부모들이 읽는다면 자녀의 마음을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 엿볼 수도 있겠고, 자녀와 같이 읽고 이야기 나누어보기에도 적당한 책이다.
섬세한 감성들을 드러내기엔 여학생이 적당했는지 주인공은 대부분 여학생이다. 표제작 “나의 스파링 파트너”의 주인공만 남학생이다. 범생이 스타일인 현민이 어느날 친구의 담배 하나를 몰래 가져와 으슥한 곳에서 피우려고 하다가 우연히 성추행 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그 자리를 피하다가 떨어트린 휴대폰을 3층에 사는 기주가 주웠다면서 가져다준다. 그 일로 기주는 교묘하게 현민이 성추행 사건의 당사자인 듯 몰아세우며 협박하기에 이른다. 억울하지만 현민은 담배를 피우려고 했다는 사실이 드러날까봐 당당하게 밝히지 못하고 기주에게 끌려 다닌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등장인물들은 다 학생인데 어쩜 야비한 면모를 드러내는 아이들이 있는지 사실 놀랐다. 더 이상 학생들과 접하게 될 일이 없어져서 2000년 이후에 출생한 그 아이들과 나는 영 세대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모양이다. 또록또록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옹골찬 아이들을 보니 놀랍고 기특하단 생각이 드는 한편, 기주나 “수아가 집으로 가는 시간”의 수아같은 아이들을 보면서는 다른 이유로 또 놀라웠다. <90년생이 온다>는 책으로 90년생들의 의식과 삶에 대한 태도를 알았듯 청소년 시기의 아이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 해볼 기회가 없으니 이번 책으로 그들의 생활이나 사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비록 소설이지만 말이다.
현민은 어떻게 되었을까? 제목처럼 그 아이는 기주를 자신을 단련시킬 스파링 파트너로 여기기로 마음먹는다. 쓸데없이 겁먹고 막연한 두려움에 떨던 자신을 떨쳐버리려 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현민은 아빠와의 관계가 서먹하다. 아빠의 강요 아닌 강요로 초등학교 5학년 때 캐나다에 홈스테이를 갔다가 집안 형편으로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어서 4년 만에 돌아오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아빠와 헤어져 있었던 시간의 공백때문에 서먹한 것만은 아니다. 현민은 대놓고 “아빠가 싫다!”고 말한다. 모든 일을 경제적 논리로만 귀결시켜며 18번 멘트는 ‘쓸데없이’이고 권위주의적으로 지시만 하기 때문이다.
어른의 입장에서 옹호해보려 해도 자녀들에게 강요만 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현민아빠의 편을 들기는 좀 민망하다. 소설은 현민이 기주의 의뭉스런 태도에 대항하려고 마음먹은 것으로 끝이 나지만 그것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여동생 현선과 함께 맨홀에 빠진 길고양이를 구하러 나가겠다는 행동에 쓸데없는 짓거리들 말고 들어가라고 윽박지르는 아빠에게 현민은 이렇게 말한다.
“쓸데없고 있고 정도는 저도 판단할 줄 압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은 쓸데없는 일이 아닙니다.”
현민이 기주를 스파링파트너로 삼겠다고 한 것과 억압적인 아빠에게 당당하게 말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한 것은 어른으로 가는 출발점이 되는 셈이다. “마이 페이스”의 주희가 ‘내 페이스대로’ 걷는 마지막 장면 역시 유사성을 띤다. 친구 하정의 말처럼 ‘이렇게 사는 사람’, ‘저렇게 사는 사람’을 긍정해보고 싶어진 것이다. 부모가 제시하는 한 방향 말고.
그 외의 소설에 등장하는 청소년들도 자신의 문제를 어떠한 방식으로든 해결하려고 애쓴다.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시기, 그 어정쩡한 자리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답답하기만 한 주인공들의 무대에 독자도 같이 서 보게 하는 기회를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