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 번 죽었습니다 - 8세, 18세, 22세에 찾아온 암과의 동거
손혜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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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는 세 번 죽었습니다>는 87년생 손혜진이라는 여성의 암투병기다. 그저 암투병기라고 하기엔 그에게 닥친 일들이 너무 모질어 보인다. 정말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한 사람에게 저렇게 여러 번 시련을 줄 수 있을까 싶었다.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을까?’

‘읽는 사람도 너무 힘들다.’

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조차 미안했다. 그의 일생이라 할 수 있는 암투병기의 내용들을 일일이 다 나열하는 것도 미안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리뷰를 써야하기에 정보를 소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저자는 올해 34살인데 암 진단을 세 번이나 받았고 죽을 고비를 넘겼고 저자 자신도 이제 네 번째의 삶을 살아간다고 표현하고 있다. 8세, 18세, 22세에 찾아온 암으로 병원을 제 집 드나들 듯 다녀야 했고, 반복되는 수술과 항암치료를 꿋꿋이 견뎌냈으며, 왜 자신에게만 이런 불행이 닥치는지 울분을 토했다가, 꼭 삶이 행복해야할 이유가 없다는 말을 위안삼아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한 번도 아니고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닌 짧은 인생에 암 투병을 세 번이나 했다는 것을 경험해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어느 정도 힘든 일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 역시 마친가지지만 지인 중에 평생 가족의 암투병을 수발한 사람이 있어 이 책을 읽으며 그의 일생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의 첫째 딸은 8살에 백혈병에 걸렸는데 겨우겨우 살려냈고 둘째 딸은 17살에 골육종으로 오래 투병했는데 결국 한쪽 다리는 절단해야 했다. 몇 년 전에는 남편마저 폐암으로 투병하다 저 세상으로 먼저 보냈다. 그리고 작년에는 막내 딸마저 갑상선암으로 수술했다. 본인을 제외한 온 가족이 암투병을 한 셈인데 그 수발을 드는 심정이 어땠을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친척으로서 병문안 가서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내 말이 그에게 뭐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당시에는 힘들겠다, 안됐다 정도의 생각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 힘든 시간들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더 모르겠다. 그저 덤덤하게 병문안 다녀왔던 때가 이제 와 미안해졌고 그의 일생도 참 기구하다는 생각밖에...

가족 4명의 암 투병 수발을 한 지인이나, 딸의 암 투병을 몇 번씩이나 한 저자의 엄마에게 내가 무슨 자격으로 감히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래도 그동안 잘 해왔다고, 잘 지나왔다고, 고생 많았다고...

이제 저자의 남은 인생에도 내 지인에게도 더 이상은 별 일 없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한동안 병에 인생을 저당 잡히고 말았다며 억울해 했지만, 사실 진짜 저당 잡힌 것은 가족들이었는지 모른다. 딸의 병시중을 하고 병원비를 충당해야 했으니까. 나는 죄인이었다. ‘나 때문에 우리 집이 가난한 거 아닌가...’하는 죄책감에 시달리곤 했다. 절대 적지 않은 병원비를, 어렸을 때 아파서 꽤 많은 돈이 깨졌는데 또다, 또.

실제로 남동생이랑 싸우던 중에 “우리 집에 돈이 없는 건 누나 때문이야.”라고 했을 때는 충격이 컸다. 나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던 중이었지만, 그래서 우울했지만, 그래도 동생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게 괘씸했다. 물론 동생이 바로 사과하기는 했지만, 한동안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래도 이런 상처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집에 사랑이 충만하기 때문이겠지. 가족들의 희생과 헌신, 애정을 알고 있다. 그래서 고맙고, 행복하고, 때론 미안하다.

이제 나는 삼십대가 되었다. 친구들도 하나둘 청춘이, 시간이 흘러가는 게 아깝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내 말이 그 말이었어.”하고 바람결에 조용히 속삭였다.

이십 대에는 삶의 끝을 생각하며 살다보니 버킷리스트를 실현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바빴는데, 지금은 그냥 행복한 하루를 보내면 됐다 싶어졌다.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만족스러운 하루였다’라고 생각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동안 쌓아온 하루하루가 뿌듯했다. 부족하고 서툴렀지만 욕심을 내려놓고 이제는 스스로를 칭찬하기로 했다.

2019년 나는 여전히 치료 중이다. 내 인생은 절대 평범하진 않지만, 꽤 즐겁게 살았다. 힘든 시기에 곁을 지켜준 가족과 친구들이 있어 든든했다. 그래서 자주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무엇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내 생명의 이야기에 설레고, 오늘 살아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내가 지나치게 많이 소유한 것은 아닌지 부끄러운 날이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무엇보다 그걸 알고 있는 내 인생이, 꽤 사랑스럽다.

진부하기 짝이 없어 보였던 말,

“살아있음에 감사하다.”는 그 말, 손혜진씨는 충분히 해도 되는 말이다.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고 부끄러울 때도 있고 사랑스러울 때도 있는 저자의 인생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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