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나빴고 거의가 좋았다 -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박선추 외 지음 / 담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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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SNS에 자기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것을 관종이라는 부정적 단어로 부르기도 하지만 강원국 작가도 본인은 관종이라고 스스럼 없이 표현하기도 한다. 글을 써서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를 자아계발이라 부르든 관종이라 부르든 요즘은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활발한 SNS 활동 탓인지 예전보다 책을 낼 수 있는 문턱이 낮아져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글로 자신을 드러내는 세상이 된 건 사실이다.

 

여기 일반인 네 명 박선추, 박성식, 조수연, 최선경씨가 쓴 글들로 한 권의 책을 냈다. 이미 자신의 저서를 낸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기록디자이너 윤슬작가의 피드백을 받은 사람들의 글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윤슬작가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각기 다르게 살아온 네 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경험에서 끝내지 않고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한 흔적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갈 것이다. 새롭게 발견한 사실을 자신의 삶에 적용시키기 위한 다짐을 읽으면서 자신과 새로운 약속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친절함과 함께 타인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겠다고 약속하는 그들의 목소리엔 희망이 숨어있다. ‘원하는 것이 있다라는 것이 결과와 상관없이 행복이고, 기쁨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싶다면, 내 인생에 대한 신뢰감을 회복하고 싶다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삶이 던진 질문으로 고민에 빠지거나 불안해하기보다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고 원하는 것이 있다라는 사실에 안도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그들의 에세이를 읽으니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살면서도 스스로를 계속 채찍질하는 사람, 생활 속의 소소한 행복을 찾으며 만족하는 사람,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 아주 강한 효녀까지... 그들의 일기 같은 글들은 유명 작가의 에세이를 읽을 때보다 쉽게 공감이 되었다. 작가라기보다 친구나 인생 선후배 같다고 여겨져 거리감이 좁혀졌기 때문인 듯하다. 그들의 상황과 내 상황을 비교해보기도 했고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반추해 보기도 했다. 읽는 사람이 이러했는데, 직접 글을 쓰고 몇 번이고 퇴고를 한 그들은 삶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는 시간이되었을 것 같다. 처음보다 향상된 글쓰기 실력은 덤으로 받았으리라. 책이라는 결과물을 받아들고 그들은 한걸음 성장한 자신을 뿌듯해했을 것이고, 그들은 보는 나는 부러워할 수밖에 없다.

 

박선추씨의 엄마와 여행한 에피소드들을 읽으면서는 부끄러웠다. 미혼인 그와 나를 단순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겠으나 나는 친정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작년 여름 동생의 경찰합격을 축하하기 위해 부모님 모시고 동생과 제주도 여행을 가본 것이 처음이었다. 물론 그것은 가족여행이었고.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아니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엄마와 같이 여행을 가지 못한 이유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꼽아보고 있다. 핑계인 것이다. 이건 거의 자기합리화의 달인 수준이다. 나는 엄마생각을 하면 속좁은 딸이 되고 만다. 이것 역시 내가 왜 이럴 수밖에 없는지 이유를 떠올리는 것이 자동반사처럼 일어나는 현상인데 엄마와 그리 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해야겠다. 이번엔 변명이다. 엄마에게 잘해드려야겠다는 마음이 순수하게 일어나서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면서도 나 왜 이렇게까지 해야하는 거지? 라며 억울함이 차오르기도 한다. 이런 모순된 감정들을 친정의 시시콜콜한 대소사를  챙기면서 늘 느낀다. 신경쓰고 챙겨드리는 일을 기분 좋게 하든, 나몰라라 외면하든 하나만 하면 될 텐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아마 부모님 돌아가실 때까지 그럴 것 같은 예감이다.

 

 

조수연씨 글에도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는데 진심으로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우러났다.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친정엄마 살아생전에 당신의 일생을 책으로 써드리겠다고 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 부분에서는 시어머니 생애사를 쓰기로 하고서는 중단한 채 미루기만 하고 있는 내가 죄인처럼 느껴졌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그 일을 해보겠다고 큰소리 쳐놓고 이런저런 핑계만 대면서 다시 시작을 못하고 있다. 나는 아주 핑계만 대는 인간이다.

 

두 번째 저자 박성식씨는 투자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가 주식투자를 실패한 경험을 겪은 후 이제 그런 쪽으로는 관심을 내려놓았다고 하면서,

"돈이 더 많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따라가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기보다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려 한다"고 썼다.

그런 마음을 먹게 된 것은 독서와 글쓰기의 영향이 컸다고 했다.

"독서를 하면서 행복의 의미를 조금씩 알게 되었고 글쓰기를 하면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깨우친 것 같다."

 

이 부분을 읽으며 또 자아비판한다.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깨닫고 행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왜 이러나 싶다.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쓰면 변화가 있어야 한다. 내 생각은 얼마나 변했나? 본격적으로 열독한 것은 10년이 넘고 매일 블로그 글쓰기 한 것은 700일이 넘었다. 그런데 나란 인간은 무슨 변화가 있는지 모르겠다.

책 리뷰 위주로 써서 그런가?

나 자신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하지 않기 때문인가?

책 리뷰를 쓰면서 내 생각을 분명 덧붙이는데 글에도 사고에도 발전적 변화가 없는 것같아서 좀 답답한 상황이다.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에세이, 즉 오롯이 내 생각을 풀어내는 글을 쓰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일부러 피하려고 책 리뷰만 쓰는 것인가?

에세이에서 자신을 까발리는 게 두려운 것인가?

뭐가 부끄러운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아무래도 용기가 없는 것이다. 이 책을 낸 사람들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드러내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는 것으로 자평한다.

 

 

마지막 저자 최선경씨는 이미 책을 여러 권 냈으며 활발하게 블로그 활동을 하고 있다. 교직에 있으면서 자신의 능력을 많은 이들에게 공유하고자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고 한다. 아이의 육아일기를 책으로 내기도 했다. 그는 기록과 공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부분은 며칠 전 북토크에서 만난 문희정 작가가 했던 말과 일치한다.

 

앞에 쓴 내용들이 자학하는 것뿐이라 이제는 자위해야겠다. 2년여간 블로그 글쓰기를 하면서 쓴 리뷰들은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독서의 결과물로서 기록했고 그것을 읽은 사람이 몇 명 되지는 않는다. 최선경씨처럼 영향력이 크지 않지만 내 글을 읽고 공감을 해주는 사람 몇몇이 있으니 공유도 하고 있는 것으로! 역시 자기합리화의 달인인가...

 

책의 부제이자 최선경씨 마지막 글의 제목은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이다. 최선경씨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도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을 잃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여 누군가에게는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 누군가를 설레게 하는 사람, 영감을 주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아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계속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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