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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철학이 필요해 - 고민이 너무 많아서, 인생이 너무 팍팍해서
고바야시 쇼헤이 지음, 김복희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2월
평점 :

인생이 괴롭다면?
새해부터 웬 고민?
새해라서 계획과 희망으로 설렌다면 다행이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조만간 그 계획도 수포로 돌아가고, 일도 제대로 안 풀려, 연애는 더 안 풀려, 이런저런 고민들로 괴로워질 것이다. 이건 무슨 회의론자, 염세주의자라서 그런 게 아니라 인생 웬만큼 살아보니 새해 첫 날 품은 장밋빛 희망이 대체로 한 달이 못가 무너졌던 경험이 차곡차곡 쌓였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아마 1월이 지나갈 즈음엔 무수한 고민들로 머리가 와글와글 거릴 것이다. 그럴 때 누군가에게 그 고민 확 털어놓고 싶은데, 무슨 말이라도 좋으니 조언을 듣고 싶은데, 그럴 사람이 주위에 없다. 그렇다고 상담소 같은 데를 찾아갈 수도 없고...
정말 그럴 때! 끙끙 앓거나 우울해 하지 말고 읽어보면 딱인 책이 나왔다. <그래서 철학이 필요해>이다. 상담소 찾아다닐 필요없이 철학자 상담소를 이용해보길 권한다. 이 책에서는 25가지 보편적 고민에 철학자 25명이 처방전을 써준다.
'앗, 철학?? 어렵겠는데...'
라고 지레 겁먹지 마시라. 이 책은 기존의 철학책들과 분명한 차별점이 있다. 그래서 쉽다. 25가지의 고민을 6개의 카테고리로 구분했고 일, 자존감, 관계, 연애와 결혼, 인생, 죽음이 그것이다. 이제 각 장의 구성을 살펴보자.
1장 "일" 파트의 다섯 번째 고민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만 그만둘 수가 없어요.'는 질 들뢰즈가 맡았다.
그는 아주 쉽게 말한다.
p. 66~67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두지 못한다면 그만두지 않아도 됩니다. 단호히 회사를 등질 필요 따위 전혀 없고, 그대로 남아 있어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 상태에서 시간을 요령있게 활용하면 됩니다. 회사 내규에 반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인 일들이 있죠. 이때 회사 외부로 눈을 돌려 뜻을 함께할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입니다. 물밑에서 구상을 발전시키면서 뿌리를 키우고 싹을 틔울 수 있도록 북돋는 식으로요. 적당한 시기에 다다랐다 싶으면 창조적인 활동을 도모하는 프로젝트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어 회사 외부에서 자신의 가치를 높입니다. 그 과정 자체가 지긋지긋한 회사생활에 좋은 기분 전환이 될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물샐틈없는 관리가 속속들이 미치는 고도 자본주의 산업 사회에서도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며 그 속에서 스스로 자유롭게 성장하며 살아가는 법을 들뢰즈는 탈주라고 명명했습니다.
5쪽 반 정도 분량의 상담으로 고민 해결법과 들뢰즈의 사상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상담 마지막에서는 이렇게 쐐기를 박는다.
폐쇄적이고 갑갑해 보이는 직장 환경도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지 ‘벗어날 수 있는’ 방법과 틈새로 가득한 희망의 탈출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상담으로 2% 부족하다 싶으면 그 뒤에 연결되는 “알아두면 쓸데 있는 철학 스토리”로 보충할 수 있다. 본문에서 제시한 ‘탈주’, ‘구멍(line of fight)’라는 개념을 추가 설명한다. 그리고 들뢰즈와 가타리가 제시하고 네그리가 영향을 받은 ‘리좀’이라는 개념에 대한 설명도 있다.

최종 마무리는 책 소개인데 들뢰즈 편에서는 <안티 오이디푸스>가 소개된다.
이렇게 하나의 고민은 11쪽으로 가뿐하게 해결된다. 읽는 속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상담(읽는)시간은 넉넉하게 30분정도면 충분하다. 한 편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해서 이 책을 한 번에 다 읽는 것은 비추다.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이나 유사한 것들, 궁금했던 것들 위주로 천천히 읽어보는 것이 좋다. 아무리 간단하게 고민 해결을 한다고 해도 상담 내용이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으니 꼼꼼하게 곱씹으며 읽고 마지막 추천 책을 더 찾아 읽어보면 좋겠다. 이 책은 책장에 꽂아두었다가 또 다른 고민이 생겼을 때 유명 철학자를 소환해보는 맛이있을 것이다. 일명 골라먹는 재미? 아니 골라 상담 받는 재미 되겠다.
그럼 이 책은 꼭 고민이 있는 사람만 읽어야 할까? 물론 그렇지 않다. 고민으로 연결했지만 일종의 철학책이기 때문에 철학자와 철학 사상 입문서로도 손색없다. 25명의 철학자를 한 권으로 만나볼 수 있으니 웬만큼 유명한 철학자는 이 책에 대부분 소개되고 있다. 그러니 철학에 관심 가지기 시작한 독자라면 쉽게 읽을 수 있다. 각각의 고민에 응답하는 철학자를 대리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작가 “고바야시 쇼헤이"이다. 그는 게이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후 현재 광고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 <웃게 하는 기술>이라는 베스트 셀러를 냈고, 최근에는 인간관계, 커뮤니케이션 등과 같은 일상적인 문제에 철학과 역사의 지혜를 결합해 인문적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데 관심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그는 다른 분야를 철학과 콜라보하는 실력으로 이 책도 읽기 쉽게 구성했다. 인간사 고민을 철학을 끌어와 상담해주는 형식과 짧은 분량이 철학서임에도 읽기에 거부감이 없다.
내가 관심있게 읽은 주제는 5장 “인생”에서 ‘왜 우리의 삶은 쳇바퀴 돌 듯 똑같을까요?'이다. 이 내용을 상담하는 이는 일본의 선승 “도겐”이다. 무언가에 유용하고 유익하리란 생각을 단념하라, 지금 여기에 있는 나에게 철저히 집중하라 는 가르침이다.

p. 259~260
귀찮아서 차일피일 미루고 수습은커녕 왜 해야 하느냐고 툴툴거리던 일이 있다면 일단 그런 생각을 잊고 성심껏 임해봅시다. 평소 청소할 때 지나쳤던 부분을 말끔하게 치우고 오랫동안 닦지 않았던 물건을 닦아봅시다. 언젠가 버려야지 생각하고 쌓아둔 물건을 정리하고 세간 가짓수를 줄여봅시다. 정성스레 우려낸 육수를 넣어 밥을 지어봅시다. 회사에서 일정을 조정하거나 문서를 작성할 때 세부사항을 꼼꼼하게 처리해봅시다.
우리가 회사나 가정의 잡무를 움직이는 좌선으로 파악하고 목적을 품지 않은 채 전심전력으로 수행한다면 어느새 우리의 마음속에는 부처가 깃들 것입니다. 사소하게 보일지 모르나 이런 사소한 일들은 분명 우리 인생에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새해가 되고 새로운 날들에 대한 희망도 사그라들어 지루해질 때는 이 부분을 다시 펼쳐볼 것이다. 손을 움직이고 매일 하던 일을 더 성심껏하면 과연 내 맘속에 부처가 깃들지 궁금하다. 부처까지는 아니어도 아마 마음 수양은 되지 싶다. 그러다가 지루한 일이 재미있다고 여겨지면 다행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