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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20.1
샘터 편집부 지음 / 샘터사(잡지) / 2019년 12월
평점 :
품절

월간 샘터 2020년 1월호의 표지는 빨강으로 강렬하다. 정중앙에 자리잡은 월척을 낚아올리는 낚싯대의 포물선이 2020이라는 숫자가 주는 둥그런 이미지와 샘터 창간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역동성을 표현하는 듯하다. 창간 49년만에 찾아온 폐간 위기를 많은 이들의 격려와 후원으로 다시 출발하는 샘터 편집장 이종원씨는 이렇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기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 자체로는 회사의 경영난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없지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일깨워 주었음은 분명합니다. 아직도 샘터가 해야 할 역할이 남아 있다는 걸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긴 세월 변함없이 샘터와 함께 해주신 독자들의 응원 덕분에 이제 다시 미래를 준비하려 합니다. (……) 내려놓은 짐의 무게만큼 보다 멀리 갈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이렇게나마 2019년 한 해를 십시일반의 기적으로 갈무리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2020년 새해에는 보다 좋은 소식만 전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월호는 내지의 디자인도 조금씩 수정하여 새로운 느낌이고 바탕색은 이전보다 미색 컬러를 더 넣어서 보기에 편했다.
샘터에 사연이나 수기가 실린 일반인들의 글 아래에는 글쓴이의 소개가 있는데 작가를 꿈꾸는 이들이 많다. 이번호 특집 사연의 주제는 “10년 후의 내 모습”이다.

10년 후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사연들이 많았다. 나이도 지긋한 분들이 작가의 꿈을 꾸고 있고 지금도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는 사연을 읽으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나는 최근 늙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할 수 있는 것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푸념을 했는데 말이다. 이렇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면서 살고 싶다는 이들의 사연을 보며 나의 10년 후는 어떤 모습일지 그려보았다. 당장 내년에는 지금보다 덜 자학하고 덜 닦달하며 살고 싶다. 올 초에도 이런 다짐을 했는데 오히려 반대로 행동하며 자신을 괴롭혔다. 특집 사연 덕분에 2019년의 내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새해를 맞이하는 호라서 그런지 장애인을 위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기사가 두 개였다. 먼저 뮤지컬 공연기획자 고은령씨다.

그는 시청각장애인들도 편하게 관람할 수 있는 배리어프리 뮤지컬을 제작하고 있다. 2012년부터 제작해온 창작뮤지컬은 일곱여 편에 이른다. 그는 공연관람을 불가능한 일로 여겼던 관객들이 처음 접할지도 모를 공연을 보고 즐거운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 꾸준히 문화생활을 이어갔으면 하고 바란다고 했다. 직접 쓴 대본에는 따스함이 전해진다. 사실 그는 2005년에 KBS아나운서가 되었지만 대본대로 전달하는 일에 답답함을 느끼고 5년만에 미련없이 퇴직하고 한예종에 들어가 예술공연을 공부했다. 시각장애인들도 공연을 보고싶어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알고 오디오극을 넘어 배리어뮤지컬을 본격적으로 무대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더 열심히 뛰면 장애인을 차별의 대상이 아닌 동등한 이웃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많아지겠다는 기대가 커졌어요.”
또 다른 한 사람은 배리어프리 사진관인 ‘바라봄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나종민씨이다.

그는 장애인들도 마음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2012년 사진관을 오픈했다. 뇌병변 장애아동 체육대회에 사진 촬영 자원봉사를 갔다가 거기서 만난 장애아동의 어머니가 ‘우리 아이도 사진관에 한 번 데리고 가서 사진을 찍어주고 싶다’고 하는 말을 듣고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끌고 사진관에 가는 것부터 쉽지 않고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에 움츠러들게 되는데 바라봄 사진관은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엘리베이터와 경사로가 설치되어 촬영 스튜디오까지 편안하게 입장할 수 있다. 바라봄 사진관은 국내 최초 장애인을 위한 전문사진관이지만 누구나 이용가능하다. 일반인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1+1로 장애인에게 사진 촬영권이 기부된다. 장애인 뿐아니라 이주여성, 미혼모, 독거노인들의 사진도 찍고 해외로까지 활동반경을 넓히고 있다. 장애인들의 사진을 찍으며 어려운 점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없습니다. 카메라 앞에 서면 딱딱하게 얼어버리는 사람도 있고 포즈나 표정을 아주 잘 잡는 사람도 있잖아요. 장애의 유무가 아니라 결국 개인의 차이일 뿐이에요.”
이 두 사람은 장애라는 편견 없이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누구에게나 행복을 맛보게 해준다. 그들이 허문 장벽을 더 많은 장애인들이 넘어서는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고 더 이상 허물 벽이 없는 세상이 오길 바래본다.
신설된 꼭지 “다시 읽는 반세기 샘터”는 꼭 소개하고 싶다. ‘엄마, 개가부해?’라는 외계어 같은 제목이다. 이것은 가계부를 열심히 쓰고 있는 엄마를 보며 말을 배우기 시작한 딸이 한 말이었다. 1979년 1월호에 실렸던 독자의 글로 친정어머니의 꼼꼼한 가계부 쓰는 실력을 이어받아 자신도 가계부를 몇 년 째 쓰고 있다는 내용이다. 사연의 주인공은 가계부에 단지 돈의 출납만을 쓴 것이 아니라 비고난에 소소한 일들을 기록해 두었다. 가계부가 가정사가 되는 셈이다. 요즘엔 가계부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40여 년전에 씌여진 가계부를 보니 격세지감을 느꼈다. 이것이야말로 샘터가 50년간 우리와 함께 해온 산 증거가 아닐까. 앞으로 지난 독자투고 글을 매달 한 편씩 소개한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지난 시절 이웃들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이 외 1월호에는 가슴 찡한 글들이 많았다. 동물을 소재로 한 ‘쫑아가 좋아했던 양말공’과 천강 문학상 수필 부문 우수상인 ‘슬픔의 무게’가 그것이다. 평생 고생한 아내에게 바치는 글인 ‘명태를 닮은 여자 내 아내’가 파랑새의 희망수기에 실렸다. 점점 더 추워지는 날씨에 가슴 뭉클해지는 사연들이었다.
지난 50년 간 그래왔듯 내년에도 이웃들의 따뜻한 사연들을 계속 만나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