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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 12가지 '도시적' 콘셉트 ㅣ 김진애의 도시 3부작 1
김진애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11월
평점 :

김진애의 도시 3부작 시리즈가 11월에 출간 되었다. <도시의 숲에서 인간을 발견하다>는 해외 도시 공간들을 담고 있고, <우리 도시 예찬>은 우리 도시 공간들을 담고 있다.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는 12가지 ‘도시적’ 콘셉트라는 부제로 우리 도시를 비춰본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도시 공간들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지는 못했다며 앞의 두 책에 구체적 사례에 대한 갈증이 다소 풀리길 바란다고 했다.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의 초판 한정 특별 부록 <도시는 여행 인생은 여행>에는 김진애의 도시 여행법 3가지와 인터뷰가 실려 있다.

제 철학은, 건축가든 도시계획가든 역사에 남을만한 위대한 작업은 필요치 않다는 거예요. 사회에 괜찮은, 사람에게 좋은, 좀 더 행복하게 만드는, 기술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자연에 죄를 덜 짓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에 최대한 집중해야 해요. 그러다 보면 위대함이 어디에선가 튀어나온다고 생각해요.
- 부록, 김진애의 ‘인생생각’ 중에서 -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목요일 코너에서 3년 넘게 방송하고 있는 김진애의 도시이야기는 고정 프로로 계속하고 있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매일 청취하고 있는데 그동안 이런 주제의 방송을 들어 본 적이 없어 신선했다. 거기에 여성 고정 패널이라 반가웠다. 방송에서는 짧은 시간 때문에 내용을 진전시키기도 전에 끝내야만 해서 아쉬웠던 적이 많았는데 이렇게 책으로 나오니 더 반갑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이라고 하면, ‘집’을 먼저 떠올리지 ‘도시’가 우선 순위는 아니다. 우리는 대부분 도시라는 공간에 살고 있지만 도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저 내가 사는 아파트의 가격이 얼마나 오르는지에 대해 관심 있고, 아파트를 고를 때는 기반시설이 잘 형성된 대단지 아파트를 고른다. 이렇게 도시보다는 집에 대해 더 관심이 많은데 그것은 아마도 평생의 과업 중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사는 도시의 12가지 콘셉트에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제 김진애의 12가지 도시적 콘셉트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1부 모르는 사람들과 사는 공간
1. 익명성 : 낯선 사람들과 같이 사는 법
2. 권력과 권위 : 존경인가, 사랑인가?
3. 기억과 기록 : 우리는 누구인가?
2부 감感이 동動하는 공간
4. 알므로 예찬 : 가슴 뛰는 우리 도시 이야기
5. 대비로 통찰 : 해외 도시로 떠나는 이유
6. 스토리텔링 : ‘내 마음 속 공간’은 어디인가?
7. 코딩과 디코딩 : 공간에 숨은 함의
3부 머니 게임의 공간
8. 욕망과 탐욕 : 나도 머니 게임의 공범인가?
9. 부패에의 유혹 : ‘ㅂ자 돌림병’의 도시
10. 현상과 구조 : 이상해하는 능력
4부 도시를 만드는 힘
11. ‘돈’과 ‘표’ : 이 시대 도시를 만드는 힘
12. 진화와 돌연변이 : 설계로는 만들 수 없는 도시
12가지 중에서 내가 관심있게 읽은 부분은 콘셉트 5. 해외 도시로 떠나는 이유
이다. 요즘 해외든 제주도든 한 도시에서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이 인기다. 나는 해외여행을 패키지상품으로만 가보았기 때문에 어떤 한 도시에 오래 머문 적이 없다. 주제를 가지고 자유롭게 다녀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렇게 돌아다녀보는 것에 관심이 있다. 그 도시에 가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당연히 의문이 든다. 저자는 진본성 때문이라고 한다.
p,149
우리가 먼길을 떠나 해외에 가는 것은 이른바 오리지널을 직접 만나기 위해서다. 현장에 직접 가기 전까지는 아직 모른다. 아무리 사진으로 많이 보고 동영상을 통해 봤더라도 실제 가보면 다르다. 실물을 마주하고도 사진이나 동영상을 볼 때와 똑같은 느낌을 받는다면 그게 외려 이상한 일이다. 여러 이유들이 있다. 첫째, 사람은 전체와 부분을 온통 한꺼번에 느낀다. 둘째, 인간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셋째, 인간의 눈은 카메라보다 넓고 또 정교하다. 넷째, 체험이란 시각만이 아니라 오감의 종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섯째, 우리 뇌속의 시냅스가 폭발하면서 지적 자극과 감성적 자극을 상승시킨다.
내가 현장의 오리지널리티를 느껴보고 싶은 도시는 베를린이다. 동서분단의 현장, 그 허문 벽을 유물처럼 공원처럼 관리하고 있는 그 곳에 가서 역사의 현장을 확인하고 싶다. 그리고 영화속에서 흔하게 그려지는 베를린의 삭막하고 쓸쓸함(순전히 개인적인 느낌) 속에 나도 한 번 들어가보고 싶다.
그리고 저자가 든 두 번째 이유는 완전한 익명성이다.
p.156~157
왜 해외로 가는가? 로망을 찾아서? 신기한 풍물을 접해보려고? 유명한 공간들을 직접 확인하려고? 박물관과 기념관에 들러 원작을 보려고? 생생한 공연 현장을 체험하려고? 다 작용한다. 그런데 이것은 어떨까? 완전한 익명성을 찾아서!
사실 나는 이것을 해외여행의 핵심 동기라고 본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누릴 수 있는 완벽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그 느낌이 좋아서 떠난다. 내가 속한 세상, 나의 콘텍스트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느끼는 해방감과 자유로움이 반갑다. 나를 모르는 세상에서 완벽하게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환상마저도 찾아온다. 익명성이란 두려움의 원천인 동시에 자유의 원천이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완전한 익명성은 완벽한 자유를 의미하는 것 같다. 이 부분에서는 누구나 공감하고 이루고픈 로망일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인데 한편 이런 생각도 든다. 그런 자유를 누리려면 오지나 벽지로 가야하는 게 아닌가? 왜냐하면 해외 유명 장소에서 어김없이 우리 말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많이 나간다는 뜻이다. 아직 로마니 파리니 하는 곳에 가보지도 못해놓고 섣부른 걱정이다. 그러나 오랑주리 미술관은 꼭 가보고 싶다.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보면서 해방감과 만족감을 맛볼 수 있을 것만 같다.
3부 머니 게임의 공간 에서는 부산 해운대 앞바다에 떡하니 세워진 흉물 엘시티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그 건물을 짓기 전부터 부산시와 정계, 재계가 얽힌 문제들, 그리고 공사 중 벌어진 사고들을 뒤로 한 채 준공이 났다. 저자는 엘시티의 문제를 7가지로 정리한 것을 읽으면서 화가 났다. ‘그것이 알고 싶다’나 뉴스에서 회자되는 내용들로 대충 알고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저런 비리선물세트 같은 건설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아파트 건설 관련, ‘도시형 아파트’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지 방안들을 모색한다. 가로형 아파트, 한 건물에 여러 가지 주택 유형을 섞는다든지 하는 것이다. 그러한 방법들은 환타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미 아파트를 포함하는 물리적 공간은 너무나 여러 사람들의 욕심이 뒤엉켜 있기 때문에 그러한 공공적이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방향성을 가지기에 우린 너무 멀리 와버렸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사는 공간이 모두 도시는 아니다. 그러므로 이 책의 제목이 가리키는 도시는 서울시, 부산시 같은 행정구역으로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곳, 삶과 문화가 있는 곳, 그런 공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읽으며 독자도 도시에 대해 그동안 해보지 않은 여러 생각과 고민들을 하게 될 것이다. 저자의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단으로 마무리한다.
나는 도시에서 인간의 밑바닥도 보지만 인간의 무한한 능력도 본다. 도시에서 위대한 만남을 목격하고, 운명과도 같은 큰 흐름을 읽는다. 도시라는 무대에서 인간이 펼치는 드라마를 보고 즐기고 또 의미를 찾는다. 무엇보다도, 나는 도시에서 살며 도시 이야기를 계속 한다. 도시 이야기, 포에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