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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안의 인간 - 동물도 생각하고 사랑하고 미워한다!
노르베르트 작서 지음, 장윤경 옮김 / 문학사상사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나는 어릴 때 개를 집 안에서 키우며 자식이라고 뽀뽀하는 옆집 할머니의 행동이 전혀 이해되지가 않았다. 우리 엄마는 일명 도사견 새끼를 튼실하게 키워 식용으로 팔았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키우던 개들을 가족이라 생각해본 적도 없거니와 아무런 추억도 없다. 고양이는 그저 쥐를 잡기 위해 우리 집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랬던 내가 7년 전, 러시안 블루 고양이 남매 두 마리를 데려오게 되었다. 그 아이들을 키우며 동물관련 책이나 다큐를 찾아보게 되었고 개공장 기사를 보며 흥분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동물단체에 기부도 한다. 나는 고양이를 키우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신기한 일은 고양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더 커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올 6월에는 스코티쉬 폴드 한 마리를 더 데려오기에 이르렀다.
이 아이는 기존에 있던 러시안 블루랑 달라도 너무 다르다. 러시안 블루는 있는 듯 없는 듯 했다면 스코티쉬 폴드는 활발함을 넘어 별나다고 해야겠다. 같은 고양이인데 종에 따라 이렇게 차이가 있나 싶었다. 원래 있던 애들은 사람 나이로 치자면 중년을 넘어섰는데 새로 온 애는 이제 사춘기 소년이니 행동이 비슷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새로 온 애가 기존 애들한테 덮치는 건 놀자고 한 행동인데 기존 애들은 공격이라 생각하고 하악질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헌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공격처럼 보이는 행동이 멈추질 않으니 진짜 공격인걸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궁금했다.
‘고양이도 성격차가 있는 건가.’
‘얘들도 지능이 있을까?’
이런 의문이 들던 차에 <동물 안의 인간>이라는 책을 읽었다.
부제는 ‘동물도 생각하고 사랑하고 미워한다!’이다.
흠... ‘이 책을 읽어 보면 내가 궁금해하던 부분이 해소될까?’하는 마음으로 열었다.
이 책은 독일의 동물행동학자 ‘노르베르트 작서’라는 학자가 30여 년간 연구한 내용이다. 전체 8장으로 되어있지만 1장과 8장은 각각 프롤로그(책 소개 및 요약)와 에필로그(총 정리)의 성격이므로 2장에서 7장까지가 주 내용이다. 각 장의 주제를 논증하기 위해 많은 사례들이 인용되는데 주로 실험결과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다. 다른 학자들의 실험결과를 인용하기도 했으나 자신도 연구자이기 때문에 기니피그를 대상으로 실험한 사례의 비중이 훨씬 많다.
2장과 3장에서는 동물들도 스트레스를 받으며 감정도 느낀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주로 호르몬 수치와 실험 동물들의 행동으로 확인했다. 4장에서는 동물들의 행동 양태의 원인을 유전과 환경에서 다각도로 검증했으며 5장은 동물도 학습이 가능하다는 내용이다. 6장은 동물의 성격발달을 다루고 7장은 사회생물학적인 진화에 대한 내용이다.
이 책은 일반인이 읽기엔 재미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동물관련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나 동물행동학에 대한 자료를 찾는 사람들이라면 환영받을 책이다. 사례가 다양하며 최신 자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와 유사한 질문을 가지고 이 책을 들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일반인에게는 전문적 지식이라 다소 지루하게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책들이 누구에게나 만족감을 줄 수 없다. 이런 전문서적의 경우에는 독자층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그 한정된 독자는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을 골라 읽으면 되기 때문에 이 책을 재미없다고 단정지을 수만은 없다. 나 같은 경우에는 만족스런 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실망스럽진 않았다. 동물행동학 관련된 새로운 내용을 많이 알게 되어 또 다른 영역의 지식을 쌓는 즐거움을 맛보게 된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이 리뷰에서 6장 모두를 소개할 수는 없으므로 내가 인상깊게 읽은 몇 가지만 소개하려고 한다.
3장에서 알게 된 놀라운 내용은 동물들도 복지가 좋아야 행복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직접 한 실험으로 쥐들의 공간을 개선한 것이다. 바닥 전체에는 지푸라기를 깔고 보금자리에는 푹신한 화장지를, 전체 공간에 가지각색의 물건과 구조물로 꾸미고 방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기어오를 수 있는 기둥과 밧줄, 계단도 만들어 일반사육장과 다른 최고의 구성을 갖춘 사육장에 네 마리의 암컷 쥐를 넣어 두고 수백여 시간동안 관찰했다. 단, 모든 쥐들은 성별 나이 유전자형까지 동일한 조건이었다.
최상의 사육장에서 지낸 쥐들은 일반 사육장 쥐들과 어떤 다른 모습이 관찰 되었을까? 일반 사육장 쥐들은 공격적이며 사회 친화적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최상의 사육장에서 지낸 쥐들은 모두 동료에게 다정하게 대하며 공격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활동적이며 변화무쌍한 생활 방식을 가능케 하는 환경(최상의 사육장)에서 지낸 쥐들은 두뇌활동이 활발해지며 알츠하이머 증세도 호전반응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인간이건 동물이건 역시 좋은 환경, 사회적 복지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려주는 실험이었다.
6장 동물의 성격에서는 동물도 청소년기에 성장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실험이 있었다. 인간도 성격발달에 있어 유전이냐? 환경이냐?로 오랫동안 논쟁해 왔고 최근에는 상호 작용한다는 이론도 힘을 얻고 있다. 이 책에서도 여러 동물 실험들을 소개하는데 태아때부터 엄마로부터 유전적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이 부분에서, 그 엄마가 지내는 환경이 어떠냐에 따라 태아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므로 환경이 유전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는 호르몬에 더 비중을 두고 설명했다. 그 부분을 책 내용 그대로 인용한다.
p. 227
임신 중인 암컷이 처한 환경은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준다. 불안정한 환경에서 사는 암컷들은 종종 낯선 개체들과 마주하게 되는데, 이는 곧 공격적인 싸움으로 이어지곤 한다. 낯선 개체와의 분쟁이 잦아지면 자연히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의 수치가 높아지며, 성호르몬의 분비에도 변화가 생긴다. 어미의 혈류는 태반을 통해 태아의 혈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태아의 호르몬과 두뇌까지도 다다른다. 그렇게 배 속에서 형성된 태아의 두뇌는 어른이 된 이후까지도 동물의 행동과 기질에 꾸준한 영향을 가하게 된다.
위 내용을 봐도 어미가 자식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호르몬이 어미가 처한 환경때문이므로 그 호르몬의 시작은 환경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다. 청소년기의 행동도 그가 속한 사회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내용도 있다. 대집단 속에서 살았던 수컷보다 암수 한 쌍하고만 자라난 수컷이 훨씬 많은 새끼를 얻었다는 실험이다. 그러니까 인간으로 따지자면 공동체속에서 길러진 아이는 온화한 성격이, 핵가족에서 자란 아이는 공격적인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이런 동물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공격적 성격과 온화한 성격 중 어느 쪽이 더 번식에 유리한지에 대한 확답은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사회가 안정적일 때 실험 동물들의 행동도 온화하고 평화롭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성격부분에 있어서도, 유전적으로 동일하고 같은 환경에서 자라난 동물이라 하더라도 다른 개체와 확연히 구별되는 고유의 행동양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6장 내용을 읽으며,
‘어차피 고양이인데! 다 비슷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전에 키우던 아이들과 동일한 행동을 할 거라고 예상했던 것은 얼마나 무지한 발상이었는지... 인간이고 동물이고 그 하나하나는 모두 개별적 존재이며 그 존재가 가지고 있는 성격은 고유한 것임을 인정해야만 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 이런 사고의 발원은 교육과 사회 분위기가 전체주의적 환경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 환경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 그러나 하나씩 깨부수려고 노력중이다.
이 책을 들었을 때의 목적을 완전히 달성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발달과 학습에 있어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 여겼던 것들이 동물도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물도 교육과 복지가 중요한데 하물며 인간이야 어떨꺼. 제목처럼 인간도 동물에 포함되는 존재임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한건 사실아니냐?'는 반론을 제기할 사람들에게 저자가 인용한 학자의 말로 마무리한다.
미국 발달심리학자 ‘마이클 토마셀로’의 말이다.
“동물들에게는 ‘문화가 축적되는 진화’가 이뤄지지 않는다.”
즉, 동물과 인간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문화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