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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에 간 복돌이
오진혁.오인구 지음 / 지식과감성# / 2019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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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에 간 복돌이>는 가족 네명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러시아를 여행한 여행기이다. 그 가족은 지리교사 아빠, 수학교사 엄마, 고등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이다. 자세한 가족 소개는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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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30일에 인천에서 출발해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이르쿠츠크,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찍고 2019년 1월 13일에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나오기까지의 여정을 아빠와 아들이 같이 썼다.
이 여행에세이는 기존에 읽었던 것들과는 달랐다. 보통 여행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낯선 곳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보기 위해서다. 또한 자신이 여행 하고 싶은 곳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그동안 모녀나 모자가 같이 여행한 책은 읽어봤지만 가족이 함께 한 여행기는 처음이었다.
이 책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내용이라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거창한 경험도 없다. 가족이 함께 기차타고 버스타고 호텔 찾아가고 밥 먹고 기념품 사는 등 평범한 여정들이다. 기대를 많이 한 독자라면 너무 평범하고 심심하다며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관련된 책을 처음 접한 독자라면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들과 정보를 접하는 재미가 있다. 또한 가족끼리 이렇게 먼 곳으로 여행 가서, 같이 지내는 이야기에 재미를 느낄 수도 있겠다. 러시아는 겨울이 제 맛이라는 걸 확인하러 떠난 이 가족의 용기가 가상하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겨울 날씨의 느낌이 사진으로 전달된다. 물론 100퍼는 아니다. 나갈 때마다 중무장을 해도 콧물 줄줄 흘리며 연신 “추워, 추워!”를 외치는 걸 보며 짐작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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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러시아를 횡단하여 모스크바에 도착하는 기차이므로 이층 침대 두 개가 마주보고 있다. 가족일 경우 방처럼 문이 달린 객실을 이용하기도 한다. 식당 칸이 있어서 사먹을 수도 있고, 이 책처럼 주문하면 식사가 나오기도 하지만 보통 우리나라 음식들을 가져가서 데워 먹는다. 객차마다 담당하는 차장이 있는데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은 차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차장이 소소한 물건을 팔기도 하는데 몇 가지 사주면 더 친절하게 대해준다. 나도 5년 전 바이칼 호수에 가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갔었다. 그 땐 8월이라 러시아가 꽤 선선하니 좋았다. 나같이 추위를 못견디는 사람은 겨울에 러시아에 가는 건 엄두도 못낼 일이다. 기차는 3박4일간 탔는데 특별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기차에서 내려 한참이 지나도 몸이 좌우로 흔들흔들 거리는 느낌이 지속됐다.
이 책에서도 기차안에서 경험한 재미난 에피소드가 많았는데 그 중에 컵을 변기에 빠뜨려서 식겁했던 일이다. 아빠랑 딸이 화장실에 같이 갔다가 그랬는데 컵을 떨어뜨린 변기 안엔 x이 그대로 있는 상태였다는 거... 아빠가 컵을 아주 빡빡 문질러 씻었지만 다시 사용할 수는 없었다는 웃지못할 사연이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러시아인 뿐아니라 외국 관광객도 많이 타기 때문에 다른 여행객과 사귈 수도 있고. 속도는 우리나라 무궁화호보다 더 천천히 가는 느낌이다. 정차하는 역에 짧게는 5분 길게는 40분씩 머물기도 한다. 길게 정차하는 역에서는 내려서 역 주변을 둘러보거나 간식을 사먹는 재미도 있다.
복돌이네 아빠는 바이칼 호수에 가보고 싶었는데 일정이 여의치 않아 들르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 기차가 바이칼 호수 근처를 지나가기 때문에 기차안에서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 가족의 여행기는 특별하거나 거창한 사건사고가 있지는 않다. 우리가 집에서 일상생활을 한다고 보면 가족이 함께 모여 있는 시간은 하루 중 채 한 시간도 안 될 것이다. 이 가족은 보름동안 24시간 내내 몸 부대끼며 지내면서 가족애가 더 피어남을 느꼈다. 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된다. 뭐 그리 대단한 내용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의 느낌을 나누고 가슴에 추억과 함께 담아두는 것이다.
덜컹거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 가족의 대화.
“엄마는 기차를 탈 땐 항상 앞이 보이는 순방향의 좌석을 좋아했어. 스쳐 지나갈 풍경을 예측할 수 있어서 좋았거든. 하지만 횡단열차에서는 역방향으로만 앉아 있어 처음에는 너무 어색한 거야. 뭐가 갑자기 나타날지 예상하기 힘들었거든.”
엄마가 힘을 빼고 이야기를 하니 방 안이 조용해집니다.
“엄마, 갑자기 왜 그런 이야기를 해?”
복돌이는 엄마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불안해집니다.
“오래전에, 할아버지도 갑자기 몸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 간 지 3일 만에 돌아가시고 해서 우리 모두 놀랐었잖아! 앞에 다가올 일을 예측하지 못하고, 그저 역방향으로 달리는 기차를 타고 있는 것처럼 주어지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인생인 것 같아.”
아빠는 엄마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숙이다가 차창을 바라봅니다.
“오빠랑 복돌이, 엄마 말을 잘 듣고 가슴에 새기면 좋겠어.”
엄마도 차창을 보면서 말을 이어 갑니다.
“좋은 일이든, 불행한 일이든,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마주칠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야. 엄마도 아빠도 복돌이와 오빠가 성인이 되었을 때는 하늘나라로 갈 수밖에 없잖아? 그러니 항상 마음을 굳게 먹고 지내야 해!”
여행하면서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는 가족.
“아버지, 여행은 왜 다녀요?”
“음...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아빠는 오빠의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깁니다.
“여행에서 반드시 뭘 얻어야 하나? 여행은 우리 생활로부터 일탈해서 다른 사람들의 일상으로 들어가는 거잖아? 아빠에게는 여행을 통해 느꼈던 것이 좋은 수업자료가 돼. 학교에서 아이들과 지리 학습을 할 때, 보고 느낀 내용을 사실대로 이야기해 주면 아이들이 좋아하거든.”
“엄만, 우리 아이들과 함께 만든 추억을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아.”
“저는, 아직 어려서 그런지 잘 모르겠어요.”
사실 오빠는 어려서부터 여행이라는 단어가 익숙한 편입니다. 아빠랑 미국 답사도 다녀오고, 초등학교 6학년 때는 페루와 볼리비아로 30일 넘게 여행 학교를 다녀온 적도 있습니다.
“저는 여행을 다녀온 지역을 떠올리면 힘들게 고생했던 기억이 나서 눈물이 나기도 하고, 그곳 사람들의 순박한 모습이 떠올라서 다시 만나러 가고 싶어지기도 해요.”
“아마, 그런 과정을 통해 성장을 많이 할거야. 아빠는 엄마 말씀처럼 ‘가족 여행은 경험을 함께 공유할 수 잇는 소중한 추억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는 말에 공감이 되네.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우리가 함께할 수 있을 때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자.”
“엄마는 너희들의 눈으로 직접 다양한 세상을 보면서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경험에 투자를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믿어.”
소유하는 물건을 사는데 돈을 쓰는 게 아니라 멋진 경험을 하는데 돈을 쓰라는 말이 있다. 이 가족은 이미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 공연을 보고 미술관을 가는 것 정도는 가능할지 모르나 이 가족처럼 보름, 한 달씩 여행을 떠나는 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이번 겨울방학에는 시도를 한 번 해보자. 가족과 함께 소중한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을 하는 건 어떨까. 러시아까지는 못가더라도 국내여행이라도...
*** 이 리뷰는 네이버 카페 리뷰어스클럽 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