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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해자들에게 - 학교 폭력의 기억을 안고 어른이 된 그들과의 인터뷰
씨리얼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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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종류의 영상이나 글을 잘 보지 못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어떤 대상이 괴롭힘 당하는, 혹은 버려지는, 배제당하는 그런... TV프로그램 ‘동물농장’같은 경우도, 특이하고 신기한 동물이 등장할 때는 재미있게 보다가 버려지거나 학대당해서 힘들어하는 동물이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 그러니 이 책 <나의 가해자들에게>의 소개를 보고 선뜻 책을 펼치지 못했다. 미루고 미루다가 리뷰 마감일 직전에야 책을 들었다.
<나의 가해자들에게>는 유튜브 채널 <왕따였던 어른들, Stop bullying>을 책으로 낸 것이다. 공개된 영상은 20여분 정도이지만 사전 인터뷰까지 포함하면 8시간이 넘는 인터뷰였다고 한다. 피디 최윤제씨는 이 인터뷰를 텀블벅을 통해 독립출판물로 먼저 냈다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소망으로 알에이치코리아와 재출간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학창시절 왕따 당했던 어른들 10명(여자5,남자5)을 인터뷰한 내용이다. 목차는 여자 반과 남자 반으로 구분하였고 각 반에서는 학교 수업시간표처럼 구성해서 다른 종류의 질문을 한다. 순서는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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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들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이 답답했고 책장을 계속 넘기기가 힘들었다. 고백하자면 100%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 나는 왕따를 당한 적도 해본 적도 없었다. 이건 내가 학창시절을 잘 보냈다는 뜻이 아니다. 나의 학창시절엔 왕따라는 단어가 없었기 때문이고 그 뜻은 또, 현재 내 나이가 많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고 싶다. 이런 이야기들을 계속 할 수 있어야 하고, 해야 한다고!!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상처를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고 한 인터뷰이 주연씨의 말을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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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 당했던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내용을 인용하거나 타이핑하고 싶은 마음이 안 생겼다. 내가 미성숙한건지 회피하는 인간이라 그런지... 아니 뭐라고 힐난해도 할 말은 없다. 그들은 충분히 고통 받았고 어떤 방식으로든 견뎌내고 버텨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위로해주고 싶고 옆에 있다면 가만히 한 번 안아주고 싶다.
가해자들 중에는 자신이 했던 행동을 아예 기억조차 못하는 사람도 있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도 있고, 경찰이 된 사람도 있다. 그들은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알기나 할까? 자신의 행동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가해자들이 이 책을 보거나 유튜브를 꼭 봤으면 좋겠다. 일말의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가해자들은 떵떵 거리며 잘만 사는데 피해자들은 시간이 지나도 왜 숨어살아야 한단 말인가? 이런 프로젝트를 통해 그들이 말한 ‘왕밍아웃’으로 지난 시간은 떨쳐버리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한편 가해자들을 두둔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연도 있었다. 인터뷰이 요셉씨는 필리핀에 어학연수 온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사로 잠시 일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이렇게 전한다.
“한국에서 사고 친 애들이 갈 데가 없으니까 부모님들이 외국에 보내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그런 아이들이었죠. 거기엔 피해자도 있고 일진 애들도 있었어요. 저는 피해자였기 때문에 솔직히 피해자한테 마음이 더 갔어요. 일진 애들에게 소홀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걔네랑 친해져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까, 사랑을 많이 못 받고 자랐더라고요, 부모님한테조차. 그래서 마음이, 한쪽으로는 되게 미운데 한쪽으로는 뭔가 도움을 주고 싶더라구요.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 애들을 안아 주면서 “사랑한다”고 말해 줬어요. 그렇게 몇 개월 안했는데 애들이 바뀌는 거예요., 공부해야겠다는 목표도 세우고, 피해자 애들한테 진짜 “미안하다”고 하면서 눈물로 고백을 하더라고요. 지금 이 이야기를 듣고 있을 가해자 아이들이, 진짜 사과하고 싶은 상대가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했음 좋겠어요.“
요셉씨의 말은 일견 그들을 두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해자들도 상처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가해자들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죄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적극 하는 것이 평생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방관자들도 보여준다. 흔히 직접 폭력을 가하지는 않고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어도 방관자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직접 가해자와 피해자를 제외한 대부분은 방관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교사나 부모같은 어른들의 방관이 사태를 더 크게 악화시키는 사례가 많았다. 낌새를 눈치 챘지만 모르는 척 했던 대부분의 교사들, 자식이 집 밖에서 폭력을 당하는지 조차 알지 못할 정도로 무책임하게 살거나 집안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들까지... 아이들에게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할 어른들의 방관이 사건을 확장시키고 아이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기게 된다. 물론 교내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왕따나 폭력을 지켜보면서 신고도 못하고 아예 아는 척하지 않은 친구들, 또는 피해자 근처에 다가가지 않는 아이들도 모두 방관자라 하겠다. 참견했다가 시비에 휘말릴까봐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지만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자신의 행동을 반성할 수 있다면 좋겠다.
피해자들은 이 인터뷰를 통해 과거를 털어내는 한바탕 씻김굿이 되었으리라고 본다. 피해자가 아닌 이들이 영상이나 책을 보았을 때는 어떤 마음일까? 내 마음이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지만 공통된 심정인 독자들이 있으리라 기대하며 리뷰를 마친다.
수없이 죽음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겼던 학생들이 이제 어른이 되었다. 버티는 자가 이긴다는 말이 그들에겐 안타깝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버텨줘서, 살아있어줘서 고맙다!”
그리고 텍스트로나마 꼬옥 껴안아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