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좋은 계절에
이묵돌 지음 / 부크럼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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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 년의 단위를 1월부터 12월이라 하고, 계절은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눠 부른다. 작가 이묵돌은 계절을 24절기로 나누었다. 그러니 입춘부터 시작해서 대한에서 끝난다. 다시 입춘에서 시작이다. 20대의 작가가 계절을 24절기로 나눈다는 게 참신했다. <사랑하기 좋은 계절에>는 작가 자신의 사랑이야기다. 24절기라고 해서 꼭 시간 순서대로 1년동안 있었던 일만 기록한 것은 아니다. 여자친구 연이를 만나서 사랑하게 되고, 같이 살면서 티격태격 일상을 살아가는 이야기, 지난 사랑이야기도 있고, 그리 친하지 않는 엄마이야기도 있다. 에세이인만큼 솔직하지만 이 책에 실린 모든 글이 진실인지 아닌지 독자는 모른다. 그렇다면 남의 일기 같은 에세이를 왜 읽을까?

 

이묵돌은 김리뷰라는 필명으로 페북에서 활동한 유명 작가라고 하는데 나는 이번 책으로 처음 만났다. 출판사 책 소개에서 본 문구에 이끌렸다.

 "한 때는 콱 죽어버리고 싶었지만 요새는 영원히 살고 싶다."

죽어버리고 싶었는데 어떤 연유로 삶에 의지를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이처럼 에세이는 타인의 일상을 통해 그의 삶의 태도를 보며 공감하기도,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표지에 쓰여 있는 부제는 ‘언젠가 끝나게 될 사랑에 온전한 나를 바치기로 했다’ 이다.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되면서, 사랑이란 끝이 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작가는 사랑하겠다고 말한다. 그것이 영원히 살고 싶다는 다짐이 된 모양이다. 그리고 제목처럼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면 1년 24절기 모두 사랑하기 좋은 계절인 거다.

좀 간지럽긴 했지만 작가의 사랑이야기를 읽다가 공감가는 문장들을 골라봤다.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마저 어린 것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문장이 있었다.

p.50

우리의 사랑은 작은 돛단배 같다. 오래되고 낡은 나무를 써서 만든 배 말이다. 옅은 비바람에도 쉽게 구멍이 나고 물이 샌다. 파도가 조금 너울거리지만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린다. 언제부터 표류했는지 방향도 목적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갖은 고생을 해가며 구멍을 메우고, 낡아빠진 곳을 다듬어 광을 낸다. 제아무리 힘들다고 한들 다른 배로 갈아탈 생각은 없다. 세상에 완벽한 배란 없고, 침몰하지 않기 위해서는 오직 매일같이 고치고 메꾸는 방법뿐이라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랑의 목적지란 비바람 한 점 없는 어느 고요한 바다가 아니라, 오랫동안 함께 배를 고쳐줄 사람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과 삐걱거릴 때, 당장 그만두고 싶을 때, 이 문장을 읽어보면 좋겠다. 사랑하는 이와 손잡고 간다는 것의 의미를 잘 표현하고 있어 부부사이에도 해당되는 문장이다. 작가는 중학교 때부터 글을 썼고, 스무살에 콘텐츠 기획자로 스카웃도 돼봤고, IT회사 창업했다 쫄딱 망하기도 했고, 리뷰왕으로 이름도 날렸고, 지금은 글을 쓰며 살고 있다. 이런 다양한 경험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깊은 눈을 키웠고 그것이 글에도 나타나는 것 같다.

제주도 여행에서 여자친구 연이의 진심이 담긴 행복하다는 말을 듣고 작가는 이렇게 썼다.

p.80

어떤 기억들은 내게 그런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된 시기를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는 힘이 되곤 한다. 또 떠올릴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그런 추억이 하나쯤 있다는 것으로도 ‘내 인생은 꽤 가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나는 감사히 지나 보내며 생각했었다. 죽지 않고 살아있어서 참 다행이다.

 

작가가 살고 싶게 만든 이유는 결국 사랑이다.

서문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봄이 지나간 뒤에야 두 번 다시 봄처럼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지나간 봄을 그리워하면서. 어쩔 수 없이 다가오는 계절들을 혼자 – 또는 혼자보다 못한 우리 – 로서 지나쳐 보낸다.”

그리고 또 말한다.

"어느 해 어떤 날에 비로소 영원한 봄날이 와서. 또 영원히 지지 않을 벚꽃이 피리라고 생각지 않기로 했다. 대신 오직 이 순간,

이 마음에 내 전부를 쏟아 붓기로 했다."

 

지나간 계절을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며 다가오는 계절을 흘려보내느니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겠다던 작가의 다짐은 이 책을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독자에게 말하는 듯 하다. 끝이 언제일지 몰라도 지금 사랑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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