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의 사랑 오늘의 젊은 작가 21
김세희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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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항구의 사랑>은 김세희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1987년생 목포출신으로 10대 시절의 자전적 이야기를 소설에서 풀어내었다. 사랑, 첫사랑의 세밀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작가의 말에서 그는 "소설을 써보려고 처음 마음먹었을 때만 해도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쓰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자신의 경험을 옮기기만 하면 될 줄 알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고 허구의 인물을 만들어 낸 뒤, 즉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한 후에야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이야기를 끌어내고 싶은 무의식의 작동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누구나 내면 깊숙한 이야기를 드러내어 후련함을 느끼고픈 욕구가 있다. 작가가 이렇게 허구를 가미해 드러낸 이야기를 민선 선배에 해당하는 그 사람이 읽게 된다면 어떤 생각이 들지 문득 궁금해진다.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은, 작가의 분신인 준희와 민선 선배 그리고 준희의 친구 인희이다. 소설은 주인공의 10대시절, 초등학교 6학년때 인희를 만났을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때 민선 선배를 만났을 때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여중과 여고를 다닌 여학생이라면 대부분 경험했을 중성적 매력을 가진 대상에게 느끼는 감정, 즉 동성에게 가지는 사랑의 감정이 주 소재이다. 거기에다 90년대부터 10대 소녀들에게 유행했던 또래문화 '팬픽과 '팬픽이반'도 가미된다.

소재 때문에 얼핏 10대 여학생들의 치기어린 사랑 정도로 치부될 수 있겠다. 남성독자들이라면 책소개나 줄거리만으로 그렇게 단정짓고 아예 읽을 생각도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직접 읽어보지 않는다면 이 책의 숨은 매력을 놓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10대 소녀의 사랑이라기 보다는 그냥 사랑,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첫사랑을 이야기하는 화자가 여자 고등학생이고 그 대상이 동성의 학교선배일 뿐이다.

사랑에 빠지면, 것도 첫사랑이라면 눈 멀고 귀 먼다. 남의 눈엔 평범해도 콩깍지가 씐 눈엔 세상 누구보다 아름다운 대상이다. 머릿속엔 온통 그 사람 생각뿐이다. 그러니 늘 함께 있고 싶고 언제까지나 둘이 같이 있을거라고 여긴다. 준희도 민선 선배를 그렇게 생각했다. 민선 선배에게 받은 "사랑해!!"라는 말(백사장에 쓴 글자)에 준희도 표현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입맞춤이었고, 그것으로 그들의 관계는 끝이 났다.

준희는 대학생이 되어 남자와 사귀게 되고, 선배가 결혼했다는 소식도 듣게 되고, 인희가 여전히 팬픽이반같은 모습으로 찾아오고, 일 때문에 알게 된 H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 후, 준희는 생각한다.

사랑의 실패를 만든 그 장소, 해변에서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그때 그녀가 말한 사랑은 어떤 것이었을지... 독자도 생각해 볼 것이다.

찬란하고 아팠던 주인공의 첫사랑은, 동성이라는 금기시된 대상을 사랑했기에 암묵적 비난속에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 대상이 옆 학교 남학생이었다면 그저 '학생신분으로 사랑금지' 라는 극복가능한 억압이었을 것이다.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만끽하고 표현하기에 준희에겐 너무나 큰 터부의 대상이었다.

한편 자신에게 서투른 감정을 표현하는 인희를 대하는 준희의 태도는 모순돼 보인다. 본능처럼 내재된 동성애에 대한 터부가 작동했을 터이다. 자신의 사랑이 너무나 커서 인희의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은 없었던 것이다. 어렸으니까... 시간이 지나 H와의 대화 끝에 그녀는 인희를 어느정도 이해하게 되었을까? 여전히 민선 선배의 사랑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그녀로선 인희를 이해했다고 보긴 어렵다.

작가의 말 말미에 '그녀와, 그녀들에게 감사와 한없는 애틋함을 담아서'라고 썼다. 민선선배와 인희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이 책을 읽고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소환하게 해준 작가에게 고마워하리란 생각이 든다. 그들도 어쩌면 지나간 사랑에 대해 "그땐 참 뭘 몰랐었지." 라거나 "그래도 사랑의 계절이었어. 아름다운 시절이었어"라며 애틋해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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