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100쇄 기념 에디션)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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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장영희교수의 에세이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 100쇄 출간기념 에디션으로 나왔다. 그의 글이야 두말할 필요 없지만 작가를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 소개를 해본다.


장영희 : 서강대 영문과 졸업, 뉴욕주립대에서 영문학 박사학위 받았고, 컬럼비아대에서 1년간 번역학 공부, 서강대 영미어문 전공교수이자 번역가, 칼럼니스트, 중고교 영어교과서 집필자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 문학에세이 <문학의 숲을 거닐다>와 <생일>,<축복>의 인기로 '문학전도사'라는 별칭을 얻었으며, 아버지 장왕록 교수의 10주기를 기리며 기념집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을 엮어 내기도 했다. 번역서로는 <종이시계>, <슬픈 카페의 노래>, <이름 없는 너에게>등 다수가 있다. 김현승의 시를 번역하여 '한국번역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수필집 <내 생애 단 한번>으로 '올해의 문장상'을 수상했다. 암 투병을 하면서도 희망과 용기를 주는 글들을 독자에게 전하던 그는 2009년 5월 9일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예전에 중,고딩들에게 장영희를 작가로 소개하면 잘 몰라서 중학영어교과서 "두산 장"에서 장이 바로 장영희다! 라고 하면 다들 "아~하!"하며 고개 끄덕였었다. 그렇게 영어로 에세이로 유명하던 분이었는데 암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해 너무 일찍 떠나버렸다. 보통 아는 작가의 경우 저자소개를 잘 안 읽는 편인데 리뷰 쓰려고 읽어보니 짧은 생애동안 참 많은 일들을 하고 가셨다.

그의 에세이는 모두 사서 읽었고 학생들에게도 읽어주곤 했다. 이 책도 물론 읽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펼쳐보니 제목만으로 내용이 기억나는 에피소드들이 있어 반가웠다. 내 기억력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글을 워낙 진솔하고 재미있게 쓰신 그분 덕분이리라~~

이 책은 <샘터>에 연재되었던 글들로 미국에서 안식년 지낸 경험, 투병후 쉬었다가 일상으로 복귀하며 연재, 연구년동안 한국에 지내며쓴 글들을 모아서 내었던 것이다. 시간이 10년도 더 지난 예전의 글들이라 조금 촌스럽지 않을까 했던 생각은 그야말로 기우였다. 그러고보면 논어같은 고전을 두고 어디 촌스럽다고 하는가. 오히려 시간을 초월하는 보편성과 진리를 담고 있다며 필독 고전이라하지 않나. 오랜만에 읽은 그의 글은 간만에 만나도 엊그제 헤어진 것 같은 벗처럼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예전에 재미있게 읽어서 지금껏 기억하고 있는 에피소드 몇편을 골라봤다.

1. 보스턴 미술관에 가족들과 함께 가서 찍은 사진 이야기.

한국인이 아주 자~알 나왔을거라며 기분좋게 찍어준 사진을 인화해보니 가족들 머리를 다 잘라놓은 것, 동생 발만 크게 찍은 것, 피카소의 그림이 연상될 정도로 기괴하게 찍힌 사진이었다. 저자는 몹시 불쾌했지만 조카는 추상화처럼 멋지게 나왔다며 좋아하더라는 것이다. 그 글은 엽기적인 사진들 덕분에 가족과의 미술관 방문은 '예술적'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우리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가슴속에 남아있다며 마무리된다.

정말 웃지못할 에피소드이다. 지금처럼 디지털 시대에는 경험해보지 못할 일이다. 그렇게 몸통만 찍어 줄리도 없거니와 마음에 안드는 사진은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삭제해버리는데에야 저런 일은 낭만에 가까운 일이 되어버렸다. 참으로 아날로그적 에피소드이다.

2. 꽃 폭죽이 터졌다고 표현한 조카이야기.

우리는 종종 마음속의 어린아이를 부끄러워한다. 힘든 세상을 이겨내기 위해 윽박질러 꼭꼭 숨겨둔 마음속 어린아이를 자유롭게 해주자고 했다. 그래서 이 찬란한 계절을 누리고 감탄하도록 내버려 두자고~~ 바쁜척 하는건지, 마음속 어린아이가 죽은건지, 지천에 알록달록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꽃 폭죽 터졌다고 느끼지도 못하며 살고 있다. 내 마음 속 지퍼를 열어두어야겠다.

3. 명품핸드백이든, 비닐봉지든 중요한건 내용물이라 갈파한 이야기.

저자는 어릴 때 앓은 소아마비때문에 목발을 짚고 다녔다. 그래서 외모때문에 겪은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살아 보니까 중요한것은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라는 것이다. 남들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시간낭비이고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바보같은 짓인줄 알게되었다는 것이다. 살아보니!!

아무리 말해도 진짜 몸으로 살아내야 깨닫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누구는 자신이 해봤으므로 다 안다며 잘난척을 하니 듣기 거북살스럽지만 저자처럼 진짜 몸으로 살아낸 이의 말에는 고개 끄덕일 수밖에 없다.

암투병 중에 쓴 에필로그를 읽으며 눈물이 차올랐다.


옆 침대에서는 동생 둘이 간병인용 침대 하나에 비좁게 누워 잠이 들었고, 쌕쌕 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밖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불빛에 천장의 흐릿한 얼룩이 보였다. 비가 샌 자국인가 보다. 그런데 문득 그 얼룩이 미치도록 정겨웠다. 지저분한 얼룩마저도 정답고 아름다운 이 세상, 사랑하는 사람들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 세상을 결국 이렇게 떠나야 하는구나. 순간 나는 침대가 흔들린다고 느꼈다. 악착같이 침대 난간을 꼭 붙잡았다. 마치 누군가 이 지구에서 나를 밀어내듯. 어디 흔들어 보라지, 내가 떨어지나, 난 완강하게 버텼다.

p.238


누구든 그렇겠지만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몹시도 힘들 것이다. 저자도 마찬가지였고, 자식 하나 남기지 못하고 떠나매 어떤 흔적 하나 남기고픈 심정이었으리라.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있을지 모를 '희망'을 기다렸던 모양이다. 그렇게 그렇게 생명의 촛불은 스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가 남긴 글들은 이렇게 남아 우리를 뭉클하게 하고, 이 순간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해준다. 이것이 바로 그가 남긴 흔적이리라.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촛불로 남아 세상을 비추고, 사람들의 마음속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빛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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