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아워 2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13-2018 골든아워 2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에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1>을 읽고 리뷰를 쓰면서 2권의 내용은 좀 편한 내용이길 바랐다. 그래서 2권을 읽고 밝은 내용으로 쓰고 싶다며 마무리를 했었다. 왜냐하면 1권은 2002년부터 2013년까지를, 2권은 2013년부터 2018년까지의 기록이라 2권에선 중증외상센터의 시스템이 보완되었으리라 기대를 했다. 이국종 교수팀이 더 나은 환경에서 중증환자들의 치료를 하고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것은 턱도 없는 기대였다는 것을 알아차리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방화범의 불꽃이 관료주의의 허점을 파고들어가 국가 시스템 전체를 불태워버릴 수 있는 나라다. 잿더미가 된 숭례문은 문화재이기는 해도 살아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바닷속으로 잠겨들어가고 있는 것은 산목숨들이었다.

위 글은 세월호 현장에 (늘 그렇듯 어려운 기상 상황을 뚫고)헬기를 타고 출동했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숭례문 화재 현장과 비교하여 쓴 것이다.

그렇다!!

우리나라는 이런 나라다.

가난한 자들은 스스로를 챙기기에 힘이 모자라고 국가는 그들을 돌보지 않는다. 골든 아워 내에 필요한 조치를 받지 않으면 사망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을 위해 선진국 시스템을 도입하고자 이리 뛰고 저리 뛰어봐도 관계부처 공무원이 바뀌면 늘 원점으로 돌아가 버린다. 그럴 때마다 이국종 교수는, 똑같은 내용을 서너시간씩 브리핑해야 했다. "관료주의의 허점"정도로 표현했지만 우리나라 관료들은 사람 목숨 구하는데는 별 관심 없는 자들이다. 그들은 상위층이니 응급사고가 발생해도 목숨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피해는 입지 않으니까.

그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사회 최하위층의 목숨은 안중에도 없는, 우리나라는 이런 나라다.

우리는 석해균 선장, 북한 군인 치료로 그의 활약이 보도 될때마다 알려지는 시스템의 문제점이 개선되리라 여겼지만 아니었다. 그는 얼마나 기막혔을까? 책을 읽는 나도 이렇게 화딱지가 나는데 그 오랜 시간 변함없이 반복되는 상황에 얼마나 진절머리가 나겠는가 말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이다!!

중증외상센터를 위한 예산책정이 되었다는 호들갑스런 보도의 이면을 우리는 알지 못했다. 세월호 이후 안전교육을 위해 체험장을 지었다는 어느 지자체에 쓰인 돈이면 닥터헬기를 몇 대나 구입할 수 있는지 우리는 관심도 없었고 그저 헬기 소리가 시끄럽다며 민원을 제기하기 바빴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을 구하려고 목숨걸고 운전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시끄럽다고 말하는 사람이 우리다. 피 튀기는 수술실에서 목숨을 구하는 이들이 어떤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개인의 희생을 볼모로 겨우겨우 유지되는 그 곳에서 겪는 그들의 고통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세상은 '워라밸'이라는 듣기 좋은 말로 삶의 질을 얘기했으나 그들에겐 전혀 해당되지 않는 단어였다. 우리에게 중증외상센터 같은 곳에 실려갈 일은 일어나지 않을거라 생각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이렇다.

이 책이 작년 10월에 출간되었고 바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한 달만에 13만부나 팔려나갔다고 했다. 그렇게 많이들 책을 사보았는데 그가 생각한 시스템의 변화는 요원한 것 같아서 안타깝다. 1월 말 즈음, 지인이 독서모임에서 <골든아워1>으로 토론을 했다고 하면서 출판사를 비판했다. 그 바쁜 사람에게 글을 쓰게 하여 이렇게 편집할 수 밖에 없었냐고 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으나 아무리 시간 순이라고는 하지만 가독성이 떨어지고 글을 정리했단 느낌은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이국종교수의 징징거림이 계속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것 역시 편집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라는 주장이었다. 그 소리를 듣는데 난 화가 났다. 어쩌다보니 내가 출판사를 옹호하고 있었다. '현장의 심각한 상황을 가감없이 보여주기 위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이국종 교수가 그동안 혼자 얼마나 바위에 계란 던지는 심정이었겠나? 이런 답답한 현실을 직면하게 만드는 내용이 가독성이 좋을 순 없다.'고 말했다. 결정적으로 징징거린다는 표현은 모욕적이었다. 마치 내가 그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생각해본다.

그간 이국종교수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변함없는 현실속에서 오늘도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직업인으로서의 할 일을 해내고 있는 그에게 우리는 무얼 할 수 있나?

책을 사보는 것? 현실을 알게 되는 것?

그래서 바뀌는 건 무엇인가??

책을 읽고 독자의 삶과 행동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들 한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나?

이 답답한 현실을 변화시킬 아무런 능력이 없음에 자괴감이 든다.

오늘도 누군가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헬기에 오르고 수술실에 서 있을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 외에는...

그리고 한 쪽 눈의 시력도 잃고 어깨와 다리도 성치 않은 이국종교수가 윤한덕씨처럼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또한 정경원 선생의 앞길이 지금보단 나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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