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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강남
주원규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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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 출판사에서 소설 <메이드 인 강남> 리뷰단을 모집한다고 하여 신청했는데 운좋게 책을 받았다. 사실 주원규 작가는 <열외인종 잔혹사>라는 소설로 한겨레 문학상을 받았다는 정보외엔 아는게 없었고 그 책도 읽어보지는 못했다. 그래서 작가의 스타일은 전혀 모른 채 출판사 책소개를 읽으며 어떤 이야기를 쓰는 소설가일지 궁금했다.
작가는 강남을 통해 '대한민국의 오늘'을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강남은 커녕 서울에서도 살아본 적없는 지방민으로서 서울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그곳의 어두운 면보다는 화려하고 활기찬 모습이 지방민의 욕망을 자극했으니까. 물론 알고는 있다. 어디든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기에 보여지는게 다가 아니라는 걸...
소설 재미있게 읽었으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차오르는 씁쓸함은 사실상 예견된 것이었다. 첫 사건부터 살인사건이다. 무려 10명의 나체 시신이 피범벅으로 발견된 현장. 것도 강남 한복판에서 오픈 예정인 호텔에서 말이다. 무참히 살해된 시신을 절차에 따라 개별 사건으로 간단하게 처리하는 일을 맡은 곳은 유명 로펌이고 실행하는 변호사 김민규는 설계자로 불린다. 예의 방식대로 처리하는데 있어 삐걱거리게 만드는 시체가 있었으니, 그 주인공은 유명 아이돌 "몽키"이다. 몽키를 중심으로 그 사건 현장의 숨어 있는 비밀이 드러나고 형사 재명과 변호사 민규가 해결하려는 방식은 다르고 맞딱뜨리는 결과도 달라진다.
이 소설은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서술어가 현재형으로 진행되어 속도감있게 읽히므로 텍스트를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영상을 보는 듯하다. 또 하나는 등장인물들의 심리가 거의 묘사되지 않는다. 건조하게 그들의 행동만 서술함으로써 독자와의 거리감을 확보한다. 더이상 다가오지 말고 거기서 지켜보라는 듯.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이입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리하여 강남은 우리에게 범접할 수 없는 곳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한편 그곳이 그리 선망할만한 대상 또한 아님을 일깨워준다.
소설 속 설계자들의 시나리오로 비밀스럽고 추잡한 사건들이 별 일 아닌 단신으로 해결되는 것을 보며 독자들은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에이, 설마? 실제 저렇게까지야... 소설이니까 가능한 일이겠지.' 라고 생각하거나,
'소설이 마냥 허구일리가 있겠어? 사실에 기반한 창작이겠지.'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10년만에 서서히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는 "장자연씨 사건"을 보면, 현실은 소설 속 이야기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당시 단순 자살로 급마무리된 사건이었지만, 얼마전에 사건의 목격자가 한 인터뷰를 들어보니 장자연씨는 자살로 설계된 시나리오속 여배우의 역할로 쓰인게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그 추잡한 사건의 당사자인 조선일보 방사장은 아무 일 없는듯 잘만 살아가고 미디어에선 제대로 다루지도 않았다. 현실 속 권력자들의 더러운 짓거리는 소설 속 설계자같은 이들에 의해 처리되고 경찰과 언론은 무마내지는 외면함으로써 모두 하나의 카르텔임이 입증되었다. 그나마 그 사건에 의심의 끈을 놓지않는 이들이 있고 늦었지만 비밀의 열쇠를 내놓는 이들이 있어서 해결될 수있지 않을까 희망해 본다.
소설의 전체적 분위기가 어둡다. 마지막에 변호사 민규가 온통 검은색 투성이 속에 있다고 느끼듯이... 이 소설의 컬러는 선혈이 낭자한 핏빛과 그에 대비되는 검은색이 전체에 깔려 '적흑 화면'을 보는 느낌이다. 그것이 바로 메이드 인 강남의 색깔이리라. 화려하지만 암울한, 그곳은 디스토피아이다.
그리고 스타벅스 매장안에서 저마다 바쁜듯이 오가고 커피를 마시는 강남사람들로 대변되는 이들에게 감정이란 없다. 실은 모두 소시오패스일 수도. 누구하나 죽어나가도 별 관심없고 오직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할 방법을 찾아헤맨다. 그러기 위해서 그 어떤 짓도 서슴치 않고 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들이 추구하는 궁극은 돈일 뿐... 이런 곳이 디스토피아지 뭐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