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춘단 대학 탐방기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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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춘단 대학 탐방기>는 65세의 양춘단씨가 남편의 암치료를 위해 서울 아들네 집에 왔다가 대학의 청소미화원으로 일하게 되는 것이 큰 줄거리이다. 워낙 심성이 착하고 활달해서 양춘단씨의 대학탐방기는 재미나게 펼쳐진다. 학내에서 벌어지는 비리나 청소직원들의 처우 문제는 현실적인 내용이라 가볍지만은 않다.  한편 주인공 양춘단씨의 걸쭉한 전남사투리를 읽는 맛도 있다. 마치 음성지원시스템이 리드미컬하게 가동되는 듯하다.

 시기가 그래서일까. 읽으면서 6411번 버스이야기의 노회찬 의원 연설이 떠올랐다. 6411번 버스를 타고 새벽 출근을 한다는, 이름은 있지만 이름없이 청소만 하는, 아주머니들. 양춘단씨도 그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p.236
대학 성장 가능성을 평가하는 정부사절단이 방문한 몇 해 전, 그 전날 꼬박 야근을 하며 청소한 미화원들은 사절단이 일을 마치고 갈 때까지 알아서 대학 곳곳에 숨어 있으라는 지령을 받았다. 쓰레기 봉지를 지고 다니는 모습이나 복도에서 걸레질하는 모습이 절대로 사절단의 눈에 띄어서는 안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명령을 어기고 활개를 치다 걸리는 사람은 벌금 조로 그날 일당을 제한다는 특별 언급까지 있었다. 화장실 쓰레기통을 비운 후 계단 비상구에 숨어 있던 한 미화원은 남자 구둣발 소리가 들리자 혹시 사절단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이리저리 숨을 곳을 찾다가 마땅한 곳이 없자 스스로 쓰레기통안으로 들어가 뚜껑을 닫기도 했다.

 

위 책 내용은 노의원이 언급했던 6411번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투명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 그들, 건물 청소를 해주는 이들이 없다면 당장 하루도 못가 쓰레기 천지가 되는데도, 감사는 커녕 투명인간 취급은 기본에다 여차하면 내쫓아버려도 상관없을 존재로 취급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최저임금이니 뭐니 정해놓은 것도 다 몸 건강한 이삼십대한테나 해당하는 거지. 당신 같은 사람 좋으라고 만든 게 아니야. 이십대 팔팔한 애들도 다 사천원 받고 일만 잘하는데 육십 넘은 늙은이가 돈을 더 많이 받으면 그게 공평해? 여기 평균연령이 몇인지 알아? 자그마치 예순하나야 예순하나. 그런데 어디서 젊은 사람들이랑 똑같이 받으려고 들어? 도둑놈 심보도 아니고."

 

 용역업체가 바뀌어 미화원의 시급을 깎으면서 하는 소리다. 주던대로 동일하게 달라는 그들의 요구를 묵살하면서...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이라는 말은 그들에겐 사치이고 일을 하게 해주는 것을 오히려 감사하라는 논리다. 가장 밑바닥에서 제일 더러운 일을 처리해주는 이들을 대하는 방식, 저런 방식이 자본주의라지만 사람이 바로 그 자본주의의 논리대로 행하는 이다. 그런 이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상관없으니 대학은 꼭 다녀야겠다는 양춘단씨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단순히 청소 일을 하러 대학 간 줄 아쇼? 내가 하루종일 을매나 바쁜디, 시간 날 때마다 여그저그 돌아다니면서 도둑 공부 들어야제, 친하게 지내는 교수 선생이랑 밥도 같이 먹어야제, 요즘 대학생들은 뭘 하고 어떻게 사나 다 듣고 보고... 여기서 나 대학 보내줄 수 있는 사람 있으면 손 한 번 들어보세... 없제? 그라면 그라는 거 아니여. 청소 일이나 한다고 사람 면전에서 무시해쌌고... 나라고 왜 청소일이 힘들지 않겄어. 그래도 이 일이 아니면 다른 방도로는 대학이라는 데를 가볼 수가 없지 않어."

 

 작가는 양춘단씨가 다니는 대학교에서 벌어지는 비리를 포함한 여러가지 문제들을 다 보여준다. 그 중 양춘단씨와 한 번씩 점심식사를 같이 하는 한도진강사의 문제는 고질적이면서도 바뀌지 않는 오래된 문제이다. 그의 일기장을 보면 단순히 시간강사 문제뿐만 아니라 여러가지가 중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 두 명이 찾아왔다. 중간고사에 결석을 했는데 리포트로 대체하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리포트를 내도 다른 학생들과의 형평성 때문에 차등을 둘 수밖에 없다고 대답해주었다. 알겠다고 하더니 돌아서서 강사주제에, 라고 말했다. 오늘도 둘 다 결석했고 리포트도 내지 않았다. 다닐 필요도 없는 아이들이 대학을 너무 많이 다니고 있다. 나 역시 그렇지 않은가. 요즘 들어 늦은 후회가 부쩍 많이 든다.

일기장의 일부 중 몇 줄만 발췌해도 대학 교육의 문제점, 강사의 지위문제, 요즘 아이들의 인성등등이 한 번에 드러난다.

 

드디어 강의 하나를 맡게 되었다. 감사인사를 드리기 위해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선생님이 내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손을 잡았다. 내 손도 이제 더는 깨끗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한도진의 자살을 보면서 또 노회찬 의원이 겹쳐졌다. 수많은 투명인간들을 위해, 그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진보정당을 만들겠다던 그의 이상은, 자신의 순수하고 높은 기준에 걸려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의 자살 이후로 정의당의 지지율이 상승하고 당원가입도 늘었다고 한다. 이 현상의 지속기간이 얼마나 될 지 의문이지만 이런 크나큰 희생이 없이는 대중들의 관심조차 받을 수없는 현실이 엄연하기에 마음 아프다.

 학교 공부에 한맺힌 양춘단씨가 꼭 가고 싶어하던 곳, 직접 들어가서 적나라한 실체를 대면하고, 이상향의 허울을 상징하는 그 코끼리상을 양춘단씨가 직접 허물어 버리는 설정은 의미심장하다. 세상의 온갖 문제와 비리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온존하는 그 곳의 상징을 청소미화원이 무너뜨리게 하는 모습은 작가가 세상을 향해 날리는 어퍼컷이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야기한다. 모든 등장인물은 실재한다고! 분명, 어디선가 본 적 있을거라고!! 그렇다. 본 적있다. 헌데 우리는 눈 앞에서 움직이는 사람도, 벌어지는 일들도 모르는 척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들을 무시하며 사는 우리에게 작가가 강조했던 말을 되새겨 보자. 그리고 어떤 행동을 해야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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