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욜로욜로 시리즈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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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출판사에서 작가 박지리의 팬클럽을 결성한다는 포스트를 보게 되었다. 작년에 시사인에서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소개하는 글을 읽다가 작가의 사망소식을 알고 깜짝 놀랐다. 작가의 첫 소설 <합☆체>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떠올라 젊은 나이에 어쩌다 그리 되었는지 궁금했으나 더 자세한 정보는 알 수 없었고 바로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빌려 읽었고 또또 놀랐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이리저리 부유했으나 글로 남기지는 못한채 지인들에게 소개만 했었다. 그 때는 블로그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이라 글남기기에 대한 의무감도 크지 않았더랬다. 그리고 바로 <맨홀>도 찾아 읽었는데 이것도 리뷰는 쓰지 못했다.

시간은 흘렀고,
이리저리 바쁘게 지냈고,
팬클럽 결성소식을 알게 되었고,
그의 작품을 읽고 리뷰를 남기는 것으로 팬클럽 회원이 될 수 있다는 제법 쉬워 보이는? 회원가입 조건을 알게 되었고~ㅎ 그래서 이젠 글을 좀 써야겠다는 다짐으로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를 빌렸다. 올해 초부터 시작한 블로그글쓰기 덕분에? 읽은 책은 무조건 흔적을 남기고 있으니 개인적인 조건도 맞아떨어진 셈이다.

주인공 M은 취준생. 뭘 하려고 해도 면접이라는 과정은 통과해야만 뭐라도 할 기회가 주어지는 이 시대 청춘들의 암울한 현실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M의 면접분투기를 통해 취준생들에게 말도 안되는 극한의 조건들로, 아니 어떻게든 떨어뜨리고 보겠다는 심산으로 평가질 해대는 악랄한 자본의 태도를 보게 된다. 떨어질 줄 알았던 마흔여덟번째 대기업 과자회사 면접에서 합격소식을 듣고 연수에 참가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더 극심한 평가가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일지 형식으로 보여주는 주인공의 연수원 생활을 읽는 동안 가슴을 퉁퉁 쳐야만 했다. 어떻게든 이 과정도 통과해 보려고 머리 굴리고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애쓰는 M의 노력에 가상함을 넘어 애잔함에 목이 컥컥 메었다. 이 연수가 언제쯤 끝날까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지는데 이건 점입가경이다. 어쩌다 발견한 평가파일 속에서 발견한 13번 X표시가 자신임을 확신한 M은 이를 악물고 더더욱 노오력하지만 그의 행동을 조원들이나 동기, 사수들은 비웃을 뿐이다. 사실 그도 모르지 않는다.

p.81
부품. 알고 있다. 어딜 가나 한 개의 부품일 뿐이다. 그 자체만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보면 어떤 목적의 기계를 움직이기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아주 작은 부품 한 개.

언제 교체되어도 상관 없을 부품 하나가 되기 위해 숱한 면접을 본 것이고,

p.137
한 번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선 두 번의 공을 쌓아야 하는 법. 벽돌을 쌓자. 다른 반보다, 다른 조보다, 다른 누구보다도 더 빠르게 벽돌을 쌓자.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 그럴 겨를이 있으면 한 층이라도 더 벽돌을 쌓자. 손이 점점 빨라진다. 온몸의 신경이 오직 하나의 목표에 집중한다.

조직의 부품이 되기 위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누구보다 더 노력을 기울이고,

p.147
일요일 아침엔 체조 시간이 더 늦는 걸까, 아니면 체조하는 장소가 바뀐 걸까? 나만 그 연락을 못 받은 건 역시 나를 시험하기 위함일까? 나 같은 중도 합류자는 역시 입회 시험이라도 치러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져서?


너무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될 일에까지 거의 목숨을 바치다시피 최선을 다하고,

p.218
여태껏 이런 시간에 한 번도 식당에 온 적이 없는 자가 왜 오늘은 그 자리에 있었던 걸까. 오늘 새벽부터 계속해서 나를 감시하고 있었던 걸까. 목적이 뭘까. 친구의 지령이라도 받았나.

 동료라기보다는 하나같이 감시자처럼 보이는 이들을 끊임없이 경계해야만 했다.

p.228
형사님, 이 세상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게 뭔 줄 아세요? 남들보다 못한 인간으로 도태되는 것? 사람들한테 머저리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것? 이마에 최저 인간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 가장 수치스러운 건 말이죠... 죄를 눈감아 주는 거예요. 아무 벌도 내리지 않는 거예요. 하느님이라도 된다는 듯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거... 나를 이해하는거... 그것만큼 견디기 어려운 게 없어요...

자신의 살인을 믿어주지 않는 형사앞에서 M이 하는 절규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읽어보았다...

그의 고군분투를 보며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내 생각은,
이해가 아닌 동정일까?
그를 수치스럽게 한 것인가??

대기업이 아니어도 맘 편한,
정말이지 스트레스 초조감 압박감 같은 건 느끼지 않으며 일을 하는 M을 보며 해피엔딩일 줄 알았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 얄팍한 엔딩은 원치 않은 모양이다.
왜?
현실은!!!
고생한 주인공을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았다고 끝맺어 주는 동화도 아니고,
"미생"같은 성공신화가 아무한테나 이루어질리도 없다.

연극 속 주인공인 M은 관객인 독자에게 묻는다.

"나는 어디에 있는 거죠?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요?
……
당신은, 당신은 불이 켜지면
사라지는 존재인가?
어? 그런 허깨비야?
나도 아니야.
나는 사라지지도,
어디로 가지도 않아.
길을 알아낼 때까지
영원히 이곳에 있어야 해.
그러니 제발 좀 말해줘."

 

작가는 M을 삶이라는 연극 속에서 취준생1 이라는 등장인물로 영원히 살게 만들어 버렸다. 그 감옥같은 연극, 아니 그 삶속에서 계속 머물러야만 하나? 그렇다면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 속 부품 1처럼 우리도 연극 속 취준생 1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암전되며 캄캄해져버린 연극 무대를 뒤로하고, 책을 덮으며 다시 생각해 본다. 그렇지만은 않다고... 작가의 의도가 그렇게 부정적일리만은 없다고...

물어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남은 독자의 몫이다. 새로운 무대의 막이 올라가면 다른 삶을 사는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으리라 희망해 본다. 그 희망이 고문이 되지 않길 희망하면서~~ 우리는 부품이 아니고 허깨비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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