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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은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는가 - 현대 물리학의 존재론적 질문들에 대한 도발적인 답변
자비네 호젠펠더 지음, 배지은 옮김 / 해나무 / 2024년 7월
평점 :
본 서적은 물리학 뿐만 아니라 과학이라는 학문이 어디까지 설명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교본입니다. 현대과학은 인류 지성의 종착지라 여길 수 있을 정도로 놀라운 수준으로 발전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이 발전한다 하더라도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절대 내놓을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그보다 더 명확한 과학적 진리를 답으로 내놓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답을 틀린 답으로 치부하는 것이 오히려 비논리적일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이를 비과학(non-science)과 무과학(ascience)의 영역에 대해 구분합니다. 예컨대 기독교에서 세상의 형성원리를 설명하는 창조설은 비과학입니다. 그러나 창조설의 모든 주장에 대해 논리적으로 틀렸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저자의 논리에는 생략된 점이 존재하여 온전히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저자는 창조설이 틀린 논리는 아니며 과학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설명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지구가 약 6천 년 전에 생성되었다는 명제는 수많은 증거에 의해 반박되어 확실하게 틀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설의 모든 주장을 증거로 반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창조설의 대명제 '이 세상을 신이 창조하였다'는 어떠한 증거로도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어떠한 증거로도 반박할 수 없습니다. 반증이 불가능한 영역은 과학적 답을 내릴 수 없는 영역에 속합니다. 물론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라 하여 그게 진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아직 현대과학으로는 창조의 순간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게 과학적으로 타당한 설명인 것이지, '신이 6일만에 세상을 창조하였다'는 창조신화가 과학적인 설명이 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창조신화는 어떠한 과학적 요소도 개입하지 않은 비과학의 전형입니다. 우리가 불신하는 미신과 다를 바 없는 구조입니다.
그렇다면 과학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증명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어떨까요? 이 책에서는 다중우주론(다세계 해석)을 그 예시로 들면서 이를 무과학의 영역에 속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쉽게 말하면 논리적으로 가능하고 현대과학에도 위배되지 않는 설명이 가능하지만, 앞서 말했듯 과학이 발전한다 하더라도 명확한 증거를 내놓을 수 없는 경우입니다. 이들은 과학의 영역에 속한다고 오해하기 쉬운데, 그 이유 중 하나는 과학자들의 입을 통해 전파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책의 저자는 다중우주론과 같이 증명할 수 없는 이론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무과학이라는 개념을 접하며, 문득 아직 규명되지 못한 끈이론이 떠올랐습니다. 물질의 운동을 가장 잘 예측한다는 현대물리학 이론인 양자장론에서는 우주의 구성물질을 점입자로 가정하는데, 점입자에서는 특이점이 생기기 때문에 세상을 설명하는 기본 이론으로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끈이론은 우주를 구성하는 것들의 가장 기본적인 모양이 끈 형태로 이루어졌다는 이론으로, 1969년의 아이디어에서 태동했습니다. 지금까지 수학적으로는 어느 정도 설명이 모순 없이 가능하고 수학 분야까지 새로 개척한 물리학 영역이지만 실제 증명된 바가 없습니다.
끈이론 증명의 난제는 최소 태양계 크기의 입자가속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류가 그러한 크기의 입자가속기를 제작하는 게 지금의 과학기술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실험으로 증명을 못하는 것이지, 다중우주론처럼 증명 불가능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인류의 과학기술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도 도달하지 못하는 영역일 수 있지만, 실험 방법 자체가 틀린 건 아닙니다. 조금 더 생각을 이어나가, 관측가능한 우주의 구성물질 전체를 이용하여도 태양계 크기의 입자가속기를 만들 수 없다면 어떨까요? 제시한 실험만 이루어진다면 진실을 가릴 수 있지만, 우리의 우주에서 불가능하다면요?
이 책에서는 이런 경우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다중우주론의 증명 실험을 설계할 수 없는 것과 달리 끈이론의 증명 실험을 설계하는 건 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하여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본 서적의 논리를 따르면, 방금 가정한 상황 하에서의 끈이론 증명은 과학적 증거를 댈 수 없는 영역에 속하니 무과학의 영역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자가 직접 언급한 예시는 아니었지만, 저자의 논리에 반대하는데 먼 미래에도 현실적인 문제로 증명이 불가능할지라도 과학적 방법론에 의거한 실험을 설계할 수 있다면 과학의 영역으로 봐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렇듯 과학과 무과학의 영역이 모호한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저자가 이야기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의 과학은 영원한 진리가 아니며, 현대과학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는 어렵고, 과학이 엄청나게 발전한 먼 미래에도 과학만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것들이 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저 또한 과학을 전공하고 과학지식을 이용하는 직역에 종사하고 있다보니 종종 과학만능주의에 빠질 때가 있지만, 삶을 살아가며 느끼는 모든 것을 과학만을 이용하여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과학자는 과학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지만, 과학만으로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 책을 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