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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화감각 - 이상하고 가끔 아름다운 세계에 관하여
미시나 데루오키 지음, 이건우 옮김 / 푸른숲 / 2024년 8월
평점 :
'예쁜데 쓸데가 없어'
저렴하게 생활용품을 구입할 수 있기로 유명한 체인점에 들릴 때마다 떠오르는 문장입니다.
다양한 잡화들로 가득한 그곳에만 가면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지요.
그렇게 잔뜩 사서 집으로 돌아오면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듭니다.
이거랑 같은 거 집에 또 있는데...라고 푸념합니다.
오늘은 아름답지만 쓸 곳이 없는 물건들의 세계로 초대하는 책을 소개해 보려 합니다.

[잡화감각]라는 제목의 이 책은 말 그대로 '잡화'를 다루는 이가 쓴 에세이입니다.
저자인 미시나 데루오키는 일본 도쿄에서 20여 년 가까이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는 오랜 세월 작은 잡화점 안에서 바라본 잡화에 대한 여러 단상을 담아 이 책을 썼습니다.
잡화雑貨란 무엇일까요?
보통은 일상생활에 쓰이는 잡다한 물건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그에 대한 답으로 이렇게 정의합니다.
'잡화감각에 의해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것, 즉 사람들이 잡화라고 생각하면 그게 잡화인 것이다'
그렇다면 잡화감각이란 무엇일까요?
이 또한 저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잡화라고 생각하는지 아닌지를 정하는 개념이다'
왠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답입니다.
그저 10년 이상 잡화에 둘러싸여 살면서
깨달은 현상이 있다면,
사람들이 어떠한 물건을 보고
이게 잡화인지 아닌지를 판정하는 기준이
점점 느슨해진다는 점이다.
세상의 모든 물건이 잡화로 보이기 시작했다.
대체 왜 누가 무엇 때문일까?
<반경 1미터> 中에서
잡화감각에 대한 설명은 보충하자면 잡화감각이 100%인 사람은 모든 사물이 다 잡화인 상태입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보는 것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잡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저의 잡화감각은 얼마인지 한번 주변을 둘러보게 됩니다.
머그컵은 물을 담을 때 필요하니 잡화가 아니고 굴러다니는 볼펜은 연필이 대신할 수 있으니 잡화고
휴대전화는 있으면 편하지만 없어도 딱히 아쉬울 것 없으니 반만 잡화인 걸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저의 잡화감각은 51% 정도일까요?
그럼에도 생활용품 판매점에 들릴 때마다 귀엽고 예쁜 물건들을 만나면 사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저의 잡화감각은 들쑥날쑥하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때론 잡화는 골동품을 떠오르게 하는 단어가 되기도 합니다.
쓰임을 위해 태어난 사물이 박제된 채 그저 눈요깃거리가 되고만 골동품말이죠.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가구나 물건이 그저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퇴물이 될 수 있을까요?
여전히 어딘가에서 쓰이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을까요?
그것들은 단지 장식되기 위해 존재하는 물건들이 아니었으니까요.
잡화 역시 분명 필요에 의해 생겨났을 텐데 제 쓰임을 다하지 못하여 안타까워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해외여행길 어딘가 이국적 분위기에 취해 사들였을 예쁜 접시 하나, 아름다운 테이블보 한 장이
그저 벽장 속 추억으로 남아있지는 않은지 기억을 더듬어봅니다.
저자는 집 근처 작은 골동품점의 문이 굳게 닫힌 채 예약제 운영된다는 안내문을 보며
자신과 자신이 운영하는 잡화점에 대해 이런 상념에 잠겨보기도 합니다.
그의 블로그를 읽게 된 후부터
종종 나의 죽음에 대해 떠올리듯
가게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한다.
이제는 방약무인한 잡화들 때문에
무엇을 좋아했는지조차 잊었지만,
만일 언젠가 정말 좋아했던 물건을 떠올리고,
그것과 가게가 일체화되어
그로 인해 가게가 죽어버린다 하더라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나는 지상에서 몇 센티미터 정도 떠 있을까?
<유령등> 中에서
'라이프 스타일' 흔히 생활 잡화를 취급하는 판매점에서 표방하는 브랜드입니다.
마치 그곳에 산 제품이 제 라이프 스타일을 대변해 주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죠.
눈에 띄지 않지만 어딘가 삶 속에 스며든 생활습관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잡화감각]은 잡화에 대해 말해주지 않습니다.
대신 잡화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방식이나 사회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한때는 소중한 추억이나 필수품으로 여기던 것들이
이제는 한낱 잡화로 치부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만들어줍니다.
작은 장식품 하나에도 깊은 의미가 담긴다면 더 이상 사소한 잡화가 아니게 되니까요.
무용의 세계에서 유용한 의미를 찾아보게 되는 책 [잡화감각]을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