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힘껏 산다 - 식물로부터 배운 유연하고도 단단한 삶에 대하여
정재경 지음 / 샘터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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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선들한 바람이 물내음을 실어오면 수국이 피는 계절이 다가왔음을 느낍니다.

비가 내리지 않아도 꽃송이에 물기가 가득한 느낌이 드는 수국.

저는 짙은 초록 나뭇잎 사이로 자줏빛 꽃잎을 잔뜩 피어낸 수국을 보고 있노라면

금방이라도 큰비가 퍼부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물끄러미 식물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참 다양한 생각이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식물로부터 배우는 인생의 의미가 담긴 책 한 권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있는 힘껏 산다]를 쓴 저자는 미세먼지를 제거하기 위해 200여 개의 식물들을 키우는 동안

자신의 창조성도 깨운 덕분에 내면의 성장을 돕는 코칭과 강연, 강의를 이어나가는 작가입니다.

식물과 함께 살면서 식물에 대해 알게 된 이야기들을 이미 여러 권의 책으로 펴내기도 했지요.

이번에 펴낸 책은 '반려 식물 처방'이라는 주제로 월간잡지에 연재한 글들의 모음집입니다.

저자는 식물을 키우면서 '나'라는 나무도 튼튼하게 키워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책엔 살다 보면 문득 마주치는 '길을 잃은 것 같을 때'를 위해

식물에게 배운 삶의 기술을 담았다.

어떤 글은 식물이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기도 하고,

어떤 글은 식물이 조연으로 등장한다.

분량이 적어도 극의 흐름에 꼭 필요한 엑스트라처럼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식물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싶었다.

<있는 힘껏 산다> 中에서



책에 등장하는 식물들은 다양합니다.

모네가 떠오르는 수련, 식재료로 사용되는 허브의 일종인 로즈마리, 담벼락에 흐드러진 능소화,

길가에 핀 흔하디 흔한 개망초, 꽃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해피트리, 몬스테라, 스킨답서스,

그리고 볼 때마다 빨간 머리 앤과 다이애나를 떠올리게 하는 자작나무 등이 등장하지요.

저자는 식물에 얽힌 사연들을 하나씩 풀어내면서 식물들에게 얻은 힘과 용기에 대해,

또는 위로와 응원의 이야기들로 페이지를 채워나갑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 확진되어 앓던 아들을 돌보기에 여념이 없던 저자는 어느 날 문득

두세 장의 잎만 달고 있어 유독 애착이 가던 스킨답서스가 한 장의 새파란 잎을 내민 것을 보고

참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힘들어 보였는데 오히려 새로운 잎을 밀어내며 삶에 애착을 보이는 식물에게 감동을 받았다고요.


당연한 건 없다.

아들이 어서 기운 차리기를 바라며 마늘 향 우려 고기를 볶는 마음,

잎 두 장 딸린 스킨답서스를 키우는 마음,

버려진 싱고니움을 데려다 삼십여 장의 잎이 달린 식물로 키워내는 마음,

산책로를 돌보는 마음.

누군가가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쓴 덕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

<있는 힘껏 산다_스킨답서스> 中에서


책을 읽는 동안 저도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습니다.

오랜 직장생활을 그만둔 시기와 맞물려 팬데믹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한창이던 그때.

제게 허락된 건 이제 막 봄을 맞이해 푸릇해지기 시작한 산책로를 걷는 것뿐이었지요.

어둠으로 가득한 제 마음에 스며든 빛의 세계가 그곳에 있었습니다.

연초록의 잎사귀 사이로 반짝이는 햇빛과 보드랍게 흩날리던 벚꽃 잎.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마치 응원하듯 속삭이던 따사로운 봄바람이 저를 감싸던 느낌.

저 또한 식물들에게서 위로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의 초록과 햇빛과 바람은 아마도 평생 잊히지 않을 것 같네요.

저자가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도 바로 이런 경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잠깐 방심하면 집 안 구석구석 군살이 낀다.

일상도, 몸도 그렇다.

무엇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하고 관리하는 데 쓰는 시간을 줄이고,

좋아하는 일을 조금 더 많이 하며,

정제된 사물과 여백이 있는 공간에서 서로 사랑하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다.

<있는 힘껏 산다_호야> 中에서



저에게도 저와 함께 살아가는 반려식물들이 있습니다.

나눔을 통해 받은 벤자민은 여러 번의 분갈이를 통해 이제는 제 키를 훌쩍 넘겨버렸고

책상 위에 키우던 작은 오렌지재스민은 이제 꽃을 피우면 짙은 향기가 집안을 가득 채우며

서너 장의 잎사귀를 달고 있던 스킨답서스는 어느새 줄기를 길게 늘어뜨릴 정도입니다.

정성을 들이지 않아도 스스로를 돌보며 잘 자라나는 식물들을 바라보노라면

저도 저자신을 잘 돌보고 잘 자라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끊임없이 잎을 피우는 벤자민처럼 스스럼없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오렌지재스민처럼

볼 때마다 길게 뻗어가는 스킨답서스처럼 계속 성장해가고 싶습니다.

식물로부터 배운 유연하고 단단한 삶의 이야기를 담은 [있는 힘껏 산다]를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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