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의 작은 부엌칼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문기업 옮김 / 문예춘추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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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봉지에 담긴 걸 꺼내어 살짝 데워서 내놓았을 뿐인데 아이는 엄지를 척 듭니다.

"엄마가 해준 게 제일 맛있어!"

가슴이 뜨끔합니다. 아이가 모를 리 없지요.

하지만 아이는 무슨 요리든 엄마의 손길이 거친 것이면 다 맛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요리가 아니라 엄마가 차려준 밥상 그 자체로 행복을 느끼는 것이지요.

그래서 조금은 부족하지만 매일 정성스럽게 밥상을 차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마음을 치유하는 소박하지만 따뜻한 요리 한 상을 담은 소설 한 권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에밀리의 작은 부엌칼]은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 모리사와 아키오가 쓴 소설입니다.

프롤로그에서 날카롭게 벼린 부엌칼을 품고 결연한 자세로 어느 집 대문 앞에 서 있던 에밀리가

이 작품의 주인공이지요.

그러나 이어지는 첫 장의 에밀리는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기차에 타고 있습니다.

사귀던 직장상사가 유부남이란 사실을 숨기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불륜을 저지르게 된 에밀리는

그로 인해 직장과 돈, 보금자리까지 잃고 맙니다.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는 그녀에게 딱 한 곳, 외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바닷가 마을을 떠오르고

에밀리는 도망치듯 그곳으로 찾아가지요.

마치 어미를 잃은 새끼고양이 같은 에밀리를 말없이 품어주는 무뚝뚝하지만 다정한 외할아버지.

그곳에서 에밀리는 외할아버지가 차려준 밥상을 마주하며 어린 시절 받지 못한 평범한 밥상을 떠올리지만

소박하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한 끼에 조금씩 마음에 난 상처들을 치유하게 됩니다.


내 인생에는 그 평범함이 결정적으로 부족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 이렇게나 훈훈한 심정으로,

집에서 손수 만든 요리를 먹고 감동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고양이가 되고 싶어 : 쏨뱅이 된장국> 中에서


에밀리의 부모는 그녀가 어릴 적 이혼하고 오누이는 엄마와 함께 살았습니다.

여성 혼자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려면 분명 힘에 부쳤겠지요.

게다가 엄마는 어찌 된 셈인지 가정을 뒷전으로 하고 남자의 꽁무니만 쫓아다닙니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 넌덜머리가 난 오빠는 일찌감치 유학을 핑계로 미국으로 떠나버렸죠.

에밀리에게는 정말 따뜻한 밥상이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포근하고 정다운 위로까지도요.

그런데 뜻밖에도 오갈 데 없어진 에밀리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외할아버지로부터

그 모든 걸 다 받을 수 있었던 셈입니다.


"에밀리 씨, 콧노래 불러봐요."

"네?"

"힘들 때도 콧노래를 부르면,

세계는 변하지 않을지 몰라도 기분은 바꿀 수 있거든요."

<밤의 그네: 붉돔 초절임> 中에서


왠지 만화 <언플러그드 보이>의 "난 슬플 땐 힙합을 춰"라는 대사가 생각나기도 하네요.

어딘가 자기 개발서나 심리서적에서 이런 문구를 읽었다면 상투적이지만 맞는 말이라 여기고

그냥 넘어갔을지도 모릅니다.

책 곳곳에서 에밀리를 위로하는 말들이 저에게도 위안이 되는 문장들을 만나게 됩니다.

에밀리가 도시에서 도망쳐온 이유가 온마을에 소문으로 퍼져서 또다시 상처받게 되었을 때

그 아픔을 보듬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에밀리는 다시 한번 꿋꿋하게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존재 가치와 인생 가치를 남이 판단하게 해선 안 된다."

할아버지는 평소보다 더 차분한 목소리로 천천히 이야기를 해주었다.

"반드시 스스로 판단해라. 다른 사람 의견은 참고 정도만 하면 돼."

<실연 하이 터치 : 삼치 마멀레이드 구이> 中에서


에밀리는 다시 용기를 얻습니다.

외할아버지의 맛있는 요리와 이웃들의 다정한 보살핌에 힘을 얻습니다.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면서도 문득 혼자 남겨질 외할아버지를 걱정하며 망설이는

에밀리의 등을 외할아버지는 언제든 다시 돌아오라며 슬며시 밀어줍니다.

외할아버지가 에밀리에게 선물한 작은 부엌칼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요?

작품 속에서 비밀의 해답을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죠.

오늘 저녁도 애정을 듬뿍 담아 따뜻한 밥상을 차려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작은 진심이 일으키는 사소한 기적을 알려주는 [에밀리의 작은 부엌칼]을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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