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식탁 - 자연이 허락한 사계절의 기쁨을 채집하는 삶
모 와일드 지음, 신소희 옮김 / 부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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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TV 프로그램에서 본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어떤 남자가 밭둑을 걸어가다 웅크리고 앉아 손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뜯습니다.

카메라가 비춘 것은 바로 풀무더기.

화면이 바뀌어 남자는 그것을 물에 씻어 손질한 후 데치고 무치더니 뚝딱 요리 한 접시를 내놓습니다.

'아니, 저걸 먹을 수 있단 말이야?'

그 순간 저 사람은 산속 어디에 내놔도 굶어 죽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산야초 밥상의 세계로 안내하는 책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야생의 식탁]의 저자는 스코틀랜드의 시골에 사는 약초 연구자로 알려진 할머니 모 와일드입니다.

저자는 쉰의 나이에 대학을 들어가 약초학 석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식물과 허브의 매력에

푹 빠져 있으며 스코틀랜드 일 년간 야생식만 먹는 실험을 할 만큼 와일드한 할머니이기도 합니다.

아득한 먼 옛날 인간이 수렵과 채취로 생활하는 유목민이었을 때 사계절의 먹거리는 어땠을까요?

냉장고는 상상도 못 하던 시절 매번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이동하며 땅에서 나는 풀뿌리와 나무열매

그리고 가끔 사냥으로 잡은 고기와 물고기가 식량의 전부였을 것이라고 우리는 배웠습니다.

그런데 정말 채취만으로 인간은 생존이 가능할까요?

이 책은 바로 위의 질문에 비롯된 저자의 연구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11월의 어느 날 야생식만 먹을 것을 결정하며 우선 몇 가지 규칙을 정합니다.

먼저 무조건 야생식만 먹을 것, 현지 식량을 구할 것, 돈이 아닌 물물교환으로 구입할 것,

직접 키운 닭과 염소에게서 달걀과 우유를 얻을 것, 기본은 제철 음식이나 겨울엔 보존 처리한

야생식을 섭취할 것이 그것이지요.

어쩐지 삼시 세 끼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런 규칙들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은 과연 인류는 생존을 위해 식량과 사투를 벌였구나, 싶네요.

먹고 돌아서면 다음 끼니를 위한 먹거리를 구해와야 했을 테니까요.


고대 유목민은 현대인처럼 목적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지 않았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이제 나도 목적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조상들이 한 해 동안 이동한 경로는 빙글빙글 돌면서

야영지에서 점차 멀어지는 형태였을 것이다.

그들은 데이지 꽃잎처럼 죽 이어지는 동그라미를 그리며 계절에 따라

먹을거리를 찾을 수 있는 익숙한 지형을 반복하여 돌아다녔다.

각각의 수렵, 채취 공동체는 자연적으로 영양분이 풍부한 장소를

계절별로 야영지로 정해 두고 유목 활동의 근거지로 삼았을 것이다.

<1부 겨울> 中에서


저자는 하필 만물이 모두 땅 속 깊이 잠든 추운 겨울에 야생식을 시작한 바람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다는 안타까움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이웃의 도움 덕분에 사슴고기로 연명하며 나도산마늘 싹을 채취하거나

야생의 구름버섯 무더기를 찾아내고 땅감자를 캐거나 서양민들레 뿌리를 캐는 등

다양한 채취활동을 이어나간 덕분에 무사히 겨울을 날 수가 있었습니다.

서양은 한국과 달리 식물을 채취하려면 땅 주인의 허락이 필요하니 좀 더 일이 많군요.

한국 할머니들이 미국의 한 공원에서 쑥을 캐다가 잡혀갔다는 이야기가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겨울을 보내고 드디어 봄을 맞이하는 모 할머니.



이렇게 책은 스코틀랜드의 사계절에 걸쳐 다양한 식물을 채집하고 요리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두었습니다.

물론 저자가 자연 속에 살아가면서 느끼는 기후 변화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나있는 반면

그런 상황에서도 정화를 위해 애쓰는 식물들에 대한 고마움도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연의 치유력이 지구뿐만 아니라 인간도 회복시킬 수 있음에 조금은 안도가 됩니다.

책 속에 등장한 다양한 식물의 이름들이 너무도 생소하지만 한국식 식물이름으로 번역되어 있어

정말 궁금한 식물의 모습은 <국가표준식물목록 http://www.nature.go.kr/kpni/SubIndex.do>

웹사이트에서 확인해 볼 수도 있었습니다.

이렇게나 많은 식물들이 식용으로 활용가능하다니 정말 놀랍네요.

이 할머니, 한국의 할머니와 연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의 다양한 식용 야생초와 나물의 세계를 안다면 더 풍성한 식탁을 차릴 수 있을 텐데 말이죠.


나는 자연이란 무자비한 존재이며

적자생존과 경쟁밖에 모른다고 믿으며 자랐다.

하지만 자연을 사실 모든 인간의 모범이 되려는 것처럼

협력과 공생 관계를 훨씬 더 많이 보여 준다.

<5부 가을> 中에서


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농경을 시작하고 나서 식물의 다양성이 상실되었다고 합니다.

인간은 재배가 쉽고 소출이 많으며 섭취하기 편한 곡식 위주로 농사를 지으면서

그 밖의 무수한 식물의 성장을 방해하고 제거함으로써 식용 가능한 범위로 좁혔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래서 오늘날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식물은 아주 한정적이 되었다고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질경이, 고들빼기, 괭이밥과 같은 나물을 알까요?

건강상의 이유든 다이어트가 목적이든 사람들의 식습관은 유행을 탄다는 느낌이 드는 요즘,

인간의 건강뿐만 아니라 지구의 건강을 위해서도 자연이 건네준 식재료를 자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어쩐지 낯설지만은 않은 스코틀랜드 할머니의 자연밥상 [야생의 식탁]을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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