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기억책 - 자연의 다정한 목격자 최원형의 사라지는 사계에 대한 기록
최원형 지음 / 블랙피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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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살던 집은 2층으로 된 양옥집이었어요.

어느 봄 제비 부부 한쌍이 날아들더니 기둥과 천장 사이 삼각지대를 부지런히 드나들며 집을 지었죠.

초여름이 다가올 무렵 지지배배 새끼제비들이 둥지 너머로 쏙 고개를 내밀었어요.

마냥 신기했던 저는 아침저녁으로 제비 둥지를 올려다보는 게 일과였습니다.

어른들은 '제비가 둥지 트는 집은 가난해진다던데'라며 우스갯소리를 하면서도

제비 가족들이 바람을 타고 멀리 떠난 날을 아쉬워하며 남은 빈 둥지를 치우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듬해 봄 제비가 또 언제 찾아 오려나, 기대하는 눈치였죠.

인간과 제비가 함께 살아가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사계절 기억책]은 저의 오래된 제비에 대한 추억을 일깨워주는 책입니다.

아침 등교길 높다란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 시끄럽게 짹짹거리던 참새들의 지저귐도

동네 산자락 커다란 아까시나무의 꽃들 사이로 날아다니던 꿀벌들의 요란한 날개짓도

이제는 흔치 않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저자인 최원형 작가는 생태, 에너지,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여러 매체에 기고하며 강연을 다닙니다.

그는 어느 날 길어지는 전화 통화의 지루함을 덜어내기 위해 우연히 책상 위 펼쳐진 새 한 마리를

그리는 것을 시작으로 동식물을 비롯하여 자연 환경을 그리고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인공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살며 자연과 우리는 너무 오래 멀어졌다.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마저 멀어진 거다.

다시 눈 가까이 자연을 불러들일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림과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쓰고 책으로 묶으면서 생긴 내 바람은

오직 하나, 사람들이 자연의 이야기에 귀와 눈을 조금씩 열었으면!

<사계절 기억책_시작하는 글> 中에서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기억해내지 않으면 언젠가는 기억으로만 남을 우리의 소외된 이웃들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인지 책은 예전에는 흔히 눈에 띄던 식물과 곤충, 새들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합니다.

어느새 경계가 불분명해진 사계절 속에 자연 곳곳을 누비며 저자가 만난 생명들을

직접 그린 세밀화로 보니 시골에서 자랐던 저로서는 반갑기까지 하네요.

어디서나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청개구리, 소금장수, 민들레, 아까시나무, 참새 등등

너무나 따스한 마음과 다정한 시선이 느껴지는 그림입니다.




최근 우리나라는 소똥구리가 멸종되었다고 합니다.

어릴 적 시골 집 외양간 근처에서 몇 번 본 적 있던 소똥구리가 떠올랐습니다.

물구나무 서서 뒷다리로 자신의 몸집보다 훨씬 크고 동그란 소똥을 열심히 밀고 가던 소똥구리.

환경부가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 정도지만 더 이상 소똥구리를 자연에서 찾기가 힘들어졌다네요.

책에서는 인간의 식물성 기름과 육류 섭취 증가로 인해 소똥구리가 멸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도대체 무슨 상관 관계가 있는가, 궁금하시다면 [사계절 기억책]을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사계절 그림책]은 자연의 생명들에 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인간들이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다양한 제정일들과 생태계와 연대할 수 있는 방법,

자연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활동들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매년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고 책에 나오진 않지만 5월 22일은 '생물다양성의 날'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저는 매월 22일은 지구를 위한 날이라 정하고 그날 만큼은 '탄소 단식' 하기로 결심해봅니다.




휘익~ 저러다 지면에 부딪치면 어쩌나 싶을 만큼 낮게 곡예 비행하던 제비들은

지금은 어디서 저공으로 날아다니며 먹이 사냥을 하고 있을까요?

높은 빌딩과 아파트 숲 사이를 누비기에는 너무도 위험한 도시.

더 이상 제비의 비행도 참새의 지저귐도 드물게 된 세상입니다.

동물이 살아갈 수 없다면 인간도 살아갈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던 친근한 이웃인 생명들이 기억에만 남지 않도록 지켜내야 하지 않을까요?

두고두고 지켜가야 할 우리의 사계절을 그린 [사계절 기억책]을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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