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 그린 - 버지니아 울프 단편집
버지니아 울프 지음, 민지현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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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간, 슬그머니 일어나 머리맡 전등을 켜고 책을 펼쳐듭니다.

어쩐지 이 책은 그렇게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가만히 작가가 그려내는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랄까요?

조용한 침묵 속에서 작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오늘 소개할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집입니다.


[블루&그린]은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소설이 총 18편 수록되어 있습니다.

사실 저는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거의 처음 접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작가의 대표작인 <자기만의 방>조차도 수박 겉핥기처럼 읽어서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조차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집을 손에 들었을 땐 조금 기대와 흥분이 찼습니다.

하지만 어렵더군요.

기승전결이 분명한 작품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그녀의 작품이 무척 어렵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작품 하나하나마다 색깔이 분명하고 전혀 다른 매력을 품고 있었지만

작가가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 잘 몰라서 한참을 붙들고 읽고 또 읽어야 했습니다.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단편소설 속 화자 모두 여성들이라는 사실이라는 점이었어요.

또 하나 느낀 점은 복잡한 상념이 오가는 여성의 내면을 잘 표현했다는 것이죠.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가 쓴 문장들은 100년이 시간이 흐른 지금도 유려하다는 느낌입니다.

자연을 노래하고 계절의 변화를 깊이 있게 그려내며 풍경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작가의 필력은

글쓰기 공부를 시작한 제가 꼭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이 부분은 옮긴이 역량도 한몫 했기 때문이겠죠.


과수원 모퉁이를 가로질러 초록과 파랑을 기다란 보라색이 갈랐다.

바람이 바뀌자, 한 다발의 사과가 높이 쳐들리면서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두 마리의 소를 가렸다.

("어머나, 차 마시는 시간에 늦겠어!" 미란다가 소리쳤다.)

사과 다발이 제자리로 돌아와 담장에 가지런히 걸렸다.

<과수원에서> 中에서



삶이 시작되던 순간부터 우리가 밟아온 궤적이 선명해진다.

온화한 하늘을 배경으로 웅장하게 선 플라타너스 아래서

엇갈리고 굽이치며 함께 달리던 흔적이 보인다.

바퀴소리와 외침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커졌다가 작아진다.

<동감> 中에서



오, 당신들이 묻어둔 보물이 이건가요?

마음 속에 있는 빛 말이에요.

<유령의 집> 中에서


고전의 힘은 대단합니다.

처음 읽었을 때와 시간이 흘러 다시 읽었을 때 문장이 주는 느낌이 다르니까요.

책의 내용은 그대로인데 아마도 세월이 흐르면서 제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다시 고전을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래지 않은 시간 안에 다시 버지니아 울프를 만나게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울창하게 우거진 초록 숲 사이로 세차게 흐르는 푸른 강을 떠올리게 만드는 [블루&그린]을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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