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왕국 서로마 제국이 ‘시시껄렁하게’사라지는 순간 - 프로와 아마의 차이 100페이지 톡톡 인문학
최봉수 지음 / 가디언 / 202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중국 후한 말기 위, 촉, 오나라 세 나라는 서로 맞서다가 촉나라를 무너뜨린 위나라에 의해

삼국 시대가 종식되었고 위를 이은 진나라가 동오를 멸망시킴으로써 삼국통일을 이루었지요.

한국사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이 각각의 왕조를 이루었다가 신라에 의해

통일신라시대를 열게 됩니다.

이처럼 한 나라의 건국에서 멸망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기록이나 구전을 통해

우리는 그 흐름을 대강은 알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우며 세계를 제패한 한 제국이 소리 없이 멸망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바로 '로마' 제국이죠.

천년의 왕국이라 불리던 로마는 어떻게 조용히 사라지게 된 걸까요?


[천년왕국 서로마 제국이 '시시껄렁하게' 사라지는 순간]이라는 긴 제목의 이 책은

생각보다 아주 짧습니다. 총 100페이지에 불과하거든요. 

로마제국이 사라지는 이유를 밝히는데 이렇게 짧다고? 라는 의문이 들만큼 얇지만

그 정도로 로마는 아주 시시껄렁하게 사라졌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저자인 최봉수 작가는 출판사 김영사의 편집자 출신으로 <오십, 고전에서 역사를 읽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100페이지에 담긴 서로마 제국 멸망기는 짧지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서로마 제국은 게르만족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했다'고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 멸망의 순간으로 치닫기까지 여러 물밑 작업(?)들이 오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의 흉노족이라 추정되는 훈족이 한의 무제에게 쫓겨 서쪽으로 밀려나갔을 때

그 과정에서 훈족의 왕인 형을 암살하고 왕이 된 아틸라가 유럽을 제패하며

로마까지 진출하는 장면에서부터 이 책은 시작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유럽을 공포로 떨게 만들었던 아틸라가 로마를 멸망시켰을까요?

답은 아니오, 입니다. 

아틸라는 땅 욕심보다는 돈 욕심이 더 많았던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동로마든 서로마든 공격을 했지만 막대한 배상금을 받고 물러났으니까요.

대신 아틸라는 역사의 변화와 시대의 흐름에 도전하는 사람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 백 척이나 되는 긴 장대 위에 서서

허공을 향해 한 발을 더 내딛기는 쉽지 않다.

백 척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는 상相 때문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 허공을 향해 한 발 내디딘다.

그 순간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시공간이 바뀌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새로운 지도가 펼쳐지는 것이다.

한 발 더 내딛지 않으면 끝내 모를 차원이다.

<로마는 아틸라를 몰랐다> 中에서


그러면 오도아케르는 서로마는 어떻게 멸망시켰을까요?

힌트를 던지자면 오도아케르는 문패를 바꿔 달았을 뿐이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오도아케르에 대한 저자의 비유가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마음에 없었다는 듯) 권력을 쥔 후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왜 권력에 오르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듯한 일상만 즐긴다.

중재자처럼 한발 물러나 황희 정승 같은 심판만 일삼는다.

한마디로 재수 없는 놈이다. 주변에 그런 놈이 꼭 있다.

공적도 없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그 자리에 가서는 실적 없이 버티는,

선하게 생긴 놈.

<비겁한 시간의 권력자(3) 오도아케르> 中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 존재하는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은 마치 익살스러운 이야기꾼의 재담을 듣는 듯 시종 재치와 유머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100페이지만으로 끝나는 게 아쉬울 정도로요.

그러면서도 서로마가 어떻게 시시껄렁하게 사라졌는지 밀도 높게 다루고 있습니다.

천년왕국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많은 유기적인 얼개과 상황이 맞물려야 가능하겠지요.

그 시대 사람들은 살아남기에 급급해 제국이 사라지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한순간에 허물어진 영광이 아닌 서서히 저물어가는 영원처럼요.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된 짧지만 깊은 이야기를 담은

[천년왕국 서로마 제국이 '시시껄렁하게' 사라지는 순간]를 읽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