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와 프로파일러 - FBI 프로파일링 기법의 설계자 앤 버지스의 인간 심연에 대한 보고서
앤 울버트 버지스.스티븐 매슈 콘스턴틴 지음, 김승진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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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부터 2000년도 초반까지 한국에서 강력한 범죄사건들이 잇달아 터지는 시기였습니다

짧은 제 기억에도 당시의 범죄자들이 언뜻 떠오르네요.

그 시기에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도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시 한국은 막 '프로파일러'라는 범죄 심리 분석관이 등장하기도 했지요.

뜻조차 생소했던 프로파일러 덕분에 많은 강력사건들이 해결되었던 기억도 납니다.


[살인자와 프로파일러]는 70년대 무렵 미국 FBI에서 프로파일링 기법이 막 태동하던 시기에

활동했던 프로파일링 설계자 앤 울버트 버지스가 쓴 회고록입니다.

미국 당시 강력범죄가 성행하던 시기였고 연쇄살인사건과 같은 중대범죄가 일어나지만

실마리를 찾지 못해 사건이 미궁에 빠지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FBI 요원이었던 로이 헤이즐우드는 간호학을 전공하고 최초로 성폭력의 관련 연구를 통해

강간 피해자의 트라우마와 그 회복에 도움을 준 앤 버지스의 학술논문을 통해 알게 되어

그녀에게 FBI 행동과학부에 도움을 줄 것을 청하게 됩니다.

당시 FBI는 존 더글러스나 로버트 레슬러와 같은 요원들이 강력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에겐

어떤 공통점이나 요인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을 토대로

행동과학이라는 근거 아래 범죄자들의 범행동기를 밝히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수사와 연구는 별개의 문제였기에 제대로 체계가 잡히지 않는 상황이었던 것이죠.

전문가인 앤 버지스는 FBI의 방대수사자료를 통해 범죄자 성격 연구를 체계화하고

프로파일링 기법을 개발하여 현대 범죄수사의 기틀을 마련한 셈입니다.




사실 프로파일링이라고 하면 왠지 탐정소설의 '제인 마플'이나 '셜록 홈즈'를 떠올리게 됩니다. 

미스 마플는 안락 의자에 뜨개질을 하면서 사건의 개요만 듣고도 범인을 찾아내고

셜록 홈즈는 뛰어난 관찰력을 통해 상대방이나 상황에 대해 추리해내는 능력이 있으니까요.

어찌보면 프로파일링도 그와 비슷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앤 버지스는 프로파일링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프로파일링으로 범인이 정확히 누구인지를 짚을 수는 없지만,

입수 가능한 모든 증거를 종합해서 나이, 인종, 신체적 특징, 직업,

교육 수준, 취미, 그 밖에도 떠올려 볼 수 있는 모든 특징으로

범인이 어떤 인물일지 깊이 있고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은 가능하다.

<2장 방공호> 中에서


[살인자와 프로파일러]은 회고록이지만 마치 범죄소설을 읽는 듯 흥미진진합니다.

실제 사건을 토대로 프로파일링 기법이 현대화되어 과정에서 발생하는 FBI 내부의 갈등과

미궁에 빠졌던 사건의 극적인 해결로서 프로파일링이 인정받는 일련의 변화를 그리기 때문입니다.

책을 통해 범죄자들이 저지른 끔찍하고 잔혹한 사건을 막기 위한 수사관들의 노력과

범죄 피해자들이 겪은 지워지지 않는 상처와 고통을 읽으며 인간이 인간을 해치려는 그 마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생겨나게 되었는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일어난 악명높은 살인사건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책의 첫 페이지에는

'트라우마 경고'의 글이 게재되어 있으니 책을 읽기 전 참고바랍니다.


연쇄살인범을 연구한 수십 년 동안 내게 이것은 고양이와 쥐 게임 같은 게 아니었고

이들이 엔터테인먼트로서 흥미롭다고 생각해서 한 일도 아니었다.

그들의 고통에 공감했기 때문이거나 그들을 갱생하려는 목적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내게 이 일의 목적은 언제나 피해자였다. (중략)

중요한 사람은 피해자다.

이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인 만큼이나 피해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17장 내면의 괴물> 中에서


'굳이 꼭 범죄자의 심리를 알아야할 필요가 있을까? 알아서 뭐하게?'

범죄학과 관련한 책을 읽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범죄자를 가까이에서 접하고 겪은 사람들(수사관, 교도관 등등)은 말합니다.

그들의 심리를 알지 못하면 또 같은 범행에 당할 수 밖에 없다고요.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기 위해 범죄자의 심리를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범죄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범죄심리를 파악하여

수사의 기틀을 다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앤 버지스 박사가 고령의 연세에도 여전히 범죄의 피해자들을 위해 법정에 출두하여

전문가 증언을 제공하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FBI 프로파일링 기법의 설계자가 쓴 인간 심연에 대한 보고서

[살인자와 프로파일러]를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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