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장의사의 일기
아오키 신몬 지음, 조양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은 상조회사와 장례식장, 장례지도사가 따로 존재하고 있습니다만,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가정집에서 장례 예식을 치르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장의사'라는 점포가

따로 운영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알고 있냐면 어릴 적 살던 동네에서 오촌 이모부가 장의사를 운영했기 때문이죠.

가끔 어른들의 심부름으로 그 가게에 가게 되면 왠지 문을 열기까지 꺼림칙하고

열고 나서도 조금 무서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방이 온통 관이거나 상주들이 입는 삼베옷, 수의, 새끼줄 뭉치로 가득했거든요.

특히 제일 무서운 건 저승사자만큼이나 창백한 얼굴의 이모부였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어느 장의사의 일기]를 읽다 보니 갑자기 그때의 가게 전경이 떠올랐습니다.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동네 어르신들이 장의사도 의사라며 농담을 던지곤 했었지요.

돌이켜보니 가족의 죽음에 경황이 없을 유족들을 도와 빈소를 마련하고 장례 일정을 진행하며

시신을 깨끗히 염습하여 마지막을 곱게 마무리 지어주는 장의사란 직업이 참으로

뜻 깊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직업은 납관부納棺夫입니다.

죽은 사람의 몸을 깨끗하게 씻기고 작별의 화장을 한 다음 수의를 입혀 관에 넣는 일을 합니다.

일본에서는 납관이라는 용어를 쓰는데 한국에서는 입관入棺을 더 많이 쓰고 있지요.

소설 속 주인공처럼 저자인 아오키 신몬 작가 역시 1970년대에 납관부로 일하며 오랫동안

관혼상제회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고 합니다.


죽음을 터부시하는 사회 통념을 운운하면서,

자신도 그 사회 통념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사회 통념을 바꾸고 싶다면 자신의 마음부터 바꾸어야 할 것이다.

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뀐다.

<제1장 진눈깨비의 계절> 中에서


주인공은 장의사라는 직업을 미천하게 보는 사람들을 향해 정중한 태도와 진지한 모습으로

전문가로서의 당당한 면모를 보이며 고리타분한 납관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으로부터 직업에 대한 이해를 구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죠.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하기 어렵고 더럽고 힘든 일을 타인에게 맡기면서도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을 폄하하거나 색안경 끼고 바라보며 살고 있지는 않나요?

어느 글에서 읽은, 길거리를 청소하는 청소부의 대답이 그런 저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합니다.

"저는 지금 지구의 한 귀퉁이를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 가끔 도로를 달리는 분뇨수거차를 보면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사실 이 작품을 읽어나가다 보면 이 책의 정체가 조금 궁금해집니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작가의 수필 혹은 제목 그래도 '일기'라고도 보여지거든요.

장례식이나 장례에 얽힌 에피소드보다는 삶과 죽음에 대한 작가의 철학적 종교적 고찰을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후반부에 수록된 작가의 후기와도 같은 부분이 소설처럼 느껴졌어요.


살아 있는 동안 어떤 식의 악과 선을 행했는지 모르나,

그런 것은 그다지 관계가 없는 듯하다.

신앙이 깊은지 아닌지, 종교가 무엇이었는지,

종교 자체에 관심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런 것과는 아무 관계없이

시신의 얼굴이 편안한 표정을 짓는 것으로 여겨짐을 어쩔 수 없었다.

<어느 장의사의 일기> 中에서


저는 아직까지 아주 가깝다고 할만한 이의 죽음을 겪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 조모님의 장례식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당신께서 평생을 사신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시고 상여꾼들이 상여를 메고

뒷산에 자리한 선산으로 가는 먼 길의 첫 여정을 보면서

'아, 이제 이 시골집은 더 이상 할머니집이라고 부를 수가 없구나!'라는 생각에

쓸쓸해했던 마음이 문득 떠오릅니다.

이 책은 일본에서 제작된 영화 <굿바이>의 원작 소설이기도 하니 책을 읽고

영화도 함께 감상해보면 좋을 듯 하네요.

저도 오래전 이 영화를 보았는데 감동했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삶의 여정을 끝낸 시신과 마주하는 장의사가 남긴 기록 [어느 장의사의 일기]를 읽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