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 유품정리
가키야 미우 지음, 강성욱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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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을 처음 봤을 때 온통 상자로 가득했습니다.

방마다 벽에 잔뜩 쌓아둔 상자들이 마치 또 하나의 벽처럼 보였지요.

집주인은 집이 좁아져 이사간다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상자만 버려도 충분히 넓어질 텐데요' 라고 생각했죠.

주인이 이사가고 나서야 벽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햇볕 한 줌 받지 못해서 마치 새로 도배한 듯 깨끗하고 선명했습니다.


[시어머니 유품정리]를 읽는 동안 그 집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집이지요.

나중에 집주인 잠시 잘못 배달된 택배를 찾으러 자신의 옛 집에 들렀을 때

'이 집이 이렇게 넓었구나!'하며 깜짝 놀라워하던 일도 기억나네요.

이 작품의 작가 카키야 미우는 [70세 사망법안, 가결], [결혼 상대는 추첨으로] 등

현대사회 문제를 풍자한 소설을 선보이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실제로 꽤 심각해 보이는 노인 문제나 청년 실업 문제를 재치 있게 풀어내었기에

읽은 이로 하여금 따스한 미소와 유쾌한 시선을 잃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습니다.

[시어머니 유품정리]는 갑작스러운 시어머니의 죽음으로 남겨진 유품 정리를 맡은

며느리 모토코가 맞닥뜨리게 된 엄청난 살림살이와 세간들로 인해 위기에 빠지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쉰을 훌쩍 넘겨 손자까지 있는 모토코는 여전히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남편과 함께

가계를 꾸려가는 형편이기에 유품 정리를 대행해주는 회사에 의뢰할 비용이 걱정되어

틈틈이 시어머니의 집을 정리하기로 하는데 시어머니는 마치 그런 모토코를 곯려주기라도 하듯

집안 곳곳에 틈을 두지 않고 물건으로 가득 채워 놓았던 것이죠.

모토코는 그런 시어머니를 책상 위에 반지 하나만 남겨두고 돌아가신 친정 어머니와 비교하며

원망과 불평을 잔뜩 담은 채 끝이 없어 보이는 유품 정리에 들어갑니다.

물론 그 많은 유품을 정리하며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시어머니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게 되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머니, 당신은 너무 대단했습니다.

자제력이 너무 강하셨어요.

어머니의 진심은 무엇이었나요?

어머니는 행복하셨나요?

고양이라도 키웠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시어머니 유품정리> 中에서


2006년 이미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여 노인이 노인을 돌보며 인구 감소가 진행되고 있는

일본에서는 시골 마을의 공동화 현상이 심각한 상태라고 합니다.

시골의 담장 인심은 어느새 사라지고 현관문이 닫히면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독립된 주거 공간에 머물게 되는 도시의 각박한 세태를 보여줌으로써

작가는 자그마한 공동체의 연대를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토코가 혼자 시작했던 유품 정리는 어느새 남편이 돕고 이웃이 참여하며

단지내 사람들이 나서주면서 끝나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 모든 일의 출발은 물건을 버릴 줄은 모르지만 이웃에게 손 내밀어줄 줄은 알았던

시어머니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모토코는 그렇게 친정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남긴 또 다른 유산을 얻게 된 셈이네요.


저도 최근 한동안 손 놓았던 집안의 이곳저곳을 살피며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분명 그때그때 정리하고 처분했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벽장과 붙박이장 곳곳에 무얼 그리도 채워놓고 살았던지요.

손댄 김에 쓰지 않던 물건들과 필요 없는 물품들을 중고로 처분하거나 분리 배출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쌓아두지 않으려고 노력하지요.

책을 읽는 동안 갑작스러운 죽음 뒤에 남겨진 것을 통해 나라는 사람이 추억된다면

저는 무엇을 남겨놓아야 할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떠난 뒤 남은 자리가 아름답게 기억되고 싶네요.

누구나 직면하는 '인생의 뒷정리'를 유쾌하게 그린 [시어머니 유품정리]를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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