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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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읽기 전 고민했습니다.

아무리 같은 동양권이지만 중국과 한국은 문화와 생활상이 서로 다른데다 당시만 해도

제가 중국에 대해 그다지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죠.

일단 읽어보라는 지인의 권유에 첫 페이지를 펼친 순간 그 다음은 정신 없이 읽어 내려갔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습니다.

아무리 그들과 우리의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자식을 향한 부모의 정이 다를 리 없으며

동서고금 자식을 위한 마음은 무겁고 가벼움이 없으니까요.


[원청]은 위화 작가가 8년 만에 출간한 신작입니다.

23년간 위화 작가가 벼르고 별러 출간한 이 작품 속에도 한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린샹푸, 젖먹이인 딸을 끌어안고 어디에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는 도시 '원청'을 찾아

먼 길을 떠나는 것이 이 소설의 시작입니다.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그의 앞에 나타난 의문의 남매 아창과 샤오메이로 인해

그의 삶은 흔들리기 시작하고 결국 고향 땅을 떠나게 되는 것이죠.

사라진 남매를 찾아, 아이의 엄마인 샤오메이를 찾아, 그리고 미지의 도시 원청을 찾아.


삶이란 그런 것 같습니다.

순탄하기만 하다면 좋겠지만 그래서는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으니까요.

요즘 읽고 있는 나관중의 <삼국지>만 보아도 그렇죠.

이름도 없이 등장하는 그 수많은 병사들 중 어느 누구 하나 사연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전란이 한창인 중에도 민초들은 밭을 일구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기릅니다.

전쟁통에 휩쓸려 모든 것이 다 사라져도 굳세게 다시 일어나 삶을 일구어 나갑니다.

세상의 역사는 몇 몇의 유명 정치인들이나 위인, 제왕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런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과 삶이 부딪히고 엮여서 만들어지는 건 아닐까요?


[원청]의 책 속 주인공 린샹푸도 그러했습니다.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를 도시를 찾기 위해 끊임 없이 방황하고 수없이 고난을 겪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인연을 맺고 연대하며 결국에는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얽힌 소설을 읽다 보면 한낱 지나가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이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저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자꾸만 궁금해지곤 합니다.


지금의 중국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중국 또한 우리의 근대사와 마찬가지로

격동의 시기를 거쳤고 극심한 전쟁을 겪으며 야만의 시대를 살았고 변화의 물결을 탔습니다.

책의 후반에 이르기까지 차지하는 1부의 내용은 린샹푸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입니다.

중반부에 접어들 무렵부터 등장하는 토비들의 잔혹한 만행으로 인해 너무 괴로운 나머지

'여기서 그만 덮을까', 잠깐 고민도 했습니다만 그래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서로를 지키기 위한 사람들의 마음과 힘을 합친 연대와 용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디 그런 참상이 일어나는 부분을 읽을 때는 너무 괴로워하지 않으시길요.


천야오우가 말했다.

"왜 굳이 묶어요? 잔인무도한 토비니 둘 다 죽여요."

천융량이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안 돼. 우리는 사람을 죽이려는 게 아니라 구하려는 거야."

-p333


2부격에 해당하는 '또 하나의 이야기'는 아창과 샤오메이의 숨겨진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들의 이야기까지가 '원청'이라는 커다란 물줄기를 이루게 되는 것이죠.

역시 위화의 작품이 가진 흡입력이 대단하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그래도 상처란 언젠가 아물고 슬픔도 지나가기 마련이었다.

샤오메이는 딸의 옷과 신발, 모자를 완성한 뒤 옷장 제일 밑에 깔고

그 위에 자신과 아창의 옷을 차곡차곡 올려놓아 보이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나서 옷장 문을 닫자 작별을 고하는 느낌이 들었다.

과거를 봉인하는 것 같았다.

한때 린샹푸와 두 번의 시간을 보냈고 한때 딸이 있었지만,

그건 모두 한때의 일로 다 지나가 버렸다.

-p543


한 남자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었던 '원청'은 과연 어디였을까요?

왜 그는 안온한 삶을 뒤로 하고 원청을 찾아나서야 했을까요?

현재의 우리도 잃어버린 도시 원청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마도 제가 읽은 이야기의 끝과 당신이 읽은 이야기의 끝은 결코 같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직 시작도 시작되지 않은 이야기, 그리고 끝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담은

잃어버린 도시 [원청]을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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