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견디는 기쁨 - 힘든 시절에 벗에게 보내는 편지
헤르만 헤세 지음, 유혜자 옮김 / 문예춘추사 / 202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서둘러 바삐 지나간 아침을 뒤로하고 정오가 오기까지는 아직 남은 시간.

아끼는 찻잔에 향긋한 커피를 담아 가장 경치가 좋은 베란다의 창 너머 풍경을 바라봅니다.

코 앞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재잘대는 소리가 공기를 타고 울려 퍼지며

이내 평온하게 하루를 시작했다는 마음에 한껏 느긋해집니다.

커피 한 모금에 책 한 페이지를 마시며 오늘의 기쁨을 찾아 나섭니다.


[삶을 견디는 기쁨]은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가 쓴 에세이의 제목입니다.

삶이란 어찌나 굴곡져 있는지 대문호마저도 견딜 수 밖에 없다고 말하면서도

헤세는 그마저도 기쁨이라 노래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의 삶이 작품에서 이룬 눈부신 성공과는 달리 순탄치 않았기 때문일테지요.

하지만 그러한 인생 여정을 견디며 걸어왔기에 그는 기쁨을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적당한 쾌락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삶이 주는 맛을 이중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과 더불어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기쁨을 간과하지 말라는 조언도 꼭 하고 싶다.

결국 내 말의 핵심은 '절제'이다.

<영혼이 건네는 목소리_작은 기쁨> 中에서


헤르만 헤세는 60년 전 세상을 떠났지만 마치 오늘날의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 같습니다.

그의 문장들은 마치 바이러스로 인해 지쳐가는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고

앞만 보고 달려가기에 바빠 쉴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잠깐 휴식을 제공해주는 느낌이니까요.

책을 읽는 내내 알알이 빛나는 문장에서 위로를 받게 됩니다.

어느 페이지를 펼치더라도 그가 빚어 놓은 글귀들에 머물게 되고 녹아들게 되네요.


이 세상의 그 어떤 힘도 나로 하여금 죽음에 대한 공포로 떨고 있는 자신을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게 해 주며, 새롭게 시작하고자 다시 한 번 마음을 먹고

일어서려고 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을 것이다.

목표는 평화와 안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새롭게 파멸시키는 것이고,

늘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었다.

<조건 없는 행복_언제나 새로운 자기 자신 가꾸기> 中에서


이 대목을 읽으면서 저는 문득 그의 작품 [데미안]을 떠올렸습니다.

그 유명한 구절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말이죠.

자기 자신을 파멸시켜야만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다는 그 말이 성경 구절로도 이어집니다.

'한 알의 밀알'

밀의 씨앗이 새싹을 터트리려면 결국 땅에 묻혀 썩어야 한다는 말처럼

타성에 젖은 우리의 모습 그대로는 결코 새로워질 수 없다는 걸 깨닫습니다.




마치 구도자가 마침내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그의 글은 지혜로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바닥을 쳐본 사람만이 하늘을 올려다볼 줄 아는 사람처럼 그의 글과 그림에서

단단해진 삶을 엿볼 수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사유는 찰나적인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곱씹어 되새겨야 합니다.

동화와 시, 편지, 수필 등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결국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즉 이 시대,

거짓과 물질적인 탐욕, 광신, 야비함이 난무하는 이 분위기가

나를 죽이지 않은 것은 다행스럽게도 두 가지 이유 덕분이다.

한 가지는 내가 내면에 지니고 있는 천성이라는 위대한 유산이고,

또 한 가지는 그래도 생산적인 삶을 내게 부여해 주는 상황이다.

그런 것이 없다면 나는 살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그 때문에 내 삶은 종종 지옥이 되곤 한다.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_아름다운 삶의 비결> 中에서


불현듯 저 자신에게 묻습니다.

'내가 살아있는 이유, 살아갈 이유는 어떤 것이 있을까?'

지금까지 저에게 닥친 고난과 역경에 맞섰던 무기는 무엇이었던가 깊이 숙고해봅니다.

저 또한 천성이었던 같기도 하고, 하루도 쉼 없이 책을 읽은 덕분이었다는 마음도 듭니다.

하늘이 무너질 듯한 비통보다는 자잘한 슬픔들이 삶의 곳곳에 배어있었고

세상을 다가진 듯한 환희보다는 소소한 기쁨들로 삶을 채우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이 책을 통해 또 하나 기쁨을 얻게 되었네요.

헤르만 헤세가 힘든 시절에 보내온 편지 [삶을 견디는 기쁨]을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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