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카즈무후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2
마샤두 지 아시스 지음, 임소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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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생각에 견고해져 가는 걸 느낍니다.

사실 '견고'라는 단어를 썼지만 아마도 '아집'에 가깝다고 봐야겠지요.

더 이상 타인의 의견이 의견이 아닌 참견으로 들리게 될 때

나의 주장이 점점 강해지며 모든 상황에서 유연한 사고보다 의심의 눈으로 보게 될 때

저는 바로 그때가 '젊음'의 끝이라고 생각될 것 같습니다.


[동 카즈무후]라는 소설을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읽은 소설은 앞서 말한 바로 그 '의심'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질투가 의심을 만났을 때 벌어질 법한 한 남자의 눈 먼 사랑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작품을 쓴 작가는 1800년대 브라질 태생의 마샤두 지 아시스입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선천적 말더듬증과 간질병을 앓으며 젊은 시절을 힘들게 살았지만

그런 중에도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하여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사후에도 브라질 대문호로 자리매김한 마샤두 지 아시스의 대표작이기도 합니다.


동 카즈무후는 '무뚝뚝 경'이란 뜻으로 남자 주인공 '벤치뉴'의 별명이기도 합니다.

벤치뉴는 어릴 적 어머니의 뜻에 따라 사제가 될 뻔했으나 신학교에서 만난 단짝친구 '에스코바르'의

도움으로 법조인이 되었으며 이웃의 소꿉친구였던 '카피투'와 사랑의 결실을 맺어 아들을 얻게 됩니다.

벤치뉴의 인생이 최고조에 이를 무렵 친구 에스코바르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에게 시련이 닥쳐옵니다.

점점 친구를 닮아가는 아들을 보면 죽은 친구를 질투하며 자신의 아내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죠.


작품을 읽는 동안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가 떠올랐습니다.

오셀로는 부하의 계략에 빠져 질투심에 아내를 의심하다가 아내를 죽이고 결국 자신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내용으로

벤치뉴가 한창 자신의 아들에 대한 의심이 극에 달할 무렵 관람했던 연극이기도 합니다.

질투라는 감정이 인간에게 미쳤을 때 가장 최악으로 치달을 수도 있음을 알려주는 작품이지요.

하지만 저는 왠지 친구를 닮아가는 아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벤치뉴를 보면서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가 떠올랐습니다.

사실 그 작품의 결론은 [동 카즈무후]와는 정반대이긴 하지만요.


소설은 시종 주인공 벤치뉴의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도, 사건의 정황도 모두 중년이 된 벤치뉴가 과거를 회상하며 더듬어 갑니다.

그의 눈이 바라보았고 그의 기억이 재구성한 이야기를 따라가는 우리로서는 진실을 알 수 없으며

다만 그 기억 속의 숨겨진 단서를 건져내어 답을 찾아가는 수 밖에 없는 셈이죠. 


오래전 칠레 출신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작품을 비롯하여 남미 출신의 작가가 쓴 작품을 읽는 것은

꽤 오랜만의 일인데다 브라질 작가의 작품은 파울로 코엘료가 거의 유일하다 보니

라틴아메리카 작품들은 대부분 환상적 리얼리즘에서 벗어나지 않았을 거라 짐작했습니다.

하지만 [동 카즈무후]를 읽으면서 소설의 내용이 굉장히 사실적이며 비록 1800년대이기는 하지만

남미인들의 생활상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어서 참 좋았습니다.

확실히 어떤 면에서 [동 카즈무후]가 가진 작품성이 다른 작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줄 만큼의

재미와 매력을 지니고 있어서 다양한 콘텐츠로 재탄생할 만한 요소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피투가 저 너머 바다로부터 밀려오는 파도처럼,

집어삼킬 듯한 큰 눈으로 눈물도 말도 없이

망자의 모습을 응시하던 그 순간,

망자의 아내만큼이나 그녀도 그날 아침에 수영하던 이가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제123장 파도를 닮은 눈> 中에서


질투가 토해낸 의심으로 황폐해져 버린 한 남자의 고백이 담긴 [동 카즈무후]를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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