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여행입니다 - 나를 일으켜 세워준 예술가들의 숨결과 하나 된 여정
유지안 지음 / 라온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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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후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마음이 답답할 때나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새로운 변화를 다짐하기 위해 떠났던 여행길.

언제든 떠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해외여행은 더욱 멀어졌네요.

기회란 그런 것입니다.

붙잡을 수 있을 때 붙잡아야 하는 것, 지나치는 순간 쏜살같이 사라져버리는 것.

하지만 우리는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겠지요?


[오늘이 여행입니다]는 상실과 위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저자인 유지안 작가는 투병 중이던 사랑하는 남편과 아버지를 3일 간격으로 잃었습니다.

예견된 이별이므로 잘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저자는 1년 뒤 큰 수술을 받아야 할만큼

상실의 고통에 힘겨워했습니다.

그리고 홀연히 떠난 오스트리아 여행에서 생의 의지에 작은 불씨를 지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기나긴 이별을 충분히 애도하는 여정에 대한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내가 모딜리아니의 영혼을 찾아와 교감을 나누듯

남편의 영혼도 늘 나와 교감을 하고 있었음을 생각하며

이곳에 남편의 숨결 한 자락 내려놓는다.

억지로 잊기 위해 고통스러웠던 순간들,

아들이 주문한 것처럼 내 심장이 시키는 대로 하리라.

때때로 휘몰아치는 격정은 내가 만나는

예술가들의 영혼 앞에서 조금씩 소멸되어가고 있었다.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가진 뒤 허허로운 내 안을

조금씩 채우게 될 희망 앞에서 가슴이 뛴다.

<1장 자유롭게 떠나다> 中에서


그녀의 발자취를 함께 따라가다 보면 설레어 하는 작가만큼이나 가슴이 뜁니다.

아마도 오랫동안 떠나보지 못한 자유로운 여행에 대한 동경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은 예술가들의 흔적을 찾아 세상 이곳저곳을 누비는

작가의 여정이 마냥 부럽기도 합니다.

또한 그녀의 열정에도 깊이 감탄하게 됩니다.

늦은 나이지만 배움을 향해 잊고 있던 꿈을 향해 다시금 걸음을 내딛는 용기가 있었기에

상실의 아픔을 극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900일간의 시간, 31개의 나라, 160개의 도시.

그녀가 팬데믹 직전까지 여행한 흔적들입니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33인의 예술가들의 생가와 거리, 작업실을 돌아다니며 찾아낸

그들의 인생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저는 캐나다 여행 중 만난 <빨간머리 앤>의 녹색 박공집이 참 반가웠습니다.

앤 셜리가 명명한 '기쁨의 하얀 길'과 '반짝이는 호수' 그리고 길버트와 함께 산책하던 숲길이

실제한다는 캐번디시로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소망까지 생기고 말았어요.



자유, 치유, 긍정, 용기, 현재와 미래로 나눠진 각 장마다 희망으로 꽉꽉 채워진 느낌입니다.

어느 곳에서는 남편을 떠올리기도 하고 어느 그림 앞에서 아버지를 추억하기도 하면서

저자는 조금씩 아픔을 치유하고 새로운 내일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나의 실수를 감싸주시던 아버지는 '돌아온 탕자' 속 아버지 모습이었다.

오히려 자식에게 다 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서러워하며 커다란 손으로

당신의 얼굴을 감싸며 우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나는 지금 저 탕자처럼 긴 방황의 시간을 돌아 내 아버지 앞에 섰다.

가슴에 품고 등을 토닥여주는 아버지가 느껴져 아늑했다.

"막내야! 넌 지금 잘하고 있는 거야."

늘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주시던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는 듯 했다.

<2장 위로하고 치유하다> 中에서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적 없는 여행은 그저 방황일 뿐이지요.

여행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요?

저는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여행은 끝이 아니라 변화를 향한 새로운 시작이란 뜻이죠.

시인 예이츠가 작가에게 건넨 선물 같은 속삭임처럼요.

'자연과 더불어 혼자 살아낼 노년의 삶을 두려워 말라'

예술을 느끼며 자유롭게 떠나는 삶의 안내서 [오늘이 여행입니다]를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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