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중고상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놀 / 2022년 4월
평점 :
품절


"저 당근이신가요?"

길거리에 서성이고 계시는 분께 다가가 조용히 여쭙습니다.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면 옳다구나, 싶지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뭔 소리냐, 싶은 사람이라면

어마, 뜨거라 하며 얼른 자리를 피하고 맙니다.

비대면 시대임에도 대면으로 중고품을 거래하는 아이러니라니.

하지만 의외로 제가 찾던 물건이 바로 가까이에 있었다는 사실은 참 반갑기도 했지요.

버릴까 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중고시장에 내놓았는데 마침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서

잘 사용하시라고 넘겨줄 때는 마치 지구를 구하는 일에 일조한 듯 뿌듯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여기 [수상한 중고상점]이 있습니다.

중고제품을 비싸게 매입해서 아주 싸게 넘겨준다니 아주 수상한 중고상점이네요.

사실 저에게는 하찮아 보이는 물건이라도 누군가는 애타게 찾는 소중한 물건일 수 있습니다.

혹은 나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지만 누군가에는 귀한 쓸모가 있는 물건일 수도 있지요.

예전에 공산품이 귀한 시절에는 물건을 아껴 쓰거나 나눠 쓰고 바꿔 쓰며 닳고 닳을 때까지

순환시켜 사용했지만 요즘처럼 재화가 넘쳐 나는 시절, 누가 중고를 구할까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경쟁이 치열한 곳이 바로 중고품 거래시장이기도 합니다.




[수상한 중고상점]의 작가 미치오 슈스케는 2011년 [달과 게]로 나오키상을 수상하는 등

일본 문학상의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필력의 작가입니다.

이 책은 나오키상을 수상한 해에 쓴 작품으로 원제는 '가사사기 네의 사계'이며

같은 해에 한국에서도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으로 이미 출간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책은 일본의 제목대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로 나뉘며 총 4가지의 에피소드로 진행됩니다.

소설의 주요인물인 가사사기는 엉뚱하면서도 오지랖이 넓은, 어딘가 엉성한 중고상점의 점장,

그의 동료 히구라시는 변변치 못한 수완이지만 가사사기의 엉성함을 노련하게 메꾸는 부점장,

그리고 왠지 모르겠지만 가사사기를 추종하는 조숙한 여중생 나미가 있습니다.

거기에 수상한 중고물건들이 등장하면서 그 물건을 둘러싼 숨겨진 사연과 밝혀진 진실,

그 과정에서 나누게 되는 위로와 눈물이 가슴 한구석을 따스하게 지펴주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지요.



11년 전에 이 책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떠오르게 한다지만

사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이듬해인 2012년에 출간된 작품입니다.

읽다보면 책의 전개나 구조가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내용이다 싶고

최근 등장하는 힐링소설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11년 전에 출간된 작품임을 감안한다면

요즘 시대에도 뒤떨어지지 않는 매력을 지닌 소설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작가도 '어디선가 이런 녀석들을 만나고 싶다'라며 작심하고 쓴 소설이라니

작품 속 주인공들의 잔잔하지만 유쾌한 소동을 더욱 재밌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인간은 매일매일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하고,

여러 가지를 동경하며 구부러지는 법입니다.

누구든지 그래요.

그렇게 흐르는 동안은 어디에 다다를지 모르죠.

제 생각에 구부러진다는 건 중요한 일이에요.

<여름, 쓰르라미가 우는 강> 中에서


혹시 아직 쓸모가 남아있는 중고 물건이 있나요?

어딘가 수상하지만 기꺼이 환영받는 [수상한 중고상점]을 읽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