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살았던 날들 -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
델핀 오르빌뢰르 지음, 김두리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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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이어가는 사람으로서 사는 동안 죽음을 한번도 떠올리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는 직접 혹은 간접으로 누군가의 죽음을 겪게 되지요.

그런 날이면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사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천수를 누리고 잠을 자듯 죽는 것을 호상이라고들 하지만

아무리 복을 누리고 죽는다 해도 누군들 삶에 집착을 그리 쉽게 놓을 수 있을까요?


[당신이 살았던 날들]은 제목에서도 보듯 죽음 이전의 것들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숨이 멎기 직전까지는 살아있음을, 죽음의 사신이 낫으로 명줄을 끊어내기 직전까지는 살아있음을

떠오르게 하는 제목입니다.

저자는 우리에게는 조금 생경한 직업을 가진 사람입니다.

바로 유대교에서 '선생'을 뜻하는 '랍비'입니다.

특이하게도 예루살렘에서 의학을 전공했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근원적 종교에 의문을 품게 되었고

뉴욕에서 탈무드를 연구한 끝에 '랍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랍비라고 한다면 수염이 덥수룩하고 머리에 키파를 얹은 검은 외투의 할아버지를 떠올리곤 했는데

이분은 여성랍비시네요. (역시 편견은 얼른 멀리 치워버려야하나 봅니다.)


해가 갈수록 내 직업과 가장 엄밀하게 가까운 직업명이 따로 있는 것 같다.

바로 이야기꾼이라는 이름이다.

천 번을 되풀이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그 이야기를 처음 듣는 사람에게

새로운 실마리를 건넴으로써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것,

이게 나의 소임이다.

나는 사람들이 삶의 전환점에서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 그들 곁에 있다.

<아즈라엘:손안의 생명과 죽음> 中에서


저자는 랍비로서 죽은 이를 애도하는 사람들의 곁에 함께 하였고 그때의 경험을 글에 담았습니다.

유대인으로 그의 선조들이 겪었을 홀로코스트와 국경분쟁국가로서 수시로 벌어지는 테러사건,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전지구적 팬데믹 사태 속에 일어나는 죽음들을 기억하며 기록하고 있지요.

하지만 죽음을 다루는 글이라고 해서 마냥 암울하거나 무겁지만은 않습니다.

죽음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아서도 안되겠지만 감춰야 할 치부도 아니니까요.

그저 죽음이 일어났을 때 떠나는 자와 남은 자들에게 동시에 일어나는 상황들을 차분히 살펴보며

그것을 간결하면서도 깊이 생각하도록 만드는 문장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어에는 대부분의 언어처럼, 자식을 잃은 어머니나 아버지를 지칭하는 단어가 없다.

우리는 부모를 여의면 고아가 되고, 배우자를 잃으면 과부나 홀아비가 된다.

그렇다면 자식을 잃었을 때 우리는 뭐가 될까?

마치 명명하지 않으면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 것 같고,

그 미신을 따라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단단히 입단속을 하는 것만 같다.

<이사악의 형:질문에 빠지다> 中에서


이 문장을 읽으며 한국어에도 그런 단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식을 여읜 부모를 지칭하는 단어라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프네요.

하지만 저자의 말에 따르면 히브리어에는 '사쿨 Shakoul'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번역이 거의 불가능한 표현이라고 합니다.

이 단어의 자세한 뜻은 책을 통해 살펴보길 바랍니다.

책을 쓴 저자의 직업이 랍비이다보니 모든 글 속에 성서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늘 성경을 가까이하는 저로서는 이 책을 만난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챕터들의 소제목들에 적힌 이름들도 성서 속 등장인물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히브리어로 묘지는 '베트 아하힘 Beit hah'ayim' 즉 '살아 있는 자들의 집'이라고 불린다지요.

언뜻 모순된 이름같지만 왠지 제게는 '살아 있었던 자들의 집'이라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지금은 한 줌의 흙이 된 그들도 숨이 멎기 전까지는 살아있는 자들이었으니까요.


어찌된 셈인지 최근 죽음과 관련한 서적을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

불치병을 앓는 환자 혹은 그를 치료하는 의사가 쓴 수필에서부터

망자의 마지막 가는 길을 수습해주는 장례지도사,

고독사의 현장을 뒤처리하는 특수청소부 등 죽음을 다루는 이야기를 수집하듯 모으고 읽고 있어요.

그건 마치 죽음에 이끌리기보다 언젠가는 저에게도 닥쳐올 '죽음'을 늘 잊지 않기 위함이라고 할까요?

거대한 상실의 시간을 건너는 이들에게 삶이 보내는 위로가 담긴 [당신이 살았던 날들]을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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