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 큐레이터 - 박물관으로 출근합니다
정명희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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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가 낀 조악한 전시물, 낡고 허름한 내부, 어두컴컴한 조명...

제가 기억하고 있는 박물관입니다.

도대체 여기는 관리하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건지 입장료는 받아서 어디에다 쓰는 건지

두 번은 못 오겠다며 수박 겉핥기하듯 훑어보며 서둘러 출구를 찾아 나서죠.

박물관은 낡고 오래된 것들을 모아 놓아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어요.

박물관은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인지 그곳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한번쯤, 큐레이터]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근무하는 학예사가 쓴 에세이입니다.

학예사란 학예연구사, 전시기획자 또는 큐레이터로 박물관, 미술관 등에서 작품 등을

수집, 전시 기획하는 전문 직업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런 직업이 있다는 걸 저는 이제사 알게 되었다니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한때 고고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맨날 삽질만 파고 무슨 밥벌이가 되겠냐는 어른들의 만류가 있었거든요.

지금 보니 학예사를 통해 박물관에 근무할 수 있는 길도 있었네요.




저자는 국립중앙박물관의 19년차 큐레이터입니다.

보통 큐레이터는 미술관의 전시 기획을 하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박물관 역시 따지고 보면

예술품을 모아 놓고 전시회를 여는 곳이니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있어야 하는군요.

이 책은 저자가 근무하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박물관과 유물, 전시 그리고 그 안과 밖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지요.


어떤 전시 주제를 맡든지 간에 큐레이터에게 '연결'은 중요한 관심사다.

어찌 보면 공부하는 이유뿐 아니라 살아가는 이유도 자신만의 관점을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 같다.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도 비슷하다.

위대한 예술은 매번 새롭게 태어난다. 

유물 앞에 오래 서 있는 이들이 무엇을 경험할지는 단정할 수 없다.

<시간 여행자를 위한 큐레이팅> 中에서


박물관 큐레이터가 하는 일은 무척 다양하다는 것 또한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유물을 분류하고 기록하고 관리하고 전시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마무리하며

유적 발굴 현장을 방문하고 연구에 매진하기도 하지만 역시 가장 많은 활동은

컴퓨터 앞에 앉아 글쓰기인 것 같습니다.

시간이 멈춘듯한 박물관이지만 이렇게나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곳인 줄 몰랐네요.


쇼핑 앱에 채워진 장바구니처럼, 당장 구입하지는 않지만

조사 노트가 쌓여갈수록 큐레이터로서의 내 보물도 든든해진다.

지금은 빛을 보지 못하지만, 어떤 우연한 기회에 이야기가 엮어질 기회가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맘껏 연구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지만, 퍼즐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

그 위치에 놓을 때의 짜릿함을 잊지 못해 그만두지 못하는 일이 하나둘 쌓여간다.

<큐레이터의 하루> 中에서



박물관 큐레이터라는 직업의 자부심이 엿보이네요.

두 아이의 엄마로서도 학예사로서도 소홀함 없이 꼼꼼하게 자신의 삶을 기록해나가는 그녀를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방에 사는지라 중앙박물관을 가본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제가 제일 부러운 사람은 도서관 옆에 사는 사람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또 한 사람은 늘었습니다.

바로 중앙박물관 옆에 사는 사람이죠.

만약 언젠가 박물관을 가게 된다면 이제는 꼼꼼히 살펴봐야겠습니다.

이 유물이 어떤 손길을 거쳤는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귀 기울여보고 싶습니다.

조금씩 시간을 들여 천천히 소요(逍遙)하듯 박물관을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선물로 받은 박물관 지도와 함께요~

오래된 유물의 박제된 시간을 벗겨내고 기록해가는 [한번쯤, 큐레이터]를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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