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 ‘정상’ 권력을 부수는 글쓰기에 대하여
이라영 지음 / 문예출판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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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이가 시리더니 이내 아파서 무섭지만 치과에 갔습니다.

치과의사는 여기저기를 톡톡 쳐보더니 별 이상이 없다고 날이 추우면 간혹 시리다고

잇몸이 부어있으니 칫솔질할 때 마사지를 해주라고 무심히 조언합니다.

저는 화가 났습니다.

"이가 아프다고요! 너무 아파서 하루종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지경이라고요!"

나의 아픔을 알아주는 이가 아무도 없어서 마냥 화가 났습니다.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를 읽었습니다.

이 독서에세이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기득권도 아니고 주류도 아닙니다.

이 세상의 반을 차지하고도 자신의 목소리를 낮춰야했던 여성들입니다.

세상을 향한 분노로 글을 쓰고 책을 펴낸 여성작가들입니다.

무엇이 그녀들을 분노하게 했는지는 알 것 같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소위 말하는 기득권의, 주류의, 조롱과 모멸의 아픔을 견디다 못해 화가 난 여성들의 이야기이자

여성임을 숨기고 남자의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했던 여성 그리고 사람입니다.

문득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떠오릅니다.

"나는 그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간단하게 그리고 평범하게 중얼거릴 뿐입니다"

이 독서에세이 속에 버지니아 울프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의 작가가 미국에서 거주하는 동안 이 에세이를 썼기 때문이죠.

하지만 21명이 모두가 여성은 아닙니다. 단 두명의 남성작가도 포함되어 있죠.

그들은 소수자로서 혹은 미국 문학사에 중요한 인물이라 거론하고 있습니다.

목차에 나오는 작가 누구라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녀 혹의 그의 이야기부터 먼저 만나도 좋습니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녀들이 분노에 의해 글을 썼다해도 그 글이

결코 증오심이나 타인을 공격하기 위해 쓰지 않았다는 걸 알수 있습니다.

오히려 보다 더 나은 세상, 보다 더 좋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 애썼다는 걸 깨닫죠.

유도라 웰티가 "글쓰기가 사랑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한 뜻을 조금은 알것 같습니다.

분노한다고 해서 부정의 감정을 담아 사회를 비판하듯 세상을 심판하듯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포용하는 마음으로 너그럽게 바라보라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분노야말로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분노를 표현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 가장 강한 것은 역시 글쓰기라고 생각됩니다.


이는 여전히 아픕니다.

하지만 이 아픔에는 뭔가 뜻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영양이 부족하다는 뜻이거나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내 몸을 좀 살펴라는 뜻으로도 느껴집니다.

아픔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낼 것이 아니라

이 아픔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살펴봐야할 것 같습니다.

혹시 알게 된다면 글로 남겨야겠네요.

저처럼 이유없이 이가 시리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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