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 부유한 기업가와 노동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계급투쟁이 토리노 만큼 길고 굵게 역사에 기입된 사례는 흔치 않다. '피아트'는 이탈리아의 거대한 자동자 생산기업이었다. 피아트의 창립자이자 경영자였던 아넬리는 미국의 '포드주의'를 표방한다. 피아트는 생산리듬을 가속화하고 생산을 증대하기 위해 가장 최근의 과학적 기술,표준화된 부품을 사용하고 컨베이어트 시스템을 도입하여 이탈리아에 처음 구축하였다. 그렇게 경제적 부흥과 기업의 성장은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의 강렬한 파업을 낳았다. 집회,시위가 더해져 항의는 도시 전체로 퍼져 나갔다. 토리노가 격렬한 노사갈등의 무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토리노는 반파시즘의 반대의 가치를 선명하게 내세운 도시이기도 했다. 고베티,그람시를 비롯한 반파시스트 지식인들의 요람이기도 했다. 토리노를 '고베티의 도시라고 부르는 것도 반파시스트의 자유주의 지식인들의 열망과, 고베티의 반파시즘의 갖는 강렬한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현재 토리노는 20세기의 격동적인 토리노가 아니다. 진정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 공허한 도시이다. 그렇기에 토리노는 여전히 짙고 모호한 자줏빛 안개 속에 있는 듯한 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