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나로는 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40대가 되고 보니 제대로 해낸 게 없는 것 같아
시시때때로 "나"를 부정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없었고, 돈이 없었고,
그래서 여유가 없었다는 말로
찝찝한 날들을 욱여넣고 뚜껑 덮든 덮어버린 시간,
'그래도 오늘의 할 일 목록은 살뜰하게 지웠으니
이만하면 괜찮은 거 아닌가?' 하며
후루룩 하루를 돌아본 적도 있었고,
언제 잠든 지도 모르게 하루가 끝나버린 날도 많았어요.
불운을 대비할 수도 없고,
스펙이 되지도 않는 책,
그깟 배부르지도 않은 책
그러나 도통 무용해서
나를 억압하지 않는 책
구질구질한 날 뜬금없이 책을 펴고,
책 속으로 도망간 날들이 많았습니다.
소설을 읽을 때는 '맞아, 맞아 나도 그래.'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는
'언젠가 나도 이렇게 될 수 있겠지' 하면서요.
육아는 퇴근과 퇴직도 없다는데,
그 피할 길 없음과 미룰 수 없음이 가장 억압적인 점
전업맘의 존재는
잘 닦인 거울처럼
보고 싶지 않은 나를 보게 했지
한시도 빠짐없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관계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