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고 확신하지 않는 경우에 타인의 애정을 받으면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모르면서 훈장을받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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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사람들을 꿰뚫어보는 것은 아주 쉽다. 하지만 그래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엘리아스 카네티(Elias Canetti,
1905-94, 불가리아 태생의 유대계 영국 작가 / 역주)의 말이다.
타인의 흠을 찾아내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그러나 그것이또 얼마나 무익한지를 암시하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사람을 꿰뚫어보는 일을 중단하고자 하는 순간적인 의지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설혹 그 과정에서 눈이 약간 먼다고 하더라도? 냉소주의와 사랑이 스펙트럼의 양극단에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가끔 사랑에 빠지는 것은 습관화되다시피 한 맥빠지는 냉소주의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갑작스러운 사랑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장점을 의도적으로 과장하는 면이 있는 것이아닐까? 그런 과장 덕분에 우리는 습관이 된 비관주의에서벗어나, 우리 자신에게라면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믿음을가지게 된 어떤 사람에게 우리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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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을 두고 자신의 필생의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 은 다 살아보고나서야 가능한 일이다따라서 불가능하다고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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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열심히 사는 인생은 끝이다. 견디는 삶은 충분히 살았다.
지금부터의 삶은 결과를 위해 견디는 삶이어서는 안 된다. 과정 자체가즐거움이다.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다. 앞으로는 그렇게 생각기로 했다

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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