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
아름다움이 사랑을 낳을까, 아니면 사랑이 아름다움을낳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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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야 자유주의냐
차이를 농담으로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표시[적어도 사랑의 90퍼센트를 이루는 노력을 하고 싶지 않다는 표시일 수도 있다. 유머는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일어나는 짜증의 벽들을 따라서 늘어서 있었다. 농담 뒤에는 차이에 대한, 심지어 실망에 대한경고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긴장이 완화된 차이였고, 따라서 상대를 학살할 필요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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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은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안전하 게 고통스럽다.자신 외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 때 문이다. 스스로 자초한 달곰씁쓸하고 사적인 고통이다. 그러나 사랑이 보답을 받는 순간 상처를 받는다는 수동적 태도는 버려야 하며, 스스로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책임을 떠안을 각오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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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고 확신하지 않는 경우에 타인의 애정을 받으면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모르면서 훈장을받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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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사람들을 꿰뚫어보는 것은 아주 쉽다. 하지만 그래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엘리아스 카네티(Elias Canetti,
1905-94, 불가리아 태생의 유대계 영국 작가 / 역주)의 말이다.
타인의 흠을 찾아내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그러나 그것이또 얼마나 무익한지를 암시하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사람을 꿰뚫어보는 일을 중단하고자 하는 순간적인 의지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설혹 그 과정에서 눈이 약간 먼다고 하더라도? 냉소주의와 사랑이 스펙트럼의 양극단에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가끔 사랑에 빠지는 것은 습관화되다시피 한 맥빠지는 냉소주의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갑작스러운 사랑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장점을 의도적으로 과장하는 면이 있는 것이아닐까? 그런 과장 덕분에 우리는 습관이 된 비관주의에서벗어나, 우리 자신에게라면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믿음을가지게 된 어떤 사람에게 우리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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