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 미노아 문명

성벽은 문명이 전쟁 위주였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되므로 고고학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또한 성벽이 없는 것뿐만 아니라 발견된 대부분 벽화들도 놀이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미노아인들이야말로 어쩌면 진정한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인간의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가설해볼 수 있겠다. 하지만 전쟁과 침략에서 해방된 인류 역사는 불가능하다. 미노아인의 평화Pax Minoica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과 당시 최첨단 기술력을 자랑하는 막강한 함대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50/3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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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Gilgamesh)

약 5000년 전 문자의 발명은 아름다운 시와 깊은 철학을 남겨놓기 위해서가 아닌 회계 처리를 위해서였다. 물론 수메르인들은 머지않아 같은 문자를 사용해 이나나Inanna 여신을 찬양하고 과거 영웅들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문학과 철학의 시작이었다.
그중 아마도 가장 유명한 작품은 〈길가메시〉일 것이다. 수메르 왕국 전설의 왕인 길가메시Gilgamesh는 영웅 중 영웅이었다. 괴물 훔바바Humbaba를 죽이고 돌아오던 중 친구 엔키두Enkidu가 죽자 상심한 그는 자신도 결국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는 걸 느끼고 영생의 비밀을 발견하려 결심한다.(36/3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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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화 어두운 이면

결국 인류는 더욱 소유에 집착하게 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성벽을 짓고, 규모를 점차 확장하며 각자 맡은 바 역할을 나누게 된다. 이렇게 농경사회는 자연스럽게 계급사회의 모습을 갖춰가게 된다. 인류는 이처럼 정착과 함께 급격한 불평등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이와 관련해 유발 하라리는 농경학이 인류 역사에 가장 큰 비극이라고 이야기한다. 수렵 생활을 할 때 인간은 필요한 만큼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여가를 즐길 수 있었지만 농경사회로 접어들면서 인간은 생산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과거에는 소위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 훨씬 더 좋았던 것이다.(33/3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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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가축화

동물의 가축화와 관련해서 주목할 가장 중요한 점은 소, 양, 돼지를 가축화하는 문명과 말을 가축화하는 문명 사이의 현격한 차이다. 전자의 문명이 정착 생활을 하게 된 것과 달리 후자의 문명은 정복 생활을 이어나가게 된다.(32/3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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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도시-종교-예술 vs. 예술-종교-도시-농사

괴베클리 테페와 같은 최근 연구 결과들은 지금까지의 가설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인류는 도시가 생기기 전에 종교 활동을 먼저 했고, 그전에 이미 예술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인류 문명은 예술, 종교, 도시, 농사의 순서로 발전했을 수도 있다. (27/4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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