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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무삭제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44
허먼 멜빌 지음, 레이먼드 비숍 그림,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렸을 때, 고래를 특별하게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영화 <이집트 왕자>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벽처럼 생긴 홍해 바다 사이를 걸을 때 고래가 아주 잠깐 그림자로 나온다. 그 사이즈가 얼마나 놀랍고 아찔하고 충격적이었는지! 진짜 1초 나왔는데도 그 때 바로 앞에 있었던 사람들과 크게 비교되서 인지 정말 강하게 기억에 남았다. 그 때 처음 큰 자연 생물에게 '경외감'이라는 것을 느꼈다. 내게 고래는 압도적인 크기의 놀랍고 신비한 생물로 기억된다. 그래서 고래에 대한 고전 작품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꼭 한번은 이 <모비 딕>을 읽어보고 싶었다. 이번에 완역본으로 읽게 되어서 얼마나 설레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ㅎㅎ
이 책의 주인공 이슈메일은 포경선에 타게 되는데 타기 전에 들렸던 여관에서 식인종 퀴케드를 만나 절친이 된다. 이 식인종 퀴케드와 만남이 진짜 넘 재밌음! 정말 작가님의 현란한 글솜씨를 느낄수 있다. ㅋㅋㅋㅋ 퀴케드는 이교도이고 온 몸에 문신하고 뉴질랜드 원주민 두개골을 팔려고 들고 다니는 정말 기괴하고 무시무시한 느낌의 야만인인데 잠자리가 없어서 처음만난 그와 이슈메일은 한 침대에서 자야한다! 얼마나 겁이 났을까 ㅠㅠ 실제로 그와 첫 만남은 공포 그 자체였지만 숙소 주인의 중재로 서로가 적이 아님을 확인 한 후에는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절친까지 먹음 ㅋㅋㅋㅋ 퀴케그는 단순하고 진실하고 숭고한 면이 있었다. 그런 점이 더 이슈메일을 사로 잡음! 퀴케그와 절친이 되기 위해 이슈메일은 기독교인이지만 그와 함께 우상에게 절하며 같이 건빵을 번제로 드림 ㅋㅋㅋㅋㅋ 이런 장면들이 넘 쫄깃하고 재밌었다.
이슈메일과 퀴케그는 피쿼드 호라는 이름의 포경선에 타게 된다. 이슈메일은 고래잡이 일을 별로 한적 없는 쪼랩이지만 퀴케그는 꽤 능력있고 솜씨 좋은 작살잡이였다. 그 배는 에이해브라는 선장이 지휘하는데 그는 흰 고래 '모비 딕'에게 다리 하나를 잃었다. 그 일로 에이해브는 그 고래에게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포경선을 띄웠다. 선원들은 당연히 이런 공지를 듣지 못하고 탑승한 상태. 선장의 이야기는 정말 당황스러웠으나 그가 그 목적으로 거의 미쳐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에게 반기를 들지 못했다. 단 일등항해사 스터벅만 빼고.
스터벅이 이 배에서 가장 고귀한 성품을 지닌 존재임을 알려주는 내용들이다. 실제로 그는 계속 선장에게 그 무모하고 어리석은 복수를 포기하고 모두 안전하고 행복하게 다시 돌아가자고 몇번이나 설득하려 한다. 선장은 자신의 뜻을 반대하는 그에게 역정을 내면서도 나중엔 그의 성품을 인정하고 그를 깊이 신뢰하게 된다. 뒤에 설명에서 나오길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커피숍인 '스타벅스'의 이름이 이 '스터벅'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요런 이야기들은 꽤 흥미로웠음.
흰 고래 '모비 딕'을 잡으러 가면서 많은 포경선들을 만나게 되는데 만나는 자들마다 에이해브 선장에게 그 무모한 복수를 하지 말라고 말린다. 하지만 선장은 이미 미쳐있다. 자신도 미쳤다고 인지하면서도 그것을 끊어내지 못함... 드디어 모비딕을 만나는데 3일에 걸쳐서 만난다. 모비 딕이 계속 경고하듯이 처음에는 보트만 부시고 두번째는 선장을 지키던 자를 죽였지만 선장은 모든 경고와 기회를 무시한다. 결국 자신도 죽고 자신의 배도 죽고 선장을 따랐던 모든 선원도 죽는다. 이 글을 쓴 이슈메일만 운 좋게 부표에 잡고 살아서 구조된다.
이 에이해브 선장을 보면서 <노인과 바다>의 노인이 떠올랐다. 둘다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한 상대를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노인은 정말 숭고하고 감동적인 느낌이 강했으나 선장은 집착으로 미쳐서 파멸한 느낌이 들었다. 왜 그랬을까 라고 생각했을 때 노인은 어부였기 때문에 물고기를 잡았고 그 물고기는 우연히 잡혔기 때문에 어떤 고의성도 느껴지지 않고 그저 할일을 했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선장은 다리를 하나 잃고 '너 따위가 감히!' 이런 생각에 사로 잡혀 고래에게 집착한것으로 보여진다. 이런 생각이 벌써 본인은 당연히 우월하다고 느끼는 것이고 자신의 티끌같은 분수를 제대로 모르는 생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악인것은 선원들은 무슨 잘못이냐고... 향유고래를 열심히 사냥해서 육지에서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을 먹여 살릴 생각으로 나온 그들은 어떡하냐고.... 이 부분이 가장 큰 차이인것 같다. 노인은 바다의 모든 생물들을 존중하고 그 가치를 인정해 주었다. 심지어 자기가 잡은 청새치에게도 그의 살려는 노력을 인정해줌... 하지만 선장은 자신의 복수말고는 아무것도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고 어떤 가치도 부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파멸했고 그의 주변도 그와 한배를 탔다는 이유만을 파멸한다. 정말 비참하고 끔찍한일 아님? 해제에서는 흰 고래를 여러 의미로 생각할수 있고 그런 선장의 복수에 의미를 둘수 있다는 설명도 있지만 다른 걸 다 떠나서 어떠한 동의 없이 선장만 믿고 배를 탔던 그 선원들의 죽음은 그냥 없던걸로 할수는 없는 것 같다.
<모비 딕>의 구성을 이야기 한다면 정말 독특하고 여러책이 함께 들어있는 것 같은 착가이 든다. 일단 이 분은 글을 넘 재밌게 잘쓰는데 특히 퀴케드와 함께 있었던 일들에 그런 재미들이 잘 살아있다. 그리고 갑자기 고래 전문 서적이 됨 ㅋㅋㅋㅋㅋㅋ 고래에 대한 정보들이 엄청 나다! 고래의 종류와 각 특징, 고래의 생김새, 누구는 고래를 어떻게 그렸고 고래는 누가 어디서 언급했으며 고래는 언제 처음 기록되었고 어느 역사에서 부터 함께 했으며 고래 사냥은 어떻게 시작됐다는 등등등... 진짜 고래 박사님이 확실하심! ㅋㅋㅋ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을까 싶다. 아마 도서관에 있는 모든 고래 책을 다 파지 않고서는 이런 정보들이 그 당시에 이렇게 보일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열정에 정말 입이 절로 떠억 벌어짐 ㅋㅋㅋㅋ 뇌사이즈 이런걸 왜이렇게 자세히 써 놓으시냐고 ^^;;;;
그리고 피쿼드 호에서 향유고래 사냥하고 기름을 짜내는 장면들이 무척 자세하게 나오는데 인간의 잔인성에 절로 눈이 찌푸려짐 ㅠㅠ 이슈메일 본인이 고래를 자세히 아는 것도 새끼고래를 해부해서 알게 됐다고 하는데 마음이 솔직히 편치 않았다.... 그렇게 놀라운 정보와 잔인한 다큐를 보여주다가 급 희곡이 됨!
셰익스피어 읽는 줄 ^^;; ㅋㅋㅋㅋㅋ 실제로 작가 허먼 멜빌이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에이해브가 고민하는 장면은 거의 햄릿, 멕베스임 ㅋㅋㅋㅋㅋ 이런 전환이 넘 웃겼음 ㅋㅋㅋㅋㅋ 정말 지루할 틈이 없는 구성이었다. 장르가 얼마나 확확 바뀌는지 ㅋㅋㅋㅋ
그리고 또 흥미로웠던 것음 이분이 너새니얼 호손과 아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계시고 많은 영향을 받으셨다는 것이다. 실제로 책 맨 앞에는 '너새니얼 호손의 천재성에 경의를 표하며 이 책을 그에게 바친다.'라고 되어 있음! 내가 너새니얼 호손 단편책 읽다가 죽을뻔 해서 정말 그를 잊지 못한다 ㅋㅋㅋㅋㅋ <주홍글씨>에 넘 감명을 받아서 단편집을 빌렸는데 얼마나 내용이 어둡고 무거운지 한 편씩 읽을 때마다 기력을 보충하면서 읽었어야 했..... 하지만 그가 천재적이라는 건 정말 인정한다! 여튼 호손은 나에게 여러의미로 특별한 작가인데 그 작가에게 솔직하게 쓰고 싶은 것을 쓰라는 말을 듣고 허먼 멜빌은 이 <모비 딕>을 썼고 그 전까지 나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던 그의 평판은 이 작품을 계기로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 호손은 멜빌에게 은인인가? 원수인가? 둘 다인듯 ㅋㅋㅋ
이 <모비 딕>은 여러 방면으로 내게 흥미롭고 재미있었던 책이었다. 고래에게 특별한 관심이 있는 분들에겐 정말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