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붕대 스타킹 반올림 31
김하은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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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 표지를 봤을 때 깊고 차가운 바닷속을 보는 듯 짙은 남색 바탕에 얼음처럼 차가운 빛깔의 제목이 아! 참 무겁고 아픈 책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무거움의 실체는 성추행 당한 주인공 선혜보다는 그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가는 주인공에게 지나치게 이입되어 격한 감정을 토해내기 보다는 담담하게 상황을 객관적으로 풀어낸다. 읽으면서 불편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은 피해자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지금 우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남의 아픔에 공감하기 보다는 그저 소문에만 집착하고 즐기는 수겸, 공부만 잘하면 된다며 자식에게도 무관심한 엄마,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직을 위해 고시텔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무관심한 사람들, 다름 아닌 우리의 모습이다. 상처가 빨리 아물기 위해서는 붕대를 벗고 공기가 통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것을 감추려고 자꾸 봉합하면 결국 썩게 된다, 선혜를 감싼 붕대는 점점 차가운 얼음이 되어 한여름에도 선혜를 추위에 떨게 만든다.

‘그깟 성추행이 무슨 대수라고....‘ ’너는 아무 일도 없었던 거다.‘

지금 사회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잔인한 사건 사고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에 비하면 정말 성추행, 폭행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점점 극단으로 치닫든 사건들이 우리들을 점점 무감각하게 만든다. 주인공 선혜는 지혜로 가까스로 성폭력까지는 모면했지만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더럽고 치욕스러운 일인지 모를 것이다. 때로는 우린 이렇게 위로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성폭력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만약에 성폭력을 당했다면 그나마 목숨을 건져서 다행이다라고......

하지만 성,폭력은 단지 신체의 훼손이 아니라 영혼에 대한 파괴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하는 일이다. 그걸 안다면 누구도 그렇게 쉽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이제 막 피어나는 꽃다운 나이, 특히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에 대해선 아주 강력하게 사회가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하지만 세상엔 늘 나쁜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다.

이 작품에서도 선혜의 아픔에 공감하고 따스하게 안아주는 창식이와 지애, 고시텔 현이 언니가 있다. 만약 이런 사람들이 없다면 선혜는 얼음 붕대 속에 갇혀서 곪아 터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혜 스스로 극복해내는 용기와 힘이 없었더라면 그 역시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라도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읽고 누가 뭐래도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고결하고 소중하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불어 상처 입은 사람들을 대하는 우리 자신의 태도를 한번 돌아 봤으면 좋겠다.

무거운 주제임에도 미래를 담보로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청소년들, 아등바등 하루하루를 견디는 사람들을 고시텔을 배경으로 섬세하게 표현함으로써 우리 대한민국 사회를 그대로 보는 것 같았다. 술술 잘 읽히는 문장 또한 뛰어나다. 우리 주변에 혹시라도 선혜가 있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이 책을 읽고 한번 쯤 생각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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