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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씨, 엘리자베트, 오스트리아의 황후
카를 퀴흘러 지음, 김연수 옮김 / 히스토리퀸 / 2025년 3월
평점 :

대개는 훌륭한 사람이 존경을 받고 인기 인물이 되기 마련이지만, 이 상관관계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개인적인 업적이나 공적으로 보면 존경을 받지는 못하지만, 인기가 높은 경우다.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황후였던 엘리자베트가 정확하게 여기에 속한다. 오스트리아 역사에서 역대 황후들 가운데 가장 인기있는 황후를 고르라면 아마 마리아 테레지아 아니면 엘리자베트일 것이다. 하지만 마리아 테레지아는 공적이 확실한 반면, 엘리자베트는 역사적 평가가 야박하다. (국내에 번역이 나온 몇 안되는 합스부르크 역사책 가운데 하나인) 마틴 래디의 책에 설명이 나오지만, 모범적인 황후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고집세고 자기중심적이고, 예쁜만큼이나 자신의 미모를 가꾸는데 탐닉했다. 가정적으로도 좋은 어머니와 부인의 역할과는 거리가 꽤 멀었다.
하지만 극적이었던 그녀의 인생 이야기-자유로운 분위기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사랑받으며 성장했고, 한눈에 반한 황제의 청혼에 결혼했지만 고부갈등과 보수적인 궁정문화를 견디지 못해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원했고, 결국 비극적인 암살로 최후를 맞은, 오스트리아 제국 황혼기의 마지막 황후-로 인해 동정의 대상이 되었다. (그녀에게 비판적이건, 우호적이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이 합스부르크 왕가가 아닌,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의 귀족 집안과 결혼했다면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여기에 엘리자베트가 보여주었던 이미지가 결합했다. 사진과 언론의 발달로 인해 왕족들이 자신을 보여주는 모습이 달라져야 했던 시점에, 엘리자베트는 외젠느(나폴레옹 3세의 황후)와 더불어 "유명인사 군주(Celebrity Monarch)"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녀는 사진과 언론을 이용하면서 자신의 사진을 엄선해서 배포하고, 특정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이미지를 형성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나 케이트 미들턴의 선배격이랄까) 그리고 나중에는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지면서 동화적인 존재로 남게 되었다. 여기에 암살이라는, 비극적 최후가 극적 스토리의 정점을 찍으면서 마무리해주었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엘리자베트의 초상. 1865년 프란츠 빈터할터가 그렸다. 일반적인 국왕과 황후의 초상이 정면을 그리면서 권위적인 모습을 강조하는 것을 감안하면, 엘리자베트가 어떤 이미지로 비추어지길 원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솔직히 초상의 포즈는 일반적인 황후 초상화의 포즈가 아니라 레드카펫 스타의 포즈-_-에 더 가깝다)
카를 퀴흘러가 쓴 엘리자베트의 일대기는 엘리자베트를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시각에서 묘사한 전형적인 대중용 전기물이다. 앞서 거론했던 엘리자베트의 실제적인 모습을 그리기보다는, "아름답고 우아하지만, 자유를 갈망했던 고독한 황후"였던 비극적 동화의 주인공으로 그렸다. 그러다보니 역사적 설명이 충분하지 않아서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원하는 독자들은 불평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역사적 업적이나 일반적인 평전의 잣대로 이 책을 박하게 볼 필요는 없다. 엘리자베트는 드라마,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대중적이면서도 신비로운 존재로 그려졌다. 그 영감의 원천이 된 책이 처음으로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된 것이다. (솔직히 엘리자베트 뮤지컬이 공연된 게 한참 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번역이 너무 늦게 나온 감이 있다) 20세기 오스트리아 제국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영원한 비극적 동화의 주인공 이미지가 어떻게 그려지면서 문화적 영감을 주었는지 알고 싶은 분들에게는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은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엘리자베트를 그녀의 고귀한 지위를 상징하는 모든 휘장 속의 아름다운 여군주로 기억하기보다, 고독한 영혼으로 평화와 안식을 끝내 찾지 못한 채 홀로 삶의 길을 걸었던, 아름답고 비운의 비텔스바흐 가문의 딸로 기억할 것이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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